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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May 07. 2023

잡플래닛의 군복과 에어비앤비의 양복

'[잡플래닛] 기업리뷰가 등록되었습니다. 댓글을 등록해 주세요.'


가장 받기 싫은 메일이 또 날아왔다. 이틀 전 일이다. 7시쯤 기분 좋게 출근해서 메일을 확인하는데 잡플래닛에 리뷰가 등록되었다는 제목의 메일이 와 있었다. 리뷰 내용을 확인할지 말 지 잠시 고민했다. 리뷰를 보는 순간 오늘 하루는 망칠 것이라는 걸 경험상으로 잘 알고 있기에 머뭇머뭇하다가 결국 인내심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링크를 클릭했다. 


장점은 명언제조기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을 비꼬는 걸로 대신했고

단점은 아래와 같이 적어 놓았다. 

 

'면접 때 싸한 느낌을 무시하고 출근한 것을 하루종일 후회합니다.

타이핑의 시대도 지나갔는데 아직도 활자에 집착하며 정보를 책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안타까워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시대에 온라인 시장에 접근해서 운 좋게 작은 규모로 유지하고 있지만, 시장이 변화하고 있어요. ‘잘하는 법’을 검색하지 말고 ‘살아남는 법’ 도 검색하세요.

상위노출에 집착하는데, 노하우가 내 지인이 개발한 키워드 분석 프로그램으로 검색하고 로직 분석하기-광고하기 끝.

지원한 업무에는 포함되지도 않는 주문, CS를 병행하라는 건 물류팀 눈치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광고로 돈 쓰고 하루에 200명 유입시키기와 광고 없이 100명 유입시키기 중 전자를 선호하겠지만, 게임체인저들은 후자입니다.

그리고 제발 테스트하는 뉘앙스로 상대방에게 질문하지 마세요. 당신이 말한 것 중 50%는 틀렸습니다. 제가 틀렸다면 왜 그쪽 직원들이 4-5명 붙어도 해내지 못한 업적을 제가 이뤘을까요?

현실의 거품에 취해 스스로 객관화하지 못하고 오답을 정답이라고 우기지 마세요.'


그리고 경영진에 바라는 점에는 다음처럼 적어 놓았다. 

'제가 주식에 3억 정도가 들어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코스닥 상장은 어렵습니다. 동전주가 목표는 아닐 텐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불길한 예감대로 기분을 잡쳤다. 이 리뷰가 좋은 에너지를 가득 품고 출근해서 열정적으로 일하려고 준비하고 있던 나의 감정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은 건 물론 나에 대한 비난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사업 17년 차다. 멘털이 강해질 때로 강해져서 이 정도 비난은 웃고 넘길 수 있을 정도로 초연해졌다. 내가 감정 컨트롤이 안 된 건 이 친구가 쓴 내용 대부분이 사실과 다른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친구는 나에 대해 평가할 정도로 나를 알지 못한다. 우리 회사에 대해서도 모른다. 나는 정의에 불타 올라서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안내하고자 댓글을 바로 적었다.


'글 작성자는 원가 1만 원짜리 제품을 2만 원에 판매할 경우 원가율이 50%라는 기본적인 나누기 계산조차 하지 못해 수습 1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둔 사람입니다. 나누기와 백분율에 대해 아무리 쉽게 설명해도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할 정도로 지적 수준이 떨어졌습니다. 미술을 전공해서 디자인 감각이 뛰어날 걸로 예상하고 수습직원으로 채용했으나 기본적인 그래픽 툴조차 다루지 못했고, 비주얼 감각도 떨어져서 관련 업무 자체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능력 미달자였습니다. 인성이 좋지 않았는 데다 성격이 이기적이고 때론 괴팍한 모습을 보여 동료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근태 역시 불성실했습니다.' 


