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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Mar 22. 2022

비염특공대 화성정복기

게으른 토요일 오후에 낮잠 한숨 잘 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곁을 살펴보니 아내가 몸을 뒤척거리며 깨어나려고 한다. 아내 옆 소형 캡슐에는 메주 여섯 덩어리가 칸칸이 안전하게 담겨 있었다. 투명 수면 캡슐 속에서 아내의 코와 메주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저 코와 메주에 우리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단 말이지? 


냉동수면실 온도가 단숨에 25도까지 상승하자 꽁꽁 얼었던 몸이 녹고 정신이 되돌아왔다. 화성 여행을 어렵게 했던 6개월이라는 장기간 비행은 냉동수면 기술로 이미 해결되었다. 에너지 소비를 제로로 만드는 냉동수면은 냉해동시 세포 파괴로 상용화가 잘 안 되다가 캐나다 숲개구리 냉동동면에서 마침내 실타래를 찾아 인류의 화성 탐험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었다. 초고압 상태에서 순간냉동을 통해 몸을 얼리면 심장을 포함해 몸속 세포가 전혀 파괴되지 않고 살아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얼렸다가 녹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필요한 기간만큼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게 냉동수면 덕분에 가능해졌다.


냉동수면 기술 성공 후 수십 차례 화성을 탐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 과학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과제 중 하나는 화성에 식물을 자라게 하는 것이다. 지구에 있던 모든 식물은 화성의 토질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좀 더 낮은 단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박테리아와 곰팡이 등 균류를 연구한 끝에 화성의 토질에는 표피포도상구균과 아스퍼질러스균이 생존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표피포도상구균은 콧속 등 인체에 기생하는 균이며, 아스퍼질러스 균은 메주에 산다. 특히 표피포도상구균은 기온 차에 의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비염 환자의 콧속에서 가장 강력하게 번식한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이런 균이니, 화성이니, 냉동수면이니 하는 건 우리 부부의 관심사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SF 영화의 소재일 뿐이었다. 우연히 비염 치료를 받으러 간 종합병원에서 나이 지긋한 의사가 ‘당신의 코가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고 있다’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를 듣고 난 후 1년간의 시간은 우리의 생활 패턴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정부 비밀 기관에서 나와서 아내에게 적합성 검진에서 통과할 경우 50억 원을 주겠다며 수십 장의 동의서를 받더니 1주일간에 걸쳐 50여 차례 정밀 검사를 진행했다. 아내는 그 모든 검사에서 합격했고 그 후 동행자를 모색하다가 마땅한 사람이 없어 결국 남편인 내가 보조 요원으로 선정되었다. 나 역시 훈련수당, 위험수당 등 별의별 수당을 다 합해 10억 원이 넘는 거금을 받는다. 출발 전 50%가 입금되었고 화성 탐사에서 돌아온 후 나머지 절반이 입금된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계약금이 입금되자마자 오랜 로망이었던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을 샀고, 화성에서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면 월세가 잘 나오는 꼬마빌딩을 매입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계약금이 들어오고 난 후 우리 부부는 화성과 박테리아, 우주여행 등에 관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연구소 내 ‘스튜디오 화성’에서 실전 연습도 꾸준히 했다. 연습장에는 메주도 있었는데 메주에서 균을 추출해서 화성 토양으로 옮기는 연습이 가장 중요했다. 오뎅집의  꼬치대 같은 걸로 메주를 들고 신중하게 균을 털어서 인조 토양으로 옮기는 연습을 하는 아내는 진지했다. 하얀색 우주복을 입고 메주에서 균을 채취하는 아내의 모습은 비현실적이었다.


아내가 다른 수많은 비염 환자들을 물리치고 비염특공대 첫 번째 요원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건 후보 중 일교차에 의한 재채기 알레르기가 가장 심했기 때문이다. 일교차가 커지는 봄가을에 아내는 어김없이 재치기를 심하게 했는데 이는 비강 표피에 붙어살아가는 표피포도상구균 영향이다. 이 균은 온도 차에 따라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물질을 좋아하며, 한번 재채기를 할 때마다 포도송이처럼 무럭무럭 번식하는 특징이 있다. 이 표피포도상구균이 살기 최적의 장소인 아내의 콧속은 화성에 생명의 씨를 싹트게 최고의 살아있는 배양소인 셈이다.


