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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Apr 10. 2022

코로나에 안 걸린 피 삽니다

‘코로나에 안 걸린 피 삽니다’


전봇대에 붙어 있는 전단지 문구는 단순하고 노골적이다. 색이 바래고 군데군데 긁힌 자국이 있다. 반년은 지나 보인다. 요즘 문구들은 좀 더 직관적이고 세련됐다. CTA(Call To Action) 기술이 가미된 카피들이다. '순혈 고가 매입', '검사 즉시 바로 입금', '순혈피 지금이 최고가입니다'.


불과 1년 반 전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하긴 4년 전인 2020년 새해를 앞두고 중국 우한에서 폐렴을 일으키는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만 해도 단순 해외 토픽으로 생각했지, 이렇게 사태가 커질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1년 동안 조심조심 지내다가 드디어 백신이 나와 곧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던 와중에 델타 변이가 나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1년 넘게 또 이어졌다.  


증상이 약한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되고 백신 접종률도 85%를 넘기면서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었다. 2년 반 동안의 역병 시대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정말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코로나19 후유증에 관한 검증되지 않은 루머들이 SNS상에서 확산되더니 불과 1년 만에 세상이 이렇게 또다시 예측 불가능한 상태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현실은 자주 우리의 예상을 비껴간다. 


전문가들은 후유증에 대해 시간 문제일 뿐이지 곧 해결될 걸로 전망했다. 주류 의학계에서도 유전자의 변이구조를 아직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지, 구조 파악만 이뤄지면 유전자 복원이 가능할 거라고 주장했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후유증은 이미 완결된 증세라서 복원이 불가능하다는 암울한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코로나 후유증을 고칠 수 있을지 없을지, 낙관론자와 비관론자 중 누구의 의견이 더 타당하지 나는 판단하기 힘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나타난 지 불과 1년 만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해서 코로나19 백신을 만들고, 화성으로 우주선을 쏘고, 양자역학이 보급되는 이 시대의 기술을 생각하면 가능할 것 같다는 낙천적인 예감이 들다가도, 한편으론 암이나 당뇨 하다못해 탈모나 무좀도 말끔하게 고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 후유증을 고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후유증이 세상에 알려진 건 네이버의 지역맘 카페에서 어떤 엄마가 올린 글이 시초가 되었다.


'우리 애기 코로나 잘 이겨냈어요. 근데 해탈한 스님 같은 포스가 ㅋㅋㅋ'


이 글에 공감 댓글이 하나씩 달리면서 글을 읽는 사람들이 뭔가 꺼림칙한 걸 느끼기 시작했다.


'우리 애기는 천국에서 하나님을 만난 포스가 ㅋㅋㅋ'


뒤이어서 공감 댓글이 쭉 이어졌다.


'우리 애기는 니체, 데카르트, 헤겔 다 만나고 온 듯 ㅋㅋㅋ'

'우리 아이는 엄청 순해졌어요.'

'우리 아이도 예전 같지 않고 뭔가 덤덤해진 거 같아요'

'애가 떼를 안 써서 좋긴 한데 확실히 코로나에 걸린 후 달라진 거 같아요. ㅠㅠ'

'저두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아기가 많이 변했다는 확신이 들어요. 다른 집 애를 키우는 기분이에요.’'

'맘님들. 뭔가 좀 활동성이 줄어든 거 같지 않나요? 저희 애가 고생을 해서 저희 애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예전처럼 까불지 않아요.'

'노는데 흥미를 잃은 거 같아요.'

'우리 애기가 호기심이 왕성했는데, 요즘엔 도통 새로운 것에 관심이 없네요.'


맘카페 글을 캡처해서 회원 중 한 명이었던 인플루언서가 자기의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그 글이 복제되면서 SNS상에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글에는 하나같이 우리 아기도 그렇다는 댓글이 꼭 달렸다. 언론과 의학계에서도 이 문제를 심상치 않게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확진자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오리무중 속이었다. 장기간에 걸린 사회적 거리두기로 실업률은 치솟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살하는 사람들도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활기를 기대했던 도시는 잠시 반짝 특수를 누리다가 사람들은 다시 코로나 시대처럼 조심조심 지내기 시작했다. 사회 분위기는 먹구름이 잔뜩 낀 잿빛 하늘 같았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활달해 보이지 않고 좀 차분해진  것 외에는 다른 후유증은 없었다. 엄마들 입장에서는 아이들이 좀 성숙해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기에 일부에서는 이걸 후유증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이들이 큰 고생을 해서 어른스러워진 걸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었다. 