라고 적었다. 그리고 내용을 쭉 한번 읽고 객관적 사실이 맞는지 다시 확인했다. 객관적 사실은 모두 정확하고 나의 평가도 적합했다. 하지만 링컨이 미드 장군에게 부치지 않은 편지처럼 이 댓글은 등록할 수 없었다. 끝에서부터 백스페이스키를 눌러서 내용을 모두 지웠다. 그리고 다시 적었다. 


'소중한 의견 감사합니다. 다른 분들께 오해가 여지가 있어 몇 가지 사실 관계를 바로 잡고자 합니다. 평가를 다소 감정적으로 표현하셨는데, 재직 중 그러한 점을 신중히 헤아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만 오랫동안 함께 회사를 키워오고 좋은 문화를 함께 만들고 있는 멤버들의 노력이 폄하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절제된 어휘를 사용해서 몇 가지 틀린 내용을 바로 잡았다. 답변 작성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올려보니 9시가 다 되었다. 사무실을 둘러보니 직원들이 출근해서 분주하게 하루 일과를 시작할 준비하고 있었고 분위기는 활기찼다. 소중한 아침 2시간 동안 나는 뭘 한 건가.


잡플래닛이라는 서비스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소기업 대표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고 있을 때 나는 방관자 입장이었다. 몇몇 회사 대표들이 악플에 시달리며 비난을 하고 있을 때 솔직히 나는 잡플래닛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기업과 직원 사이에는 심각한 힘의 불균형이 존재했다. 기업이 직원에게 무례하게 대하고 횡포를 부리더라도 직원 입장에서는 노동부에 진정을 낼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묵묵히 참고 지 견딜 수밖에 없었다. 기업에 대한 정보가 폐쇄적이고 일방적이라서 일하기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이전 퇴사자의 정보가 다음 입사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례가 반복해서 나왔다. 억울함을 당한 직원들은 호소할 곳도 없이 묵묵히 인내하며 따르거나 떠나야만 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나에게 조금 불리하지만 세상 전체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야. 잡플래닛 환영!'. 이게 당시 나의 진심이었다. 대표들 모임의 술자리에서 잡플래닛이 난도질을 당하고, 일부 강성 대표는 잡플래닛을 방문해서 이의 제기까지 하고, 힘을 모아서 국민 청원을 넣는 등 기업들의 반발은 심했다. 나는 심적으로는 공감했으나 이는 사용주의 권력 일부가 사용인에게 배분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불가피한 통과의례로 받아들였다. 우리 회사에 관한 악플이 하나씩 늘어날 때도 일종의 성장통 또는 사소한 부작용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잡플래닛에 지속적으로 우리 회사 관련된 부정적인 피드백이 올라오고, 그것이 사실과 다른 내용인 경우가 빈번해지자 이건 뭔가 구조적으로 설계가 잘 못 된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네이버 뉴스 댓글처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게 된다. 잡플래닛 서비스 구조상 심각한 허점이 있는 걸로 보였다. 


잡플래닛의 해약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대표들도 세월이 흐르면서 만성화되고 둔감해졌다. 부정적인 여론을 잠재우는 데는 잡플래닛에서 기업 리뷰를 관리할 수 있는 유료상품을 내놓은 점이 꽤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기업의 입장을 달 수 있도록 댓글 기능도 추가되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각 기업에서 잡플래닛에 대응하는 방식은 그 유형에 따라 크게 3가지로 갈렸다.  


1. 무시형 : 리뷰가 달리거나 말거나 무시한다.

2. 답변형 : 잘못된 리뷰에만 댓글을 달며 억울함에 해명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한다.

3. 관리형 : 잡플래닛 기업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서 긍정적인 리뷰를 상단으로 올리고, 재직자들을 동원해서 좋은 리뷰를 달게 하는 등 적극적으로 리뷰를 관리한다. 


