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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r 06. 2024

커피숍 좋은 자리에 혼자 앉는 것

경복궁 사거리 아늑한 커피숍에서 한 시간 반을 혼자 보낼 수 있는 기회였다.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가지고 온 책을 읽을 생각에 들떴다. 우리 동네에서는 사 먹기 힘든 플랫 화이트를 주문했다.


번호표를 받아 들고 매장 안을 둘러봤다. 한가한 시간이라 빈자리가 많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창문 앞 테이블이었다. 두 자리를 붙이면 4인까지 앉을 수 있는 동그란 테이블은 조명이 가장 밝게 비쳐 마치 이 매장의 주인공 좌석인 듯했다.


창가까지 걸어가다가 멈칫했다.

내가 이 자리에 앉아도 될까?

두 명만 됐어도 망설임 없이 앉았을 것이다. 지금은 빈자리가 여럿이지만 내가 앉아있는 90분 동안 4인 손님이 들어온다면 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편안히 앉아있을 자신이 없었다. 결국 몇 걸음을 오가다가 구석에 있는 한 명만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선택했다.

곧이어 주문한 커피가 나왔고, 나는 그늘진 1인용 좌석에서 느긋하게 한 시간 반을 보냈다.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어떤 브런치 가게에서도 그랬다.


혼자 밥 먹는데 익숙하다 못해 즐기는 나는 가끔 시간이 나면 좋은 식당을 검색해서 가본다.

그날도 약속시간이 많이 남아 블로거들이 추천한 브런치 식당을 찾아갔다. 명성에 비해 매장은 넓지 않았다.


이번에도 혼자 앉기 부담 없는 좌석을 찾았는데 하필 출입문 바로 앞자리였다. 그날은 너무 추워 문 앞에 앉고 싶지 않았다.


당당해지기로 마음을 먹고 안쪽으로 들어가 비어있는 4인용 좌석에 앉았다. 주문을 하려고 메뉴를 훑어보는데 주인이 내쪽으로 다가왔다.


"저, 손님. 죄송하지만 저희가 조금 있으면 좌석이 많이 찰 것 같아서요. 괜찮으시다면 2인 좌석으로 옮겨주시겠어요?"

"아......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추워서요. 저쪽 자리에 바람이 너무 잘 들어오네요."

"그러시면 할 수 없죠. 주문하시겠어요?"

웃음을 띤 주인은 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친절하게 말했고 나는 음식을 주문했다.


그때부터 내 몸의 신경은 출입문을 향해 있었다.

4인용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음식을 먹는 동안 누군가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서 돌아간다면 올바로 소화를 시킬 자신이 없었다. 세상과 분리된 듯 조용히 책을 보며 밥을 먹으려는 나의 계획이 틀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손을 들어 주인을 불렀다.

"저쪽 자리로 옮길게요."

"아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직 손님들 많이 안 오시는데요."

당황한 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아니에요. 앉아있다 보니 실내가 별로 안 추워요. 괜찮겠어요."

애써 주인을 안심시키며 2인 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내 말대로 실내가 따뜻해서 문 앞자리는 별로 춥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주문한 음식을 먹는 동안 내가 처음 던 4인석은 채워지지 않았다.




지난겨울의 일들이다.

별다른 사건이 아니었으며 불쾌한 기분도 없었다. 오히려 나 혼자 즐겼던 휴가 같은 몇 시간이라 달콤하고 안락했다.

그런데 이 일들이 잊히지 않고 가끔 생각나는 건 버리지 못했던 욕심 때문일 것이다. 넓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아쉬움의 욕심이 아니라 기가 현명한 선택이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심이다.


브런치를 먹은 날 내가 무슨 메뉴를 주문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경복궁 사거리 커피숍에서도 내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다.

마음이 편한 좌석을 차지하고 난 후 나는 줄곳 내가 놓친 좌석을 흘끔흘끔 바라봤다. 저 자리에 누가 앉게 될까, 아무도 앉지 않는다면 내가 그냥 앉아서 즐겨도 됐던 것 아닐까.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눈치 보는 마음에서 비롯된 양보였기 때문에 불편한 감정이 지속됐던 것이리라.


만일 내가 두고 온 그 자리를 나처럼 혼자 온 손님이 앉아 버렸다면 내 불편함은 두세 배 커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차피 잘 옮겼어. 저렇게 여러 명이 앉게 됐잖아.''

이래야 마음이 편할 텐데,

'뭐야, 저 사람은 혼자서도 저 자리에 앉았네. 내가 양보한 건데 저 사람은 그냥 앉아서 좋은 뷰와 넓은 공간을 즐기고 있어.''

이렇게 될 까봐 두려운 심보가 발동하는 것이다.


후회라는 단어는 그때의 내 감정과 맞지 않다. 놓친 것은 당연히 놓쳐야 마땅한 것이어야 마음이 편안한 집착에 가깝다. 물건을 비싸게 사고 나서는 비싸게 샀지만 그래도 서비스를 잘 받았으니 됐다,라고 자위해야 홀가분한 마음, 이것도 일종의 욕심이 아닐까.


이를 더 먹으면 마음속 나를 들볶 않는 초연함이 생겨나게 될까. 완벽히 편안하려는 욕심마저도 버리는 성숙함갖고 싶다. 

내 마음 편하려고 포기한 것을 다른 누군가가 차지해서 누린다면 그건 그 사람의 운이고 능력다라며 셈하는 그 집착까지도 떨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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