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먹어봐라, 이게 방어다.
뱃대지 살이다, 이게 젤로 맛있는거다
배불러요 그만 먹을래요,
손사래 치는 사이로 젓가락이 쑥 들어온다.
접시 위에 던져진 하얀 뱃살
사춘기 아들 이맛살 가운데 세로 주름이 생긴다.
주름진 입술에 몇 조각 닿지도 못한 생선 살이
손주들 목구멍에 덩어리째 넘어가야
쪼글쪼글 눈가에 웃음이 패인다.
어머니 드세요, 애들이 다 먹었어요.
할머니 드세요, 국물만 드시지 말고.
권하는 말들은 주름진 귓가에서 흐트러진다.
할머니랑 다른 상에서 먹고 싶어. 자꾸 입에 넣어 주는 거 싫어.
그러지 마라, 하면서도 나 어릴 적 고대로 하는구나, 속이 울렁한다.
삼십 년 지나고 봐야 오늘일 속상하지. 네 귓가에 네 자식 투덜대야 오늘일 생각나지.
할머니와 함께 식사할 때면 과하게 음식을 권하는 할머니들 때문에 사춘기 아들과 조카가 늘 인상을 찌푸립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할머니의 호의를 받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고 할머니도 적당히 하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함께 들었습니다.
할머니에게 노골적으로 하지 마시라는 말을 하기는 어려웠던 아들이, 은근슬쩍 따로 앉아서 식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습니다. 할머니를 이해해 드리라고 했더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그냥, 할머니는 드시지도 않고 자꾸 먹으라고 하시니까 안 그러셨으면 좋겠어. 그냥 둬도 잘 먹는데. 배부른데 계속 먹으라고 하시는 것도 싫고, 할머니 안 드시는 것도 싫고, 아무튼 그래, 슬픈 짜증남이라고 해야 하나?”
손주들에게 음식을 권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 행동이 지나쳐 가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할머니들을 볼 때 드는 서글프면서도 성가신 마음, 그 마음을 아들이 한마디로 잘 표현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세월이 지나면 그리워질 할머니이고 부모이지만 인간은 그 순간 짜증스러운 싫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겠지요. 저도 어린 시절 성가시게 참견하시는 할머니에게 짜증을 부리곤 했는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순간들이 후회되곤 합니다. 아들에게 아무리 설명해 주어도 지금은 모를 것입니다. 사람은 세월이 흘러야 알게 되는 것들을 미리 알 수는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