나는 1번에서 2번으로 옮겨 온 상태이며 나중에는 3번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대표들이 무시를 하거나 항변을 하는 등 각자의 해법을 찾고 있는 사이 잡플래닛은 모든 구직자와 면접자들이 필수적으로 보는 사이트로 자리매김되었다. 유튜브에는 잡플래닛 평점별 대응 방법 등 영상이 수만 회씩 조회수를 찍으며 인기다. 


사실 잡플래닛이 한 건 하나였다. 리뷰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 리뷰는 힘의 원천이자 세상을 바꾼다. 다수의 리뷰는 진리가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쇼핑몰들이 리뷰 관리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고, 이를 관리해 주는 리뷰 관리 솔루션도 다양하다.


판매자에 앞서 한 명의 고객인 나 역시 리뷰 수혜자다. 낡은 자동차를 어떻게 팔아야 하나, 중고차 매매상들은 모두 사기라는데. 이런 불안을 '헤이딜러'라는 중고차앱 리뷰 덕분에 해소하고, 안심하고 만족스럽게 거래할 수 있었다. 차가 고장이 났을 때 중고차 수리상들이 덤터기를 씌운다던데 어떡하나 라는 걱정은 '카닥'에 있는 리뷰 덕분에 말끔하고 만족스럽게 해결했다. 얼마 전 집을 이사할 때 포장이사는 '위매치다이사'에서, 입주청소는 '미소'에서 리뷰를 통해 업체를 고른 후 만족스럽게 이사를 마무리했다. '캐치테이블'의 리뷰는 상당히 신뢰할만해서 그곳의 리뷰를 보고 고른 식당은 언제나 만족스럽다. 리뷰를 볼 수 있는 각 분야별 플랫폼은 정말 많은 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잡플래닛 역시 이러한 앱들과 마친가지로 사회적 약자인 구직자들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있다. 예전에 직원이 몇 명 되지 않았을 때 나는 퇴사자가 생기면 그와 식사 자리를 꼭 가졌다. 나와 우리 회사가 더 나아지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제 떠나는 길이니 솔직하게 피드백을 달라는 취지였다. 재직 중이면 하지 못할 얘기를 그 자리에서는 허물없이 다 털어놓았고, 이는 내가 대표로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조직이 커져서 이를 못하고 있는데, 잡플래닛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잡플래닛은 현재 치명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리뷰가 네이버 댓글화 되고 있다. 지금 네이버 댓글은 기사에서 읽지 못한 인사이트를 얻거나 독자들의 여론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욕설과 비난으로 뒤덮였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혐오증만 유발할 뿐이다. 잡플래닛 역시 이런 기미가 보인다. 재직했던 회사가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실 기반의 정보를 피드백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전략하고 있는 분위기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익명성이라고 나는 분석한다. 익명성은 유익할 때도 있지만 무서울 때도 있다.  


온라인상에 커뮤니티가 생긴 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다. 내가 막 대학에 입학했던 무렵 천리안, 하이텔, 나우누리 등 PC통신상 커뮤니티는 신세계였다. 온라인상에 처음 생긴 그 익명의 공간에서 나는 자유를 만끽했다. 인터넷시대로 전환이 되고 다음카페나 디시인사이트, 뽐뿌 등에서 익명은 마음껏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었고, 온라인 언론사에서도 익명성 덕분에 진실을 고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게 정확히 언제를 기점으로 익명이 득 보다 실이 많아졌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익명은 오염되었다.


익명이 가진 양면성. 익명은 프랑스의 시민혁명처럼 억압과 권위에 저항하는 힘, 아랍의 봄처럼 자유를 위한 몸부림이라는 긍정적인 뉘앙스와 음지에서 검은돈이 거래되고, 테러범들이 실체를 숨기기 위해 사용하는 부정적인 뉘앙스,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중 관리되지 않는 온라인 공간에서 익명의 부작용은 너무 심각하다. 익명의 뒤에서 온갖 욕설이 난무하고 비난과 혐오가 조장된다. 


