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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Jun 02. 2024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인연

40대의 단톡방, 친구가 주는 에너지

"나 며칠 전부터 싱크대 선반에 올려놓은 후추통이 없어져서 계속 찾고 있었어. 근데 오늘 딸이 냉장고에서 찾았다."

"냉장고에서 리모컨 안 나온 걸 다행으로 알아."

단톡방에 친구 한 명이 하소연을 올리자, 너도 나도 정신머리 없어서 생긴 실수들을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윤이 학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데 보니까 윤이가 뒷좌석에 있더라. 잠깐 정차해서 음악 골랐는데 내려준 걸로 착각했어. 윤이가 자기 내리지도 않았는데 그냥 학원을 지나쳐서 가니까 놀라서 엄마 어디가? 이러는데 나는 더 놀랐어"

이게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사연이다.


모두들 서로의 사례를 듣고 웃음보를 터뜨리다가 이내 걱정스러워한다.


"어떨 땐 진짜 무서워, 뭐 검색하려고 핸드폰 들었다가 기억 안 나서 유튜브 한참 보다 보면 그제야 내가 뭐 찾으려고 했더라? 싶은데 기억이 안 나."

"잠깐 까먹었다가 기억나면 모르겠는데 뭔 일이 생긴게 아예 통째로 생각안날때도 있어. 그럼 진짜 무섭다니까."

이쯤 되면 웃기면서도 불안해진다. 그래도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하기도 하고, 이런게 늙어가는건가보다 가볍게 털어버리기도 하며 서로 위안이 되어준다.



코로나시절에 만나지 못해 안부전화로 활발해진 단톡방이 아직까지 생활의 활력이 되고 있다.


30대에 애 키우느라 바빴던 시절에는 연락이 뜸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문자도 거의 주고받지 않았는데 요즘은 아침이면 서로 안부인사를 나눈다.


자식들이 사춘기에 들어설 나이가 되니 오히려 친구들에게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털어놓는 것이 마음도 풀리고 도움도 된다. 아직 싱글인 친구들도 자신들의 직장생활 힘듦을 친구에게 털어놓는다. 나이가 들어 만난 사람들은 한 마디를 해도 조심스러운데 학창 시절 친구들이라 어느 정도 실언은 이해해 주려니 한다.


마음은 아직 20대인데 몸은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증상들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 단톡방에 찾아와 증상을 얘기하고 진단을 받는다.


"야, 나도 그래. 아들이 가시 빼 달라는데 노안 때문에 안 보여서 딸내미가 빼줬어."

나만 늙고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그러다가도 특별히 많이 아픈 친구가 나오면 너도나도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혹시 부모님이라도 편찮으시면 서로의 부모님 젊은 시절 얼굴들을 떠 올리며 다 같이 마음 아파한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대나무 숲이다. 그곳에 회사에서 짜증 났던 일도 털어놓고, 남편이나 시어머니 욕도 하고, 몸 아픈 것도 상담받으면서 하루하루 무거움을 덜어놓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오래 기사를 공유했다.

최근 미국 연예주간지 ‘US위클리’에서 제니퍼 애니스턴이 공개한 다이어트 비결 가운데 하나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분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은 엔도르핀 호르몬을 증가시켜 식욕을 억제시키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지방분해를 촉진한다.
[출처] 국민일보 2009. 05.21


"나 요새 니들 안 만나서 살쪘나 보다."

"단톡방이 헬스장이구만. 이거라도 많이 해"


기사를 읽고 또 실없고 유쾌한 농담들이 이어졌다.

그런 친구들의 모임에 끼어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고맙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모임이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한 두 팀 정도만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곤 한다. 삶의 무대가 바뀌면서 속해있는 조직도 옮겨져 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어깨에 버거운 짐들을 짊어지고도,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끊어지지 않는 관계가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우리 함께했던 걸레만두와 떡볶이



2022년 11월 '내가 사는 40대'에 실었던 글을 편집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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