하지만 신생아로 시선이 옮겨가자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코로나 감염 부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들은 태어날 때 잠깐 울기만 할 뿐 갓난아기 특유의 바둥대거나 말똥말똥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때에 맞춰 모유나 분유는 잘 먹고 잘 잤다. 잘 울지 않고 얌전했다. 그런데 말 배우는 게 영 늦었다. 첫돌이 지나서도 옹알거림조차 하지 않는 아이가 다수였다.  '엄마'라는 첫 말을 두 돌이 지나서도 못했다. 언어 학습 능력이 지나치게 떨어졌다. 행동 역시 굼떴다. 아이가 아이 같지 않았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께름칙함이 아니라 공포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의학계에서도 신생아 문제를 특히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신생아와 코로나 후유증의 상관관계' 등의 학술회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연구되고 있었다.  


정부가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정부는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코로나 감염 부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의 발육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느리다는 사례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하게 그 내용을 파악 중입니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로는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 감염 부모에게서 출산한 신생아뿐만 아니라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있는 유아, 청소년, 성인 등 모든 연령층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 후유증은 그 증상의 특징을 따 ‘'호기심상실증'으로 명명하기로 했습니다. '호기심상실증'은 코로나에 감염된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호기심은 영유기 또는 청소년기 학습 때 가장 강력하게 동기부여를 해 주는 요소입니다. '큐리민'이라는 호르몬이 호기심 생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까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은 큐리민 분비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성인들의 경우 호기심보다는 습관에 의해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후유증이 바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아이들의 경우 '큐리민' 결핍에 따라 학습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되는 등 그 후유증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우려가 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 발발 후, 사회적 거리두기로 통한 안전 확보, 백신의 순차적인 접종, 엔데믹으로 전환 등 시기마다 적절한 해결법을 잘 찾아왔듯이 '호기심상실증' 치료를 위해 산학연 협력을 강화하고 해외 연구기관과 공동 연구를 통해 이른 시일 내에 후유증 완화 신약 개발에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정부 긴급 발표를 지켜본 사람들은 크게 술렁거렸다.  '호기심상실증'은 뭐고 '큐리민'은 또 뭔가. 정부의 발표는 다음날 대서특필 되었다. 해외에서도 한국 정부의 공식 보도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루며, 전 세계가 힘을 모아 후유증 극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상증' 환자들의 모임 같은 네이버 카페들이 생기면서 각자 자기의 증상을 토로했다. 사는 게 재미가 없다, 무료하다, 의욕을 잃었다, 왜 일하는지 모르겠다, 공부하기 싫다 등 하나 같이 의욕을 상실한 내용에 관한 것들이었다. 코로나에 안 걸리면 트렌드에 뒤처지는 거라느니, 아직도 코로나에 안 걸렸으면 아싸 중의 아싸라거니 하는 우스갯소리는 싹 사라졌다.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의 대화에서 '순혈'이니 '혼혈'이니 하는 단어들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적이 없는 '순혈'인들은 '순혈 인증제'를 도입해서 '호상증'의 위협에서 우리를 지켜달라고 탄원서를 제출했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5천만 명 인구 중에 2022년 6월 말까지 2천만 명이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영유아와 신생아들의 후유증이 조금씩 제기되었던 9월경에 3천만 명, 그리고 2022년 크리스마스에 이미 4천만 명이 1회 이상 감염된 걸로 조사되었다. 2023년 초 엔데믹이 선언되고 더는 감염자 집계가 이뤄지고 있지 않으나 대략 추산으로는 1천만 명 중에 추가 감염자가 약 3백만 명, 감염되었으나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3백만 명 정도 될 걸로 예측된다. 즉 4백만 명에서 5백만 명만 '순혈'이고 나머지는 모두 '혼혈' 상태인 것이다.


피 광고가 전봇대 벽을 통해서 은밀하게 붙기 시작한 시점이 이때쯤이다. '호상증' 치료제가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순혈'의 피 일정량을 주사하면 약 한 달 정도는 다시 '큐리민'이 분비되고 호기심이 생긴다는 소문이 떠돌더니 ‘누가 효과를 봤다더라’라는 글들이  확산되었다. 모든 이슈에 대해서 빠르고 투명하게 발표를 해 오던 방역당국은 여기에 대해서는 그 파급력 탓인지, 사실 여부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계속 ‘사실관계 확인 중’이라는 말만 짧게 언급할 뿐이었다. ‘묵인은 인정’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순혈피가 일시적이긴 해도 호상증 극복의 특효약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언어 학습 속도가 너무 느리고, 의기소침해져 있는 모습에 안타까운 부모들은 아는 의사들을 통해서 '순혈' 피를 아이에게 공급해 주었다. 약 먹고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후기처럼 SNS상에는 수혈하고 아이가 예전으로 되돌아왔다는 글들이 난무했다. 몇몇 인플루언서들은 시무룩한 표정의 아이 표정과 신나게 웃고 있는 아이 사진을 비교해 올리면서 '드디어 예전의 저희 아이로 돌아왔어요'라며 환호했다. 광고 전단지 내용은 갈수록 구체화 되었다. 