금융이 실명제를 통해 한 단계 도약을 한 것처럼 실명이 필요한 곳은 실명으로 전환이 되어야 한다. 나는 가상화폐에 대해 우호적으로 생각한다. 가상화폐가 가진 익명성과 효율성이 금융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이 세상에 반항을 일으키고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가상화폐가 범죄에 악용되거나 득 보다 실이 더 많아질 경우에는 개선책이 필요한 시점이 생길 것이다. 익명이든 실명이든 어떤 게 더 좋은지를 떠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상의 변화에 따라 적절하게 상호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뉴스 댓글은 작성자가 이전에 쓴 댓글을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도입했지만 이는 네이버의 저급한 댓글 수준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언발에 오줌누기다. 네이버뉴스의 댓글을 보고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다는 사람은 없다. 네이버 댓글은 없앨 수 없어서 명맥만 유지하는 과거의 유물일 뿐 세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잡플래닛의 리뷰 역시 개선을 하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힐 것이 분명하다. 야만의 시대에서 리뷰가 문명의 시대를 열었는데, 그 리뷰가 오염되어서 다시 야만의 시대로 추락할 위기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부작용도 없다. 

놀라울 정도로 리뷰 관리를 잘하고 있는 벤치마킹 사례가 이미 존재한다.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상호평가다.


이 좋은 서비스를

잡플래닛이 몰라서 안 하는 건지, 

알고도 안 하는 건지,

내가 모르는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못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에어비앤비를 이용한 제주도의 한 숙소에서 우리에 대해 감사의 글을 보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쪽지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외국의 한 숙소를 이용한 후에 그 호스트가 우리에 대해 평가한 메시지를 보내는 걸 보고 깨달았다. 내가 숙소를 평가하듯이 숙소에서도 손님인 나를 평가하는구나. 


처음에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전지전능한 손님이다. 평가를 할 뿐이지 당하지 않는다. 내가 평가당하는 주체로 전략되었다는 게 조금 불쾌했다. 그리고 잇따라 든 생각은 혹시라도 내가 무례하게 행동해서 숙소에서 나쁜 평가를 받는다면 다음에 더 좋은 숙소를 예약할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염려였다. 그 후 나는 에어비앤비가 노렸듯이 더 좋은 게스트가 되기 위해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숙소를 더 깨끗하게 이용하고, 떠날 때 정리정돈을 깔끔하게 하며 매너 좋게 행동했다. 


이 모든 건 게스트가 호스트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호스트 역시 게스트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덕분이다. 혹시라도 내가 무례하게 행동해서 부정 리뷰를 받는다면 다음 숙소를 예약할 때 불리할 수 있다는 이 가정이 나라는 게스트의 행동을 보다 성숙되게 만들었다.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모처럼 군복을 꺼내 입고 예비군 훈련장에 모이는 순간 나는 군복의 익명성 속에서 자유로워졌다. 쓰레기를 좀 버려도 될 것 같고 침을 뱉어도 될 거 같다. 얼굴에 인상을 쓰고 욕설을 하며 발로 물건을 좀 차도 이상하지 않았다. 군복을 입는 순간 나는 개별적 특성을 가진 한 명의 개체가 아니라 누군지 알지 못하는 1/N인 예비군이 되는 것이다. 군복은 신분을 하향평준화 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다.


반면 가끔 행사가 있어서 양복을 입게 되면 나는 어깨를 쭉 펴고, 걸음걸이부터 당당해진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신중하고 교양 있게 말을 한다. 얼굴에 미소를 짓고 사람들을 좀 더 다정하게 대한다. 옷에 먼지가 묻지 않았는지 살피고 청결에 더 신경을 쓴다. 내가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 속에서 품위 있게 행동한다. 에어비앤비는 내가 군복을 벗고 양복을 입게 만들었다. 내가 품격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설계했다. 


