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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Mar 09. 2021

담임선생님이 해주신 떡볶이가 별로라고 했다고?

그러지 말지...

학교에서 선생님이 떡볶이를 만들어주셨다고 했다. 부지런도 하시지, 요즘 선생님들은 챙길 것도 많고, 이런저런 시도도 많이 하신다. 이러네 저러네 해도 옛날 내가 학교 다닐 때보다는 나은 것 같다. 

"좋았겠네, 맛있었어?"

"어, 맛은 있는데, 그런데 냄새가 좀 별로였어."

"아~ 그랬어? 그래도 먹긴 먹었지."

"그냥 한 번만 먹었어. 선생님이 더 준다고 하셨는데 싫다고 했어."

"선생님한테 그 말 한건 아니지?"

"맛있긴 한데 냄새가 좀 별로라고 그만 달라고 했어."

설마설마했는데 그 말을 했단 말이야? 

아이가 밉살스럽게 보이지 않았을까 걱정도 되었고, 기껏 만들어 줬는데 냄새가 별로라는 소리를 들은 선생님이 안쓰럽기도 했다. 

"왜 그랬어~. 그냥 배부르다고 하거나 그만 먹을래요 라고만 하지... 선생님 서운하셨겠다."

"뭘~ 열일곱 명이 다 맛있다고 하고 한 명만 별로라고 했는데 뭐가 서운해. 괜찮아."

무심하게 말하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안이 벙벙했다. 


아이가 3학년 때였으니 2년쯤 전의 일이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밥 먹을 때 절대로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선생님이 교실에서 떡볶이를 해주셨다는 정겨웠던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이 일도 기억이 났다. 

연세가 조금 있으시고, 엄해 보이는 선생님이 열여덟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해주신 게 살갑고 신기했다. 

그 떡볶이를 맛있게 먹고 더 달라고 했으면 오죽 좋아. 그래도 열 살이나 먹었는데 예의상 해주는 선의의 거짓말 같은 것을 좀 할만하지 않나, 이건 철이 없다기보다는 좀 냉정한 성격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고 보면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내 자식인데 자라면서 이런저런 면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된다. 

나였으면 맛이 없어도 주는 대로 꾸역꾸역 먹었거나 배가 부르다고 거짓말을 했거나 그랬을 것이다. 

꽤 수줍음을 타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잘도하는걸 볼 때, 저건 아빠를 닮은 건가 궁금해진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자기도 어려서 그러지는 않았다고 한다. 

우리 자랄 때보다 주눅 들 일도 덜하고,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현대 사회에서 자란 요즘 아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무튼 예상치 못한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새롭고 조금 당황스럽다.   


떡볶이가 맛이 없어도 선생님 실망하시지 않게 맛있다고 해야지,라고 말했다면 아이가 혼란스러웠을까. 

아이가 원하는 것과 느끼는 것을 분명히 말하며 살기를 바라는 편이다. 가끔 나라면 그 나이에 하지 못했을 당돌한 소리를 툭 내뱉는 것을 볼 때면, 뭔가 짜릿한 반항의 쾌감이 대리만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이 해주신 떡볶이는 그냥 맛있다고 해줬으면 좋았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이 선생님에 대한 예의를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인지, 선생님에게 내 아이가 조금 더 귀여움을 받길 바라는 엄마의 욕심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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