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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Mar 27. 2022

아이 옷은 다람쥐가 가져갔을까?

“3688 고객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이미 보여드렸다시피 저희 내부 프로세스는 분실물이 나올 수 없게 정밀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 다시 한번 안내해 드릴게요. 문의하신 내용 확인 후 전산 기록물과 CCTV를 비교해가며 더블체크해 본 결과 수량과 품목이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저희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분실된 게 아닌 건 확실해 보여요. 혹시 또 다른 문의사항 있으세요?”


휴대폰 건너편 여자의 목소리는 공손했지만 단호했다. ‘당신네 서비스에서 분실된 게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서 옷이 사라졌다는 거예요!’ 답답한 마음에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잘 알겠다고 짧고 답변하게 전화를 끊었다. 지난주 금요일에 발생한 아이 옷 분실 사건은 1주일간의 여정을 거쳐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CCTV라는 확실한 알리바이까지 내민 이상, 더 이상 그쪽을 추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범인은 누구일까? 


어릴 적 엄마는 툭하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분명 여기 뒀는데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고는 며칠 후에 ‘아이고 내가 이걸 여기다 둔 걸 깜빡하고 며칠을 찾았네. 호호호’ 이러면서 방정맞은 웃음을 터트렸다.. 중·고등학생을 이과로 진학하며 귀신은 존재하지 않고, 곡을 할 리도 없으며, 단지 기억이 역삼각형 구조라서 인간은 누구나 착각과 망각을 자주 일으킨다는 객관적인 근거를 토대로 엄마에게 핀잔을 줬다. 나의 합리적인 설명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엄마는 물건이 사라졌다고 자주 혼잣말을 했으며, 며칠 후에 되찾고는 머쓱한 웃음을 짓곤 했다.


지난주 금요일 우연히 알게 된 아이 옷 분실 사건은 이와는 완전 다른 경우다. 나는 엄마와 달리 고등교육을 받았으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다. 사실과 견해와 미신과 가짜 뉴스의 차이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내가 지금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지 사실일 가능성인 높은 견해를 말하고 있는 건지 판단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킬 때도 육아 교육 책과 검증받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합리성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객관적인 사실과 확인되지 않은 추론을 다시 한번 분리해서 살펴보았다. 지난해에 사서 올봄까지 아이가 즐겨 입던 아이 옷이 사라졌다는 건 사실이다. 원피스 2벌, 치마레깅스 1벌과 카디건 1벌, 아우터 1벌까지 최소 5벌이 옷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외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 옷 몇 벌이 더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건 추측이다. 옷이 사라진 원인은 ‘런들고’라는 세탁 서비스 과정에서 생겼다는 건 유력한 추론이었으나 현재는 반론에 의해 신빙성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그 원인을 내가 종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주 토요일, 소파에 누워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했을 때 남편은 무심하게 대꾸했다. 


“세탁 서비스에서 잃어버렸나 보지. 편하고 좋다고 자랑하더니, 무슨 세탁 회사가 빨랫감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나 보네.”


토요일 늦게 일어나 소파에 드러누워 있는 꼴이나, 한량처럼 유튜브나 보고 있는 꼴이나, 나의 걱정과는 동떨어진 어투로 남일 얘기처럼 말하는 투나, 교묘하게 나를 책망하는 투가 모두 맘에 안 들었지만, 일리 있는 내용이라서 따지지 않고 꾹 참았다.


집 앞에 디지털 열쇠가 달려 있는 ‘런들렛’이라는 세탁바구니에 세탁물을 넣어두면 밤 사이에 가져가서 깨끗하게 세탁을 한 후 다음날 밤에 정확하게 갖다 주는 ‘런들고’라는 세탁 서비스는 가격은 저렴하고 서비스는 빠르고 정확했다. 가끔이긴 해도 물빨래도 필요에 따라 세탁업체에 맡길 수 있을 정도로 삶에 여유도 생겼다는 기분도 덤으로 느낄 수 있었다.


앱에 접속해서 채팅을 누르니까 토요일이라고 챗봇 상담만 가능하다고 나왔다. 챗봇이라는 게 예전 게시판의 FAQ 같은 걸 채팅으로 옮겨놓고 그럴 듯한 이름만 갖다 붙여 놓았을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로봇에서 말을 걸어보았다. 챗봇과 대화하기 버튼을 누르니 객관식 시험지처럼 몇 개의 항목 중 정답을 누르라고 한다. 기 이용자, 서울 강서구, 이용 중 문제가 생겼어요, 분실물, 1주일~2주일, 5~10벌. 이 까지는 어렵지 않게 선택을 한 후 다음 질문에서 잠시 고민을 했다.