에이비앤비의 의도대로 나는 매너 좋게 행동했고 모든 호스트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에어비앤비 게스트 평가 항목이 있다는 걸 알면 대부분 매너 있게 숙소를 이용하게 되고, 나쁜 점수를 받을 일도 자제하게 된다. 손님만 왕인게 아니라 손님과 숙박업소 사장님 모두 서로를 왕처럼 존중하고 배려한다.  


우리 회사는 몇 해 전부터 연 2회 다면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직원부터 대표까지 모두가 모두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남긴다. 분명한 건 다면평가를 실시하기 전과 실시한 후에 멤버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평가가 보상과 직결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팀장들은 팀원들을 좀 더 존중하고 배려해 주었다. 업무 관련 팀들끼리도 예전에는 가끔 서로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이제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리뷰를 남길 수 있다는 걸 아는 만큼 좀 더 협력하고 친절하게 대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는 일방의 평가가 아니라 상호평가 혹은 다면평가로 인해 많은 분야에서 큰 변화들이 일어났다. 그중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곳 중 하나가 학교가 아닐까 싶다. 폭력과 욕설이 난무했던 교실은 선생님 평가가 도입된 후 완전히 달라졌다. 도입되는 과정에서 반발도 컸고 여전히 몇 가지 또 다른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천지개벽이다. 평가를 할 뿐, 평가는 받지 않았던 선생님이라는 권위 뒤에서 난무하던 부조리함이 상당히 많이 개선되었다.


병원의 의사도 환자가 의사를 평가하는 앱이 생기면서 서비스가 많이 좋아졌다. 여전히 검찰이나 판사처럼 견제를 받지 않는 절대적인 권력도 있지만 대부분의 영역에서 상호평가는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는 억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독재국가에서 살던 시민들이 무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처럼 위대한 변화다.


에어비앤비에서 호스트가 나를 평가한다는 걸 알고 나는 보다 높은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나만 호스트를 공격할 수 있는 리뷰라는 칼을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호스트 역시 나와 똑같은 크기의 칼을 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재래식 무기를 갖고 있는 거 같아서 얕잡아 보였던 국가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알고 서로 조심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원리랄까.


모든 인간은 저마다 저급하고 상스러운 면모부터 고귀하고 품위 있는 면모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내가 입은 옷이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나의 가장 밑바닥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때론 고차원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김정운 교수가 [나도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고백한 것처럼 교수도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면 십 원짜리 욕을 하는 철부지로 변한다. 


나의 어떤 본성을 끄집어내느냐는 결국 환경이다. 잡플래닛의 익명성은 군복을 입었을 때처럼 글 작성자의 가장 밑바닥 감정을 분출하게끔 설계가 되어 있다. 반면 에어비앤비는 양복을 걸쳤을 때처럼 품격 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설계가 되어 있다. 그 설계에 맞춰 이용자들은 네거티브한 면모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품위 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에어비앤비는 호스트 평가에 공개평가와 비공개평가가 있어서 비공개로 진심 어린 피드백을 남기는 세심한 기능까지 있다. 부정적인 피드백을 남길 때조차 에티켓을 지킬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해 놓았다. 욕설은 자제하고 표현은 절제해 가며 내용은 사실에 근거해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리뷰다. 


그렇다면 잡플래닛에서 작성자에 대한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면 좋을까. 평가에 앞서 우선 작성자의 신뢰도를 보여주면 좋겠다. 직장 생활에서 측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신뢰 기준은 재직기간이다. 그 회사에 얼마나 오랫동안 근무했는지는 평가자 리뷰에 신뢰성을 부여해 줄 것이다. 이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정보를 통해서 자동화가 가능할지 모르겠다.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면 스스로 그 회사 재직 기간을 입력한 후에 글을 쓰게 하면 될 것이다. 이력서 정보를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 1년 넘게 사귄 전 연인의 평가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1시간 커피숍에 앉아서 잠시 대화 나누다가 헤어진 상대방이 하는 평가는 동의하기 힘들다. 사람이든 회사든 그걸 알기까지는 일정 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재직기간이 아무리 짧아도 6개월, 아니 1년은 되어야 그 회사에 대해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은 된다고 나는 믿는다. 


