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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Jun 29. 2022

도시 탐험

이스트런던의 달스턴

낯선 도시를 탐험하는 건 언제나 설렌다. 이국적인 공간은 더욱 그렇다. 이스트 런던에 위치한 달스턴은 이민자의 천국이다. 거리엔 흑인, 백인, 인도, 남미, 아시아 할 것 없이 온갖 피부색,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겉보기에 조금은 소외되고 결핍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이 도시를 지탱해 나가고 있다. 


달스턴 킹스랜드역에서 정션역까지 이어지는 메인 스트리트 로드샵의 모든 셔터에는 그래비티로 채워져 있다. 다채롭고 개성 있는 펍과 카페들이 골목마다 즐비하다. 오래된 극장인 리오 앞에는 낡은 야채가게와 무인매장인 아마존 프레시가 공존하고 있다.  


호기심 많은 광물학자처럼 집 근처부터 매일 부지런히 도시를 탐험해 나간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잘 꾸며진 집, 컨셉이 독특한 가게들, 그리고 잠시 한숨 돌리는 여유 속에 지나간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공원들. 


세상을 막 배우는 새끼 고양이처럼 매일 조금씩 조금씩 탐험 지역을 넓혀 나간다. 10일이 지나면서 달스턴을 넘어 해크니, 클리솔드까지 발걸음을 옮긴다. 새로운 마을은 또 그만의 또 다른 무드가 있다. 달스턴이 반항기 가득한 격정적인 10대 사춘기 같다면, 해크니는 20대의 밝은 에너지가, 클리솔드는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는 30대의 단란한 가족 같은 이미지다. 


달스턴에 어둠이 깔리면 도시는 낮과는 전혀 다르게 변모한다. 펍과 바에서는 시끄러운 목소리가 울리고, 거리에는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사람들, 골목 구석에는 쭈그려 앉은 부랑자도 보인다. 낮게 지어진 건물 위로 회색 구름이 걸쳐지고 경찰차나 앰뷸런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런던인지 스릴러 영화 속 배경인 낯선 도시인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푸른 기운과 함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면 달스턴은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말쑥한 얼굴로 정색하며 또다시 역동적인 모습으로 온몸에서 에너지를 뿜어낸다. 애슬레저를 입고 거리를 내달리는 사람, 백팩을 메고 자전거 바퀴를 힘껏 밟으며 질주하는 사람, 시계를 보며 바삐 지하철로 내려가는 사람, 셔터를 올리며 가게를 정리하는 사람, 환하게 웃으며 이웃에게 인사를 나누는 사람, 강아지와 함께 공원으로 향하는 사람, 떠오르는 런던의 태양과 함께 다시 시끌벅적 돌아간다. 


우리가 사춘기 시절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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