맡기신 의류가 다음 가격대 중 어디에 해당되나요?

‘명품’ ‘고가’ 중가’ ‘저가’


고르기도 힘들지만 이런 걸 왜 물어보는 지 알 수 없다. 고가나 명품이면 전문 상담원이 붙거나 더 열심히 알아봐 주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이 옷은 대부분 ‘오즈키즈’라는 브랜드에서 구입을 하고 있는데, 명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싸구려도 아니다. 사람의 소득 수준에 따라 저가로 볼 수도 있고 고가로 볼 수도 있을 텐데 뭘 선택할지 망설여졌다.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 ‘중가’를 누른 후 몇 가지 답변을 더 고르고 나니 ‘고객님의 문의가 접수되었습니다. 정확한 확인 후 영업일 기준으로 1주일 이내로 답변 드리겠습니다. 문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나왔다. ‘추가로 더 질문할 것이 있나요?’에 ‘아니오’를 누르고 접수를 마쳤다.


월요일에 ‘문의 접수가 성공적으로 되었으며, 확인 후 연락드리겠다’는 안내 메시지가 다시 한번 온 후에 수요일에 본인들의 분실 확인 시스템의 우수성을 알리는 글과 함께 링크가 왔다. ‘SW3Z3688 고객님의 프로세스별 분실 점검 CCTV 영상 재검토 결과’. 제목이 길었다. 클릭을 하자 자동차 조립 공장처럼 거대한 공간이 보였다. 곧이어 내가 맡긴 세탁물이 종류별로 분리된 후, 오른쪽 상단에 HUD 방식처럼 옷이 종류별로 몇 벌인 지 도표로 표시되어 있었다. 세탁 과정에 따라 옷이 이동할 때마다 도표 오른쪽에 ’CORRECT’이라고 적힌 초록색 버튼이 차례차례 불이 켜졌다. 세탁기에서 전자 손처럼 생긴 집게가 옷을 뺄 때도, 건조기에 들어갈 때도, 바람으로 옷을 다릴 때도, 마지막 포장 단계에도 모두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영상을 보는 동안 잠시 내가 미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후 채팅 마지막에 ‘전화로 더 상세하게 상담하기’라는 버튼을 눌렀다. 상담원은 바로 전화를 받았으며, 내 주문내역과 이 모든 과정을 모니터로 보고 있는 듯 금방 내용을 파악했다. 


“보내주신 영상은 잘 봤는데요, 그렇다고 저희 옷이 그쪽에서 없어진 게 아니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나요? 잘 입고 다니던 애 옷이 한두 벌도 아니고 다섯 벌이나 갑자기 사라진다는 게 말이 되나요?”

“3866 고객님. 아이의 옷이 어디에서 사라졌는지는 저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영상에서 보셨다시피 저희에게 맡기신 세탁물은 입고부터 출고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수량으로 정확하게 세탁되어서 발송되었다는 건 확인해 드릴 수 있습니다.”

“영상에 있지 않는 장면에서 분실이 있을 수도 있고, 배송 중에 잃어버릴 수도 있고, 또 그 외 다른 이유로 잃어버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혹시라도 배송 등 추가 과정이 의심이 된다면 그 부분 영상도 확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소중한 고객님의 의류가 절대로 분실될 수 없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혹시 또 다른 문의사항 있으실까요?”