현재 우리 회사 악플은 정직원 전환이 되지 못하고 수습 기간에서 계약 만료가 된 이들이 남기는 경우가 많다. 수습기간을 통과하지 못한 건 업무 역량에 문제가 있는 것이고 당연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헤어진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억울하기도 하고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아서 섭섭하기도 할 것이다. 그 부분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우리 회사가 보다 더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왜곡된 가짜 정보를 퍼뜨려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적 해악이다.


재직기간 정보 제공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사팀에서 퇴사자를 평가하는 기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잡플래닛 글 작성자 아이디를 눌렀을 때 해당 기업의 인사팀에서 남긴 평가가 공개된다면 보다 매너 있고 사실 기반으로 글을 적지 않을까?  관광지의 무례한 식당처럼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연일 것이라는 생각이 거짓말과 무례함을 만든다. 그래서 세상에 단 한 번밖에 필요하지 않은 운전면허증 시험장이 그렇게 불친절한 게 아닌가. 내가 한 행동이 나의 다음 구직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똑같은 피드백을 남기더라도 보다 세련되고 정확하게 표현할 것이다. 조롱하고 과장하고 모멸감을 주는 형태가 아니라 진정으로 개선되기를 바라는 점 위주로 정제된 표현을 사용해서 피드백을 남길 것이다. 


전 직장 인사팀이 퇴사자 평가를 남길 수 있고, 이 내용을 다른 기업 인사담당자가 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어마어마한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은 뛰어난 인재의 연봉은 더 많이 오를 것이며, 불성실하고 태도가 좋지 않은 저성과자들은 취업에 더욱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면접자의 말이 진실인지 검증하는 진실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모든 기업들은 그 유료 서비스가 얼마가 되든 그걸 이용할 것이다. 회사 내 인사평가처럼 이 정보는 각 기업의 인사팀에서만 공유가 되고 그 외 사람들에게는 비공개로 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입사지원서와 연결해서 이력서 제출자의 이전 평가 결과를 볼 수 있다면 잡코리아나 사람인이 아니라 잡플래닛에 구직공고를 내는 기업들이 순식간에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 역시 평가에 자신 있는 지원자들은 잡플래닛을 통해 입사지원을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잡플래닛은 기업에 관한 리뷰를 보는 기업평판 서비스를 뛰어넘어 인재평판 서비스로 확장될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건 현실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한 나의 상상이다. 현실 가능성이 없거나 부작용이 심각할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서비스를 할 경우 갑자기 회사를 안 나온다거나, 퇴사할 때 말썽을 일으킨다거나, 인수인계를 안 하고 그만둔다는 등 퇴사 시 몰상식한 면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별은 아름다워야 한다. 내가 지금 하는 행동이 나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린다면 우리는 아름답게 이별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이 자기 검열을 통해 우리가 보다 성숙된 면모를 보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연애앱이나 결혼중개앱에서도 이성에 대해 리뷰를 남겨서 다음 연애 당사자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남자든 여자든 서로가 안 맞아서 헤어지더라도 품위를 지키며 헤어지려고 노력할 것이다. 나의 다음 연애를 고려해서 마지막까지 상대방을 배려할 것이다. 무평가도 아니고 일방평가도 아니고 서로 평가를 할 수 있고 이것이 다음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은 인간의 행동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내가 에어비앤비 게스트 평가를 통해 바뀌었듯이. 


영월에서 펜션을 하고 있는 이모 사장님은 네이버 예약자와 에어비앤비 예약자는 수준이 다르다고 한다. 네이버 예약자는 기본적인 에티컷을 지키지 않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두 번 세 번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데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이 들어오면 마음이 놓인다고 한다. 에어비앤비 예약자는 게스트 평가가 있다는 걸 대부분 알기 때문에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다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을 하더라도 실제 이용자가 그들의 지인이거나 부모님일 경우 가끔 무례하게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 주었다. 