온도 차에 의해 재채기를 하는 아내를 볼 때마다 우리 부부의 첫 신혼집이 떠오르곤 했다. 숭실대 인근 산비탈 오르막에 있던 상도동 반지하 단칸방은 입구 문 쪽으로는 반지하였지만 반대쪽 벽으로는 완전 지하였다. 반대쪽 벽 위로 쪽창이 하나 달려 있었는데 그 조그마한 창문으로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신발과 발목이 보였다. 도시의 소음이 잦아드는 밤이면 신발마다 다른 소리를 냈는데, 탄성이 느껴지는 스니커즈, 또각또각 자신만만한 펌프스, 질질 끌리는 플립플롭, 신발들은 제 주인의 일과를 보낸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아내와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서 그 신발 소리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신혼집이 문제가 있다는 건 쪽창으로 슬리퍼 소리 대신 새롭게 어그부츠 소리가 들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겨울이 가까워지자 방 안에 냉기가 돌아 기름보일러를 틀었다. 부웅-, 기름보일러가 돌아갈 때마다 돈을 태워서 온기를 얻는 거 같아서 기름을 아꼈다. 말을 할 때는 방 안에 입김이 서리기도 했지만 차가운 바깥과 비교할 수 없는 미지근한 온기가 방안에 있었다. 


보일러를 틀고 1주일쯤 지났을까. 벽지 위로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걸레로 닦고 팡이제로를 뿌렸다. 하지만 이내 곰팡이는 온 방을 검게 잠식해 들어갔고 급기야 벽에 붙여 놓은 유일한 가구인 장롱까지 점령해 나갔다. 단열재가 없는 옛날 건물의 지하방은 온도 차로 인해 온 벽이 축축하게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곰팡이는 제 세상을 만난 듯 발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나이 들고 고집 센 집주인은 아무 말도 통하지 않았다. 번식력을 낮추기 위해 며칠은 아예 보일러를 끄고 오들오들 떨면서 지내보기도 했는데 이미 곰팡이가 온 벽을 장악한 상태라서 아무 효과가 없었다. 결국 온 방의 벽지를 뜯어내고 눈에 보이는 검은곰팡이들을 끝없이 닦아내면서 긴긴 겨울밤을 버텼다.     


‘에취’

재채기 소리와 함께 아내가 눈을 떴다. 잠시 현실 인식이 되지 않는지 멍한 눈빛이다. 반지하 원룸에서 달동네의 거실 딸린 원룸으로, 다시 적금 통장을 부어가며 동대문의 방 2개짜리 투룸을 얻고 악착같이 일해서 이제 끄트머리이긴 해도 강남구까지 꾸역꾸역 이주해왔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아내는 이만하면 살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평일 오전에는 아파트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며 러닝머신을 달리고, 오후에는 프리랜서처럼 자유롭게 일하다가 저녁 무렵 강아지 산책을 시켰다. 주말 오전에는 노천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으며 노닥거리고 저녁에는 야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생맥주를 마시는 평범하고 여유로운 삶을 살았다. 이런 일상에 만족해하며 지내다가 불과 1년 만에 탐사선에서 메주와 함께 얼려져 있다가 막 깨어났으니 현실 인식에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할 것이다. 


내외부의 온도 차에 의한 건 재채기나 곰팡이 번식에 국한되는 건 아니었다. 아내와 나의 관계에서도 늘 재채기가 일어나고 생채기가 났다. 아내가 안에서 받아들이는 인식의 온도와 내가 바깥에서 제공되는 현실의 온도는 늘 10도 이상 차이가 났고 이로 인해 결혼 초기에는 늘 관계에서 재채기가 나왔다. 온도 차가 클수록 관계는 축축했고 음습했다. 세월이 흐르고 아내와 나 사이 인식의 온도 차가 줄어들자 분위기는 점차 보송보송 해졌고 재채기를 대신해 가끔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우주선이 속도를 줄이고 화성에 착륙할 준비를 한다. 칼 세이건이 상상한 ‘추’나 ‘찌’ 같은 외계 생명체는 화성에 없었다. 그 대신 화성에는 앞으로 1주일 동안 아내가 포도나 메주를 닮은 세포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배양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냉동수면에 들어가서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똥 한번 누지 않고 6개월 동안 얼려져 있다가 지구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월세가 잘 나오는 꼬마빌딩 건물대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크게 재채기를 한번 한 아내는 다시 아이처럼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3월의 침대는 이불을 덮기에는 덥고 발로 차 내기엔 쌀쌀하다. 22년째 아내 곁에 누워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몽상하는 나는 아내가 깨어나면, 조금 전 재채기 소리를 듣고 ‘비염특공대 화성정복기’ 상상을 했다고 이야기를 할지 말지를 놓고 잠시 고민했다. 재미있는 상상이라며 깔깔댈지, 자기의 약점을 이런 식으로 놀리냐며 화를 낼지, 유치하고 식상하다며 무심하게 받아들이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반응에 따라 오늘 아침은 여름 장마철처럼 축축하든, 봄 햇살처럼  보송보송하든 또다시 새로운 하루가 배양될 것이다.

                                                                                                                                                 22.03.20 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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