그리고 하루 뒤 목요일에 추가로 영상 링크가 왔고 또 미심쩍은 마음에 전화를 걸어보았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소파에 뒹굴거리며 조언이랍시고 해 준 남편의 추론은 틀린 게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면 도대체 아이 옷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지난주 금요일, 찜찜한 마음에 아이의 옷장 속 옷들을 계절에 맞춰서 다시 정리며 살펴보았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 길에 베이지색 바탕에 노란색 해바라기 패턴이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아이를 우연히 만난 게 계기가 되었다. 길 건너편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로 보였다. 해바라기 모양의 조그마한 크로스백까지 달린 그 옷은 우리 아이 옷과 똑같았다. 친구들이 예쁘다고 그랬는지 한동안 한동안 그 옷만 입겠다고 고집을 피우기도 했다. 새 옷을 좋아해서 철 지난 옷은 잘 안 입으려고 하는데, 그 옷은 맘에 드는지 한해를 넘기고도 계속 찾았다. 어느 순간부터 옷장에 보이지 않아 세탁 서비스에 맡겨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아이가 입은 걸 보고 마음먹고 옷장을 정리해보니 그 옷뿐만 아니라 총 5벌이나 되는 옷이 깜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릴 적, 핀이나 친구의 편지, 구슬이나 플라스틱 반지 등 내 보물들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 보물상자에 담아 뒷산에 몰래 땅을 파고 묻어둔 적이 있었다. 그 상자에 담긴 여러 가지 보물 중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보물 1호는 검정 플라스틱으로 테두리를 보호한 오목렌즈와 볼록렌즈 세트였다. 볼록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면 온 세상은 크고 뚱뚱한 부자 세상처럼 보였고, 오목 렌즈로 바꾸어 살펴보면 작고 초라한 가난한 세상으로 변했다. 요술처럼 세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내 보물 1호를 개구쟁이 동생이 자꾸 만지는 것이 싫어서 보물상자 젤 안 쪽에 넣어서 땅에 파 묻었다. 세상에서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에 숨겨 두었다는 비밀스러운 즐거움도 있었다. 


다른 재미에 푹 빠져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어느 날 그 보물상자를 다시 꺼내려고 뒷산에 가보았더니 보물상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특이하게 생긴 돌멩이로 표시까지 해 두었는데 그 돌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주변 땅을 나뭇가지로 파헤치다가 해거름이 되어서야 결국 포기했다. 내 보물들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꺼이꺼이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고소하다면서 나를 놀리는 동생을 혼내고는 다람쥐가 가져갔을 거라고 달래주었다. 다람쥐는 기억력이 안 좋아서 제 도토리 파묻은 곳을 잊어버리고 대신 니 보물상자를 찾아서 도토리인 줄 알고 가져갔을 거라고. 다람쥐가 니 보물을  갖게 되었으니까 다람쥐에게 좋은 일 한 거라고. 내 보물 1호였던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는 그렇게 다람쥐에게 선물 준 것으로 내 기억 창고에 저장되었다. 다람쥐 가족들이 모여서 자그마한 앞발로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들고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새끼 다람쥐들을 신기하게 살펴보는 귀여운 광경을 떠올리며 내 보물상자 상실의 아픔을 삭혔다.


어쩌면 아이 옷은 지난주가 아니라 훨씬 전에 잃어버렸을 수도 있다. 진작에 세탁 서비스에서 잃어버렸는데 내가 모르고 지내고 있다가 지난주에 우연히 발견한 것일 수도 있다. 만약 새 옷이라면 바로 발견했을 것이다. 공주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장식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옷도 새것을 좋아했다. 마음에 꼭 들거나 유치원 친구들한테 예쁘다는 얘기를 들은 옷은 계속 입혀달라고 졸라댔으나 그렇지 않으면 ‘새로 산 옷 입혀줘’라며 자기가 먼저 옷장에 가서 새 옷을 가져오곤 했다. 새 옷이 사라졌다면 금방 아이는 ‘내 옷 어디 있어?’라며 칭얼대서 내가 금방 눈치챘을 텐데, 해바라기 가방 세트 원피스는 한 해 동안 많이 입은 아이의 베스트 아이템이긴 했지만, 새 옷이 아니다 보니 사라진 게 뒤늦게 발견된 것이다.