'아이 두 돌까지 순혈 24개월 치 장기 계약, 회당 2백만 원+보너스. 총 5천만 원'

'순혈 1억 원 치 선구매합니다. 순혈증서+헌혈 전 정밀검사 통과 시'


브로커들이 등장하고, 순혈거래소가 생기고 갑자기 핏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퓨어 블러드 지수(PBI. Pure Blood Index)가 생기더니 암호화 화폐처럼 순혈의 피가 투자 상품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불과 1년 전까지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솔라나를 이야기하던 사람은 '혈액형 A형 순혈에 영끌해서 1억 집어넣었어.' 이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더는 전봇대에서 '코로나에 안 걸린 피 삽니다' 정도의 전단지를 붙여서 피를 구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자살률이 급증한 것도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큐리민'이 사라진 사람들이 삶에 의욕을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밝혀졌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가족이나 정신과에서는 순혈을 치료제처럼 찾기 시작했다. 이를 노려 혼혈인의 피를 순혈로 속여 파는 불법 헌혈거래소가 적발되어 대중의 비난을 샀다. 사회적 분위기 탓인지 순혈은 만병통치약처럼 과대포장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혼혈인들이 모두 우울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대다수 혼혈은 그냥 적당히 내려놓고 행복을 느끼는 삶을 선택했다. 돈을 더 벌겠다고 아득바득 살던 사람도, 좋은 대학 가겠다고 밤새도록 공부하던 학생도, 더 매력적인 이성을 찾아 클럽을 기웃거리던 사람들도, 건강 관리한다고 매일 같이 산을 오르던 할아버지도, 살 빼겠다고 저녁을 굶고 러닝머신을 달리던 여자도 그냥 툭, 내려놓았다. 뭐 어때. 오늘 하루 행복하면 되지 뭐. 그래서 자식이 없거나 이미 다 키운 혼혈들은 굳이 순혈을 찾지 않았다. 다만, 영유아가 있거나 아이를 낳을 신혼부부나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은 2세 때문에 순혈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순혈인들은 언제든지 피만 팔면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가난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런 이해하기 힘든 시국을 반겼다. 하지만 인구의 90% 이상이 이미 감염이 되었고, 순혈을 지키려면 사회 활동을 사실상 포기해야 했다. 어떤 순혈은 유리병처럼 언제라도 순혈이 깨질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을 견디다 못해 아예 자포자기하고 거리로 나서서 스스로 '혼혈'이 되기도 했다. 순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강남 아파트 한 채 사고 나면 순혈 포기합니다'라는 글들이 올라왔고, 그 아래에는 순혈값이 아무리 올라도 최소 10년 걸릴 듯.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헌혈은 월 1회 이상은 허용되지 않았고 뽑을 수 있는 양도 제한되어 있었다. 어떤 순혈들은 이러다가 치료제가 개발되면 우리 모두 똥 되는 거 아니냐며 치료제 개발이 실패하기를 바란다는 욕망을 내비쳤다. 


미혼 남녀들은 아이를 생각해서 순혈과 교제하려고 했다. 데이트에 앞서 최근에 발부된 순혈 증서를 확인하고 은밀하게 만났다. 결혼중개정보회사에서도 직업과 대학, 소득보다 순혈과 혼혈 항목이 첫번째 분류 기준이 되었다. 혼혈과 순혈이 결혼할 경우 큐리민은 절반 정도 분비가 되어 순혈 수혈을 받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아이가 학습해가면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류층에서는 만남의 첫 번째 조건을 순혈로 명시해 놓았다. 일부 시어머니들은 며느리가 감염되면 순혈 대리모를 구해 아이를 낳는 현대판 씨받이 요구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한 부족은 유전자 특성상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아서 모두가 순혈 상태라는 게 알려지면서 종족 전체가 아랍 지역 부자들에게 고가에 팔려나갔다는 소식이 해외 토픽으로 전해졌다. 


어둑한 방 책상에 혼자 앉아서 지난 2년 6개월간의 변화를 무덤덤하게 적고 있는 나도 만약 혼혈이 되면 더는 이런 르포를 적지 않을지 모르겠다. 뭔가를 배우고, 기록하고, 남기는 건 결국 호기심과 재미가 가장 큰 동력일 텐데, 피 한번 팔면 단번에 2백여만 원(한 달 전부터 4.6% 올랐다)이 넘는 돈을 버는 이 시대에 무미건조하게 이러한 글을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큐리민'의 자극 때문일까, 아니면 시대의 정의감 때문일까.


6개월째 집과 헌혈소만 다니는 내가 정말 운 나쁘게 '혼혈'이 된다면 혹은 운 좋게 '혼혈'이 된다면 나의 삶은 좀 더 행복해질까?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불안에 떨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정신적으로는 좀 더 안락한 상태가 될 것이다. 마음은 좀 더 평온해질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읽지 않는 혼자만의 글쓰기는 그만둘 것 같다. ‘굳이 뭘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나?’ 그냥 툭, 내려놓을 것 같다.              


                  
2022.04.10. 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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