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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백필름 Apr 29. 2023

귀꺼풀

2명의 목소리가 특히 컸다. 목소리가 큰 직원 한 한 명이 센터에서 본사로 보직이 변경되면서 본사 소음 문제는 좀 더 부각이 되었다. 처음 거래처와 전화 통화를 시작할 땐 소곤거리는 목소리다. 하지만 대화에 빠져드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져 어느새 사무실을 쩌렁쩌렁 울린다. 내방은 유리로 방음이 되어 있어서 별 상관이 없었지만 직간접으로 소음 피해를 호소하는 동료들이 늘어났다. 


개선하려면 측정부터. 데시벨 측정기 3대를 구입했다. 목소리가 큰 2명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하나는 내 목소리의 데리벨을 자가측정 해보려고 내 책상 위에 두었다. 


"보세요. 지금 우리 사무실이 60에서 65 데시벨 정도를 왔다 갔다 하잖아요. 전화를 할 때 몇 데시벨까지 올라가는지 스스로 측정해서 동료들의 근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노력해 주세요."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나의 솔루션에 2명의 직원 모두 상당히 불쾌함을 표했다. (나의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왜 측정기 사건이 기분 나쁠 일인지 의문스럽다.) 한 명은 1주일 정도 사용한 후, 다른 한 명은 1달 정도 사용하더니 전화할 때 조심하겠다고 그러고는 측정기를 반납했다. 몇 달 후 목소리 큰 직원이 다시 센터로 복귀하면서 데시벨 측정기 이슈는 일단락이 되었다.


나는 소음에 예민한 편이다. 전화 통화 목소리가 거슬려서 사업 초창기부터 창고 한 구석에 임시 칸막이를 설치해서 내 방을 만들 정도로 소음에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돋보기로 빛을 모으듯 나의 모든 에너지를 한 곳으로 뾰족하게 집중해서 모아야 한다. 이 때 소음이라는 방해요인을 제거하는 건 필수적이다.


회사 내에서는 소음 문제를 해결해 나가지만 회사 바깥의 공간은 통제 불가능한 영역이다. 엘리베이터 안이나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간혹 받는다. KTX를 타고 지방 출장을 가거나 비행기로 해외 출장을 갈 때 모처럼 독서삼매경에 빠져 보려고 책을 꺼내는데 주변 승객들의 소음 때문에 망쳤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다. 중국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소음에 특히 취약하다. 중국 버스에서는 이어폰 없이 모바일 음향을 키우고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을 왕왕 만날 수 있어서 소음 공해를 단단히 각오하고 이용해야 한다. 


음량에 관련되는소음 외에, 청자가 듣기 싫은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든 목소리도 소음에 해당할 것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한편으론 소음 유발자다. 회의시간 중 팀장들에게 반복해서 이슈를 설명하고 실행을 요청한다. 개선이 잘 안 되는 점은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상대방이 끄덕끄덕 쉽게 동의를 하면 금방 잦아들 때도 있지만, 반발하는 눈빛이면 어떻게 해서라도 설득을 시켜볼 요량으로 이런 예시, 저런 예시를 다 끌어와서 논리적으로 무장해 보려고 애쓴다. 사실 그들에겐 내가 반복해서 하는 주장은 모두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소음을 자유롭게 유발할 수 있는 권리와 동시에 나는 회사 내에서는 소음을 듣지 않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우리 회사는 1년에 2번씩 상하반기 다면평가를 실시한다. 약 1시간에 걸쳐 전 직원이 각자 본인의 업무와 관련 있는 직원 전원을 대상으로 서로 역량과 성과에 대해 평가를 주고받는다. 나도 평가 대상에 포함된다. 이때 주관식 평가도 있는데 나에 대한 피드백은 언제나 신랄하다. 특히 경청 관련해서 유난히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말이 직설적이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아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직원들 모두가 회사를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직원들을 더 많이 이해해 주고 직원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회의 중 제가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말을 자르면 상당히 무안합니다. 이 부분 꼭 바꾸시길 바랍니다. 얘기를 듣다가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메모해 뒀다가 얘기 끝나고 한 번에 전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직원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안 들어줄 거니까’ 의견 개진을 안 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나중에는 이런 얘기조차 안 할 수도 있습니다.'


한결같이 내가 귀를 막고 본인들의 얘기를 경청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다. 여기에 고집까지 세니, 내가 직원이라도 나 같은 상사를 만나면 답답하긴 답답하겠다는 자기 성찰이 들 때도 있다. 다면평가 결과를 종합해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 하고, 듣기 싫은 말은 안 드는 건 객관적인 사실로 보인다. 한 회사의 대표라는 직업은 과중한 업무량과 무거운 책임감,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끊임없는 위기감을 감내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자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표라는 직업이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말은 다음대로 할 수 있고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듣지 않을 권리.


이게 얼마나 큰 매력인가. 이 권리를 내가 마음껏 누리다 보니 직원들에게 끊임없는 컴플레인을 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못 하는 답답함도 있지만 이보다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할 때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게 사람의 목소리로 인한 소음이든, 사물의 소음이든, 기계음이든 모두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아파트에 거주하면 층간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다. (층간소음 때문에 고민이라면 오즈키즈 층간소음 실내화 추천) 도로가에 살면 차량 소음 때문에 스트레스다. 집안에서는 사소한 잔소리 때문에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긴다. 회사 내에서도, 거래처에서도, 친구 사이에도 우리는 늘 듣기 소리를 하거나 듣는 입장에 처한다. 