코로나19가 터지고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우리 가족의 삶은 2년 정도 지나면서 또 언제 그랬냐는 등 일상이 되었다. 꽤 규모가 있던 광고대행사 출신의 남편은 여행문화에 혁신을 일으키겠다는 포부 가득한 스타트업 대표의 말에 설득되어서 여행 스타트업으로 호기롭게 이직했다. 놀라운 성장 가능성을 감안하면 연봉이 낮고 스톡옵션이 높은 게 우리한테 좋다면서 자신만만해하더니 이직 후 6개월도 안 되어서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월급 걱정을 면치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한동안 집에서도 예민해져서 직장을 다시 옮기니 마니 그러더니 회사가 소수 정예만 남아 국내 여행에 집중해서 위기를 넘기고 다시 해외여행으로 진출하기로 했다면서 마음을 다잡은 거처럼 보였다. 월급은 30%가 줄어서 내 월급을 보태도 대출금에, 생활비에, 유치원비에 많이 빠듯했지만, 우리 옷이나 애 옷 사는 비용처럼 줄일 수 있는 비용은 최대한 줄이고, 외식도 거리두기 핑계로 줄이고, 필요 없는 보험 2개를 깨고 나니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수입이 줄어들고 우리 생활이 조금 빡빡해진 건 괜찮았지만, 주말에 소파에 누워서 국내 여행지 유튜브 영상들만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게 업무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아이랑 좀 놀아주거나 집안일 좀 도와 달라고 그러면 이번 주말 동안 살펴봐야 할 여행지가 많다면서 옛날에는 직접 차 몰고 다녀야 하는데 지금은 누워서도 영상으로 현장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면서 본인의 게으름을 합리화 시키는 건 영 못마땅했다. 


건어물이라면 냄새도 맡기 싫은 내가 4년째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는 이유는 딱 하나, 10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는 조건을 맞춰주었기 때문이다. 사장을 포함해서 6명이 일하는 우리 사무실은 사장의 그날 기분에 따라 전쟁터처럼 살벌했다가 휴전을 맺은 것처럼 평화로워졌다. 그날그날 사장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건 매출일 때도 있고, 거래처와의 가격 협상일 때도, 마누라랑 관계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6시간 근무가 가능한 곳이기에 낮은 연봉과 열악한 복지, 사장의 예민한 변덕도 잘 참아내 가며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술집을 못 가서 그런지 매출에는 관심 없는 웹디자이너인 내가 보기에도 건어물 판매량은 눈에 띄게 늘고 있었다. 하지만 사장은 많이 팔아봐야 뭐하냐면서 남는 게 하나도 없다고 늘 투덜거렸다. 징징대는 게 보너스를 주거나 월급을 안 올려주려고 하는 속셈인 건 잘 알고 있지만 꼴상 사나운 건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3시 40분이면 하던 일을 중단하고 10분 정도 업무를 정리한 후에 남은 10분 동안 사장의 눈치를 피해서 퇴근 준비를 한 뒤에 4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해서 아이의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집 근처에는 큰길을 사이에 두고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2개의 사립 유치원이 있다. 모두 종교 관련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었고, 우리 집에서 거리도 비슷했다. 건물의 규모나 청결상태가 조금 차이가 나긴 했지만 크게 다른 점은 유치원비였다. 주택 단지가 모여 있는 구역에 자리잡은 유치원은 매달 4만 원의 활동비만 내면 나머지는 모두 무료였다. 중소형 규모이긴 해도 아파트 단지가 모여있는 쪽에 위치한 유치원은 매달 40만 원 정도씩 유치원비를 내야 했다. 처음 유치원을 보낼 때만 하더라도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냐며 싼 곳으로 보내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뱉은 한 마디에 결국 매달 40만 원씩, 1년에 거의 500만 원을 유치원비로 쓰게 되었다.


“친구 수준도 고려해야 하는 거 아냐?”


남편 얘기는 무료 유치원에 애를 보내는 집들의 수준이 비싼 유치원보다 떨어질 거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얘기는 친구들의 수준도 차이가 클 것이라는 뜻이었다.


“아니 당신이, 소득 수준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그런 속물로 변했어?” 


라고 한마디 톡 쏘아붙였지만 계속 그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결국 원비와 무관하게 비싼 유치원 쪽이 커리큘럼이 더 좋다는 핑계로 등록을 했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다 보면 무료 유치원을 지나치곤 하는데, 그렇게 봐서 그런지 몰라도 아이들의 옷이나 신발 등 행색이 우리 유치원을 다니는 애들보다 못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그런 생각 탓인지, 처음부터 아이에게 더 예쁜 새 옷을 입히려고 애를 썼다. 옷이라는 게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여러 번 빨다 보면 보풀이 일어나고 티가 나는 법이다. ‘새 옷 입으니까 더 예쁘네’라는 식으로 매번 칭찬을 한 내 영향 탓인지 아이도 나중에는 새 옷을 찾았다.


