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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un 08. 2024

글 쓰기 시작하는 40대

동경하던 세계에 발을 들일 용기

요즘 나는 틈이 나면 글을 쓰고, 남편은 일주일에 두 번씩 가죽공방에 간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갖게 된 취미 생활이다.


세상살이가 모두 다른 것 같아도 또 같은 사회에 속해있다 보면 비슷한 궤도를 돌고 있기도 한다.

건강에 노란불,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사십 대들은 또 비슷한 운동과 식이요법에 힘을 쓴다. 몸은 마음을 따라가는 것인지 어딘가 구멍 난 듯한 생활이 허망하다는 생각도 비슷하게 한다.


직장을 다니든지, 결혼을 하든지, 아이를 낳든지 뭐가 됐든 정신없이 삼십 대를 보내고 나면 마흔 살 즈음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지는 것은 일종의 보상심리인가 보다.

나도, 남편도, 여러 친구들도 돈벌이가 되지 않아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일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담 넘어 세상 같았다. 떠올리면 두근거리지만 들어갈 생각은 못하는 동경이었다.


보고서를 쓰는 것 말고 글을 써본 마지막은 대학시절이었다.

분석화학, 독성학 같은 전공 수업은 마지못해 몸을 배배 꼬면서 듣고 간신히 B학점을 받은 주제에, 문예창작부에 개설된 교양과목은 한 개도 빼놓지 않고 찾아들으며 A를 받고 뿌듯했었다. 학생들이 반기지 않는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한 페이지만 써도 될 걸 두 세 페이지 꽉꽉 채워오는 학생에게 교수님들은 글솜씨가 어떻든 간에 에이학점을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렇게 신나게 매 학기 문창과 교양을 들었지만 졸업할 즈음에는 더 이상 글쓰기는 내가 시간을 쏟을 일이 아니라는 결론만 얻었을 뿐이었다. 실컷 생각해서 들고 간 작품 분석은 내가 생각한 것과 작가의 의도가 전혀 달랐고, 신나게 써내려 간 독후감도 나중에 읽어보면 유치했다.


취업도 어렵고, 진로 고민도 많았던 스무 살 중반에, 글쓰기는 내 머릿속에서 안녕하고 인사를 남길 만큼의 비중도 차지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2020년 어느 날 그냥 한번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글쓰기 플랫폼이 활성화 되어 글 쓰는 사람들이 많아진 사회적 현상도 내 욕심에 불을 지폈다. 폐허로 버려두었던 블로그를 열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도 아닌 좋아서 하는 일들을 할 때 갖게 되는 충만함은 행복에 가깝다. 재미와 자기만족을 마음껏 누리며 길지 않은 여가시간을 보내는 중년의 여유.

아, 이렇게 끝이 난다면 참 좋겠지만 아쉽게도 마흔이 넘은 나는 순수한 행복을 조건 없이 누리기엔 관성에서 벗어날 시간이 좀 필요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무슨 일이든 들어간 것만큼 얻어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대로 살고 있었다. 끝난 후에 별 볼일 없는 결과를 얻으면 무기력했고, 꾸준한 도전보다는 발 빠른 전환이 생계에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늘 생산성 있는 일만 해 온 것도 아니었다. 고정적으로 반복되는 프로세스와 모험하지 않는 의사결정에 매우 익숙해졌다. 튀지 말고, 뒤쳐지지도 말고 적당히 마무리하는 선에서 타협을 보는 것이 가장 영양가 있는 거라는 약삭빠른 생각도 잘한다.


그러다 보니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즐기자고 마음먹은 일인데도 나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 버릴까 봐

시간과 노력을 흠뻑 쏟지 못하고 머뭇거리기가 일쑤다.


그런가 하면 여유를 즐긴다며 시작한 취미생활에서 콩고물을 바라는 우스운 욕심을 내기도 한다.

글을 좀 잘 써서 용돈벌이라도 해볼까 하는 나, 가죽을 자르고 꿰매는 시간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가죽공예에 취해있다가도 요걸 어떻게 부수입이나 노후대책으로 발전시켜 볼 수 없을까 골똘해지는 남편, 과자 만들기가 재밌다고 열심히 수업을 듣더니 스마트 스토어를 알아보고 있는 내 친구. 다들 좋아하는 일 그 자체만을 즐기며 풍요의 시간을 보내기엔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수확 없는 노동에 익숙하지 못해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동경하던 것들을 직접 만져보는 것의 행복은 서서히 짙어질 것이다.


20여 년간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오다가 고개를 들어 중간쯤 왔음을 깨닫는 것이 마흔 즈음인 것 같다. 아직 아이도 더 키워야 하고 돈도 더 벌어야 하고,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래도 세상 사는데 조금 익숙해졌으니까, 예전에는 꿈만 꾸었던 동경했던 세계에 약간만이라도 발을 들여보는 것도 좋겠다.

뭐가 되지는 않아도 완전히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을 일주일에 한 시간만이라도 가져 보는 것, 마흔이 넘으면 그 정도는 내 맘대로 할 수 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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