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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Feb 24. 2021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탈출과 지탈

나의 '탈출'과 아이의 '지탈'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아껴읽고 싶을 정도이다.


아이들의 놀이 '지탈'에 대한 선생님과 아이의 대화.


"학교에 구름사다리랑 미끄럼틀이랑 그물이랑 합쳐진 놀이 기구 같은 거 있잖아요. 거기서 술래가 다른 애들을 잡는 거예요. 술래는 땅에 내려와도 되는데 다른 애들은 땅 짚으면 죽는 거예요. 대신에 술래는 눈을 감아야 돼요."
"뭐라고? 눈을 감는다고? 그러다 떨어지면 어떡해?"
나는 기함을 했지만 지연이는 태연했다.
"눈을 감아야 재미있죠! 그리고 안 떨어져요."
사실 그런 아슬아슬함이 놀이의 재미겠지.
<어린이의 세계>  p58



우리 아이들도 '지탈'을 한다.

처음 아이에게 들었을 때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지옥 탈출'이라고 했다.

무슨 그런 이름이 있나, 동네 애들이 지어냈나 보다 싶었는데 이 책에서 '지탈'에 대한 내용을 읽고 깜짝 놀랐다. 이게 전국적으로 유행하는 놀이였구나.


작가 김소영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나도 아이가 이 놀이를 설명해 줄 때 매우 놀랐고 걱정스러웠다. 미끄럼틀 위에서 잡기 놀이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눈을 감다니.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는 나의 말에 우리 아이도 "안 떨어져"라는 비 이성적인 대답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탈출'이라는 놀이가 있었으니까.

3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탈출'이 '지탈'로 변형되었나 보다.




당시의 '탈출'도 지금 아이들의 '지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는 주로 높은 미끄럼틀에서 행해졌는데, 술래는 눈을 감고 다른 아이들을 잡으러 다니고 술래가 아닌 아이들은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을 다닌다. 소리가 나면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므로 웃음조차 참기도 하고, 일부러 큰소리로 술래를 놀리다가 술래가 소리를 듣고 쫓아오면 빠르게 도망가기도 한다.


그때의 놀이터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미끄럼틀도 지금처럼 둥글둥글하지 않았고, 페인트가 다 벗겨진 철 소재에 이음새가 뾰족한 부분도 많았다. 높이도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내가 작아서 높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어른이 올려다볼 때도 고개를 한참 뒤로 젖혀야 했으니 지금보다 꽤 높았던 것은 맞는 것 같다.)


눈을 감고 미끄럼틀 위에서 걸어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그때의 술래들이 완벽하게 눈을 감고 있었을 것이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나도 수시로 실눈을 떴고, 실눈을 뜬 술래를 잡아낸 아이와 술래가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하지만 그런 중에도 한 번도 '탈출'이라는 놀이가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또 한 가지 우리 동네에서 인기 있었던 놀이는 '놀이터를 둘러싼 쇠 난간 걷기'였다. 놀이터의 한쪽 면은 굵기가 약 5cm 정도 되는 철재 난간이 울타리 처럼 둘러져 있었다. 난간 안쪽은 놀이터였고, 바깥쪽은 조금 낮은 지대의 골목이었기 때문에 어른키보다도 높았다.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어 다니는 것이다. 그곳을 뛰다시피 빨리 걷는 남자아이들은 우상과도 같았다.


나와 동생도 짜릿한 기분을 즐기며 그 위를 자주 걸었고, 한 번은 엄마에게 걸려서 엄청나게 혼이 났던 적도 있었다. 엄마는 한 번만 더 그 난간에 올라가면 다시는 놀이터에 못 가게 하겠다는 실현 불가능한 협박도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하는 그 놀이를 우리만 하지 않을 재간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 창문만 열면 보이는 그 놀이터에서 어떻게 엄마 몰래 그 놀이를 매일 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엄마가 알고도 모른척 할 사람은 아닌데 말이다.)


그날도 동생과 나는 난간 걷기를 하고 있었고, 뒤에서 걷던 동생이 난간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나는 보지 못했다.

내가 돌아봤을 때 동생은 높은 난간에서 놀이터 바깥쪽으로 떨어져 울고 있었다. 동생이 떨어져서 의식을 잃었거나 했다면 내 인생에서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겠지만 그날 동생은 다행히 윗입술이 조금 찢어지는 정도의 부상만을 입었다.


그 순간 우리 둘이 가장 무서웠던 것은 '엄마에게 뭐라고 하지?'


동생보다 세 살 많아서 그만큼 더 영악했던 나는 철봉에 입술을 부딪친 것으로 하자고 했고, 엄마가 무서운 어린 동생도 철석같이 거짓말에 동참했다.


그 장면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지금도 동생 입술에 난 작은 상처가 철봉에 부딪친 것이라고 가끔 이야기한다. 다 커서는 그 얘길 해드려도 됐을 텐데 왠지 그 이야기는 우리 둘이 비밀처럼 묻어두고 엄마가 그 얘기를 할 때마다 몰래 웃음을 나누곤 했었다.




올해 아들은 12살, 조카는 11살이 되었다.

미끄럼틀에서 '탈출'게임을 하고, 놀이터 난간을 아찔하게 걸어 다니던 우리들에 비하면 두세 살은 많은 나이이다. 나 열두 살 때를 생각하면 별걸 다 하고 놀았고, 학교에서 좋아하는 남자애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아이들을 보면 아직도 마냥 아기들 같이 느껴진다.

더구나 요즘은 코로나라는 생전 처음 보는 상황 때문에 다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끼리 내보내기도 두렵다 보니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비밀을 만들 기회조차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내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미소짓고 있지만 다시 또 아이들이 '지탈'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졸아들며 발끝이 찌릿할 것 같다. 다칠 위험이 경우의 수대로 눈앞에 그려지고, 상상하면 끔찍해서 자꾸 행동에 제약을 가하게 되는 것은 어른이 되면서 배운 경험과 지식 때문일 것이다.

아직 그것이 부족한 아이들은 이 즐거운 놀이를 왜 못하게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성가신 얼굴을 한다.


어른의 눈을 피해서 위험한 것도 좀 해보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말도 안 되는 짓들도 좀 하고, 그렇게 지혜와 경험을 쌓길 바란다.


그러면서도 그로 인해서 얻게 되는 위험부담은 없었으면 좋겠고, 항상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있기를 바란다.

이 모순된 마음이 아이를 기르는 내내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내가 거쳐 왔지만 이제는 잊혀져 버린, 두고 온 것들이 많은 어린 시절이라는 세계를, 지금 내 아이들도 마음껏 누리기를, 그것이 풍요로운 인생의 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21. 2. 12. 독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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