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자주 간다면 모를까 보통은 논문을 읽을 수 있으면 됐고, 가뭄에 콩 나듯 쓸 일이 생기는 영어 메일을 보낼 수 있으면 충분했다.
영어에 대한 나의 열망은 그저 잘하고 싶다는 바람일 뿐이지 어떤 필요성에 의한 간절함은 아니었다.
약 10 년 전,
당시의 본부장은 영어를 독학하여 성공한 사람으로, 해외 영업팀에 기술 지원을 해준 것이 성과가 되어 빛을 본 케이스였다.
본인이 그렇게 영어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니, 공부하지 않는 연구원에 대한 한심스러움이 은연중 드러나, 그와 영어에 대한 대화를 하고 나면 종종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사람들이 생기곤 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어느 날 본부장이 유럽 살균시스템 개발업체의 연구원을 초빙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리는 그들의 기술이 필요했고, 그들은 우리 제품에 기술을 적용하여 성능을 확인해 보고 싶어 했다.
당시 나는 살균 평가 시스템을 세팅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이 연구원과의 미팅에 참석하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업체인지라 우리가 세팅 중인 평가 시스템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함이었다.
처음 미팅 얘기를 들었을 때 앞이 깜깜했다.
한국말로도 까다로운 국제 규격을 외국인과 영어로 상의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에 돌덩이가 얹어진 것 같았다.
미팅 당일, 회사에 도착한 유럽인은 50대 중반의 백인 남성이었다. 밝은 갈색 머리에 체격이 큰 인상 좋은 분이었는데 새파란 스카프가 신기하게 잘 어울렸다. (그 와중에 저런 파란색이 어울리는 것은 피부색 때문일까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외국인을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여행지에서 잠시 스치며 만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한 공간에서 회의를 하는 중인데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본부장과 몇몇 연구원들이 참석한 회의가 진행되었고, 신기술에 대한 설명과 평가 방법에 대한 협의가 오고 갔다. 기술 설명은 사전에 공유된 문서도 있고 사진도 있어서 이해가 가능했다.
문제는 구체적인 평가방법에 대한 부분이었다.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미세한 실험 조건의 차이를 맞춰봐야 했다.
내가 실험 담당자이니 내가 설명할 수밖에. 안 그래도 안 되는 영어를 평소보다 더 형편없이 못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대충 의견을 나누고는 나름대로 담당자라고 본부장에게 아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살균 대상 매체에 대한 검토를 먼저 하라는 것 같은데요."
"아닌 것 같은데, 대상 매체를 조건에 맞게 조제해야한다는 것 같은데."
이런 젠장.
그날 나를 보는 본부장의 미소 띤 얼굴에 미안해하는 듯한 얄궂은 표정만 없었더라도 십 년이 지난 그 사건이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이렇게 깊이 박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욕을 먹은 것보다 더 찝찝한 굴욕감이었다.
그날 회의는 그럭저럭 마무리되었지만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우리쪽 평가 시스템을 국제 규격에 준하는 수준으로 일치시키기 위한 세팅이 필요했다.
이 유럽인이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딱 3일.
3일간 오후에 유럽인의 조언을 얻어 실험 조건을 세팅하는 것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 이란 그럴 때 쓰는 거겠지.
언어가 불편한 상황에서 어떤 도움을 받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난 못 알아듣겠으니 누구 다른 사람을 붙여 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이 사람이 자기 나라로 가버리면 메일이나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게 그건 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이 되니 내 영어실력에 대한 부끄러움 따위는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어떻게든 알아내야 한다는 절박함에 손짓 발짓을 동원하고, 문장이 되지 못한 단어들을 막무가내로 던져가며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분의 설명이 어려우면 두 번 세 번 다시 질문하면서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했다.
말이 안 통하는 내가 답답할 만도 한데, 내가 안 되는 영어로 그림을 그려가며 물어보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처음엔 간단히 답변만 해주다가 본격적으로 칠판에 내용을 적어가며 수업하듯이 설명까지 해주었다.
심지어 자신이 평가 시에 활용하는 엑셀 파일을 내어주며 이 파일에 수치를 도입해서 활용해 보라는 조언까지 해주었다.
파일에는 본인이 입력해 놓은 수식이 포함되어 있어, 수치만 넣으면 시트별로 자동 계산이 될 수 있었다. 자신이 공들여 만든 파일까지 공유해 주는 외국인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분의 친절한 설명과 귀중한 정보 덕에 우리는 평가 시스템을 무사히 세팅할 수 있었다.
" 귀국하고 복귀하면 통화가 가능합니다. 그러니 그전에 결과를 메일로 보내주고, 가능한 시간에 통화하면서 리뷰합시다."
돌아가서도 마무리를 도와주겠다는 그분이 너무 감사했다. 이분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것이 조금 슬퍼지기까지 했다.
세팅한 시스템에 적용한 평가는 잘 마무리되었고, 통화하기로 약속한 날 실험실 한구석에서 아무도 없을 때 그분께 전화를 했다.
전화로 얘기하는 것은 직접 말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어서 또 한 번 진땀을 뺐지만 기존에 하던 대화들이라 그럭저럭 의사소통이 되었다.
통화를 마치면서 그분도 여유가 좀 생겼는지 본인은 아이가 둘이고,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도 아이가 있는지, 몇 살인지를 물어보았다.
만나자마자 정신없이 일 얘기만 했고, 짧은 시간에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이분과 차 한잔 하지 못한 것이 미안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꼭 하고 싶었지만 같이 있을 때는 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회의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많이 해보지 않은 실험이라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알려준 것들이 우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죄송했습니다."
더 유창하고 예의 있게 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더듬더듬 그 말을 하고 나니 그분에게 고맙기도 하고 내가 대견하기도 해서 주책맞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일은, 살면서 언어가 다른 사람과 생업에 필요한 대화를, 심도 깊게 해야했던 첫 번째 경험이었다.
보통 회사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든 망신스럽지 않게 잘 넘어가는데 급급했었다.
그런데 욕심이 생겼다.
영어 점수를 높여 좋은 스펙을 얻는 것 말고, 정말 영어를 잘해서 업무 영역을 늘리고 싶어졌다. 영어를 자유롭게 쓰게되면 얼마나 편할까. 진심으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