어제 상담원과의 통화 내용이 업무 시간에도 계속 떠 올랐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엄마의 목소리도 불쑥 생각났다. 어릴 적 보물 상자처럼 다람쥐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 옷을 훔쳐갔을 리도 없지 않은가. 금요일의 들뜬 마음이 옷 걱정 때문에 망치는 거 같아서 머릿속에서 옷 생각을 지워 버리려고 애썼다. 세상에는 이유를 알 수 없거나, 내가 이해하기 힘든 일도 일어나지 않는가. 그냥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3시 40분에 업무를 마감하고, 10분 동안 작업용 폴더와 책상 정리를 한 후 남은 10분 동안 사장 눈길을 피해서 커피 마신 컵을 씻고, 머리를 매만진 후 4시 정각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에게 방문 영어를 가르칠지 말지, 내년에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할 것 같은데 대출을 더 받을지 좀 싼 곳으로 이사를 갈지, 2주 전에 어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걷기가 불편하다고 전화가 왔는데, 고향에 한번 다녀와야 하는 건지, 남편 회사가 투자금 유치가 잘 되어서 이번 달 월급이 늦을 수도 있다는데 실제 월급이 안 들어오면 생활비를 어떻게 충당해야 할지, 코로나 시국에  스몰비어 가게를 차린 친한 친구가 진짜 급하다면 하루 이틀 만에 갚겠다고 나의 마지막 쌈지돈 1백만 원 빌려간 후 도통 소식이 없는데 전화를 해 봐야 하는 건 지, 퇴근 전에 마지막으로 급하게 작업한 쥐포와 맥주 합성 이미지를 분명 사장이 맘에 들어하지 않을 텐데, 월요일부터 잔소리로 하루를 시작되겠다는 걱정까지, 머릿속에 일관성 없이 무작위로 떠오르는 답 없는 고민들을 해가며 유치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치원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머릿속에 떠돌던 백만 가지의 일관성 없던 걱정들은 한순간에 모두 사라지고 딱 하나의 의구심만 남았다. 지난주 봤던 무료 유치원을 다니는 아이가 오늘은 알록달록 무지개 모양의 샤 스커트 상의에 유니콘 패치가 달려 있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다. 바로 내 딸아이의 옷장에서 사라진 두 번째 원피스와 완벽하게 똑같은 옷이다. 우리 아이의 옷장에 있던 옷을 왜 저 아이가 또 입고 있는 것일까?


사실과 견해와 가능성의 개념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우연히 만난 아이가 우리 아이와 똑같은 옷을 입고 입을 확률이 낮지 않다는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우리가 ‘오즈키즈’라는 브랜드를 좋아하듯이 저 아이의 집도 같은 브랜드를 좋아하고, 누구나 그 브랜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추천받아서 사니까 비슷한 옷을 입는 건 일반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그 옷 중 두 벌을 잃어버린  건 하나의 현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엄마라면  ‘다람쥐가 너네 옷장에서 가져다가 저 집 옷장에 갖다 놨나 보지. 저 집 애한테 좋은 일 했네.’라고 무심히 넘겨 버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엄마 같은 사람이 아니다. 


유치원에 전화를 해서 오늘 급한 일이 생겼다며  30분 정도 늦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늘 제시간에 잘 와서 애를 데리고 갔기 때문에 선생님은 별말 없이 흔쾌히 ‘1시간 정도 더 유치원에 있을 거니까 아이와 재미있게 놀고 있을게요.’라고 안심시켜주었다. 