숙박 관련한 분쟁에서 숙박업체가 잘못한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일부 분쟁은 손님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오물을 안 치우거나, 집기를 훼손하는 등 몰상식하게 행동해서 발생한다. 손님은 정의도 아니고 왕도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 전화상담원이 고객들의 문의 내용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고객들이 전화상담원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쌍방이 모두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기업과 퇴사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위해야 한다.  


잡플래닛에서는 근속기간이나 직책, 직급 등은 전산화를 통해 가져올 수도 있고 이력서를 조회해서 검증을 할 수도 있다. 정확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글 작성 시 수동으로 기입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턴인지 수습인지 정규직 직원이 남긴 건지 그룹으로 나눠 표시해 주면 글 작성자의 신뢰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인사담당자의 평가를 남기는 건 조금 민감한 주제다. 하지만 가능할 경우 어마어마한 사회적 효용성도 가져오고 큰 비즈니스 기회가 열릴 것이다. 채용시장에 일대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채용시장에서 낭비되고 있는 비용이 얼마나 큰가. 이 부분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다. 

유료 기업회원들에게 좋은 리뷰를 1페이지에 올리는 것처럼 잡플래닛의 본질을 훼손하는 유료화 모델이 아니라 올바른 평가라는 본질에 충실하면서 큰 수익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처럼 작성자가 이전에 작성한 리뷰를 볼 수 있게 하는 기능도 도움 될 것이다. 분명한 건 채용시장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며 많은 혁신을 일구어낸 잡플래닛이 단순히 퇴직자나 사회 부적응자들의 화풀이 공간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잡플래닛이 세상에 보탬이 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를 보다 공정하고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데 기여할 토대를 이미 갖추고 있다. 


[넛지]에도 나오듯 약간의 테크닉만 추가되면 세상은 크게 바뀐다. 누군가가 나를 좋게 평가하고, 그것이 나의 다음 행동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 때 사람은 본인이 가진 고차원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 평가가 휘발성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계속 축적이 된다면 매 순간 보다 품위 있는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면접 때 면접자와 면접관 모두 첫 번째로 묻고 싶은 건 한 가지다. 

"왜 그만두었나요?"

면접자는 이전 근무자가 어떤 이유 때문에 그만뒀는지 궁금하고, 면접관은 면접자가 이전 직장을 왜 그만뒀는지 궁금하다. 잡플래닛은 이 중 한 가지를 해결해 주었다. 퇴사자 입장에서 왜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제 잡플래닛은 남은 한 가지. 회사 입장에서 볼 때 그가 근무 시 어땠는지도 남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잡플래닛 기업 리뷰 기능 덕분에 수많은 기업들이 좀 더 구직자를 배려하게 되었듯이, 잡플래닛의 인재 리뷰 기능이 도입된다면 더 많은 구직자들이 품위 있는 면모를 보일 것이다. 리뷰는 평가이고 평가가 모이면 평판이 된다. 그리고 그 평판이 쌓여서 신뢰자본이 된다. 개인과 기업 모두 신뢰자본을 쌓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네가 그 모양으로 했으니까 나는 더 한 복수를 하겠다는 복수의 시대가 아니라, 서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는 화해의 시대. 몰상식이 사라지고 존중과 배려 속에서 피드백을 하는 긍정적인 문화를 잡플래닛은 만들 수 있다. 디테일한 기획과 최신 기술을 활용해 보다 청결한 정화 시스템을 만들어 내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전까지 나는 어쩔 수 없이 일 년에 몇 번은 잡플래닛이 보낸 시스템 메일을 받고 놀래가며, 1주일이나 1달을 채우지 못하고 떠난 수습 직원들의 비난의 글에 속상해하며, 어휘를 신중하게 골라 감정이 절제된 표현으로 답변을 달며 아침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직업의 행성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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