지난주 처음 만났을 때는 아이 옷 생각에 빠져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아이 앞에는 꼿꼿해 보이는 할머니가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부부 중 한 명이 전업 주부이거나, 1년짜리  육아휴직을 쓰거나, 6시간 근무제 회사를 찾지 않는 이상 아이 유치원은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책임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니 특이한 일은 아니다. 주변에 아이를 데리고 가는 엄마, 아빠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아서 아이 뒤를 추적하는 건 표 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신호등이 달린 건널목 앞에 멈추는 걸 보고 같은 신호에 건널지 좀 멀찍이 떨어져서 다음 신호에 건널 지 잠시 생각을 했다. 이래저래 모를 텐데 싶어 같은 신호에 건너려고 아이 뒤로 바짝 다가섰다. 뒤에서 자세히 보니 아이가 입고 있는 유니콘 옷이 더욱더 우리 아이 옷처럼 느껴졌다. 1년 가까이 입었기에 올이나 실밥이나 물 빠짐 같은 곳에서 우리 아이 옷만의 특징이 느껴졌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우리 아이 옷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두 번 더 골목을 꺾어서 들어가자 인기척이 드물어졌다. 혹시 눈치챌까 싶어 뒤에 멀찍이 쳐져서 할머니와 아이를 살펴보며 따라갔다. 2층짜리 붉은색 벽돌 단독주택 앞에서 문을 여는 것 같더니 할머니와 아이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느 집 앞인지 헷갈릴까 싶어 시선을 그 집 문에 고정하고 쫓아갔다. 초록색 문 틈새로 살펴보니 앞마당에 손수레가 하나 있고 반지하방에 불이 막 켜졌다. 손수레 안에는 어디서 주워온 옷가지며, 박스들이 노끈으로 묶여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번쩍 뭔가 불길한 예감이 떠올라서 바로 뒤돌아서 아이 유치원으로 쉬지 않고 달려갔다. 


유치원 입구에서 숨을 좀 고른 후 선생님에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를 급히 데리고 나왔다. 골목 모퉁이를 돌자 말자 아이를 쪼그려 앉히고 다그치듯 물었다. 


“혹시 예빈이가 옷 버린 거니?”

“......”

“오늘 건너편 유치원에 있는 애가 예빈이 옷 입고 있는 거 엄마가 봤어. 솔직하게 얘기하면 야단치지 않을게. 예빈이가 옷장에 있는 옷을 갖다 버린 거니?”

“아. 아침에 유치원 앞에서 그 얘 만났는데 내가 알려줬어. 내가 버린 옷 또 주워 입으면 넌 거지라고. 아마 부끄러워서 앞으론 내가 버린 옷 안 입고 다닐 거야.”

“그게 무슨 얘기니? 옷은 왜 버린 거니?”

“내 옷이 없어져야 엄마가 다시 새 옷을 사 줄 거잖아. 요즘엔 엄마가 예쁜 새 옷 안 사 주잖아.”


아이에게 뭐라고 해줘야 할지 막막했다. 새 옷이 갖고 싶다고 입던 옷을 버리는 건 잘 못 된 행동이라고 혼내야 할까? 코로나 때문에 새 옷을 못 사 준 걸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줘야 할까. 모르는 또래에게 거지라고 비난한 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나쁜 행동이라고 따끔하게 혼내야 할까? 아이 입장을 이해해야 하나, 여섯 살에 불과한 철없음을 인정해야 하나? 다른 아이에게 평생 씻을 수 없을 수치심을 준 걸 어떡할 거냐면서 그 아이에게 찾아가서 사과하라고 소리쳐야 할까?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릴 적 내 보물 1호인 볼록렌즈와 오목렌즈가 그 순간 다시 떠올랐다. 볼록과 오목을 구분하는 수학적 정의는 어느 두 개의 임의의 지점을 직선으로 연결할 때 어떠한 경우에도 빠짐없이 도형 안으로 연결이 되면 ‘볼록’, 도형 바깥으로 선이 나가는 경우가 생기면 ‘오목’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교과서 바깥에서 볼록과 오목의 정의는 달랐다. 주변에 나눠줄 여유가 있는 경우엔 ‘볼록’, 부족함을 채워야 살 수 있는 경우엔 ‘오목’한 경우로 보는 게 현실적이다. 우리 집은 볼록할까? 오목할까? 


나름 볼록했던 우리 집이 코로나로 오목해지자 ‘아이’가 반항을 한 것 일까? 아니면 여전히 40만 원짜리 유치원을 다니고 있는 ‘볼록’한 우리 아이가 4만 원을 내는 ‘오목’한 아이에게 입던 옷을 던져 준 것 일까? ‘거지’ 같다는 치욕과 함께.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6살짜리 내 딸아이에게 알 수 없는 서글픔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졌다.  ‘다람쥐에게 좋은 일 했네’라며 세상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냈던 어릴 적 엄마처럼 ‘모르는 친구에게 좋은 일 했네’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바깥세상은 볼록렌즈처럼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고, 내 무릎 밑 아이는 오목 렌즈처럼 기형적으로 작고 초라해져 있었다.



2022.03.27 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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