언어는 화자의 역할이나 청자의 역할 모두 쉽지 않다. 화자는 스스로 긴장감을 늦추고 잠시 방심하면 스스로 폭력성을 띄게 된다. 대화는 배구 경기처럼 한 사람이 던지면 상대방이 받아서 넘겨주고 또다시 받은 공을 네트 위로 넘기면서 서로 주고니 받거니 진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상대방이 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받기 싫은 상태임에도 일방적으로 공을 날린다. 그 공은 더 이상 놀이로서의 공이 아니라 상대방의 정신을 폭행하는 무기로 변신한다.


청자의 역할도 쉽지 않다. 경청은 언제나 어렵다. 가만히 앉아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고난이도다. 하드 트레이닝이 필요한 영역이다. 나에게 특히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경청에는 비효율성이 존재한다. 군더더기를 모두 발라내고 최대한 핵심만 간결하게 요약해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싶은데, 대부분의 대화는 사소한 감정부터 일이 진행된 절차, 그 과정 속 노력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변명까지 불필요한 요소들이 뒤죽박죽으로 섞여서 전달된다. 이럴 때 내가 '핵심만 간결하게 요약해서 얘기해 주시겠어요?'라는 멘트를 날리는 순간 나의 다음 다변평가 피드백에는 앞번과 같이 부정적인 피드백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경청을 바탕으로 제대로 소통하려면 '시간'이라는 자원이 필수적이다. 그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그 감정은 나도 비슷하게 느낀다는 '공감'까지 조미료처럼 뿌려지면 제대로 된 경청으로 받아드릴 것이다. 하지만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자원은 늘 부족하고 가난한 처지다. 빈곤한 시간을 쪼개 우선 순위 위주로 자원을 배분하다 보면 경청은 호사스러운 행위로 치부되고 그러면 상대방과의 대화는 건조해진다. 그나마 직원들의 의견은 경청의 가치가 크다. 하지만 살면서 듣지 않아도 되는 필요없는 소음들이 너무 많이 나의 귀에 들어온다. 차 소리, 공사장 소리, TV소리, 의미없는 논쟁들 등 시끄러운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귀꺼풀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상상한다. 인간의 귀는 눈만큼 진화가 세련되지는 못했다. 물고기가 빛을 파악하려고 만든 작은 점에서 시작된 눈은 놀라운 진화를 거듭했다.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색깔을 구분한다. 피곤하면 눈물샘이 윤활유를 보내주고 휴식이 필요할 때 눈꺼풀이 이불처럼 눈을 덮어준다. 


이에 비해 인간의 귀는 물고기의 옆줄과 비교했을 때 그다지 큰 진화를 이루지 못한 거 같다. 물론 물속 음파를 통해 위험을 감지하는 물고기의 옆줄에 비하면 인간의 귀는 굉장히 넓은 데시벨을 분간할 수 있으며, 뇌와 연결되어서 음파를 해석할 수 있다. 언어와 비언어를 구분하고 언어는 각 음절마다 의미를 담아 상대방에게 전달된다. 폭포소리처럼 반복되는 파동은 자연스럽게 제거하는 '천연 노이즈 캔슬링' 기능은 에어팟 못지않다.


하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귀의 기능은 듣기 싫은 소음을 내 마음대로 막아낼 수 있는 기능이다. 보고 싶은 않은 장면을 마음대로 덮어버릴 수 있는 눈꺼풀처럼 듣고 싶은 않은 소음을 덮어버리는 귀꺼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닭이 홰를 치며 울 때 그 소리가 140 데시벨까지 올라간다. 이때 닭은 체내 귀마개를 활용해서 스스로 귀를 보호한다고 한다. 인간의 감정도 귀꺼풀을 통해서 보호받을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보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귀꺼풀이 눈꺼풀처럼 움직임이 바로 보인다면 사회적 활용성이 떨어질지 모른다. 만약 내 모습이 보기 싫다고 내 앞에서 직원 중 한 명이 가만히 눈꺼풀을 내린다면 나는 즉각적으로 흥분할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내 목소리도 듣기 싫다고 귀꺼풀까지 같이 내린다면 나는 화가 폭발해서 아마 길길이 날 뛸 것이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는데 아이가 귀꺼풀마저 내린다면 엄마는 '귀꺼풀 올려!'라고 외치며 더욱 화를 낼 것이다.


그래서 귀꺼풀은 말랑말랑한 속귀 어딘가 잘 보이지 않는 위치에 달리는 게 좋을 거 같다. 고막 바로 앞쯤에 이중창처럼 두 겹이면 좋겠다. 상대방의 입모양을 보면서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끄덕거리며 들키지 않게 사용할 수 있다면 활용성이 아주 좋을 것이다. 수도꼭지로 물의 양을 조절하듯 데시벨의 강도에 따라 두 겹의 귀꺼풀을 펄렁거리며 음량을 조절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롭고 고요해지겠는가. 울창한 숲 속에 들어가서 시원한 바람 소리와 맑은 새소리가 들릴 때는 양겹의 귀꺼풀을 모두 활짝 열고 그 아름다운 소리를 즐길길 수 있고. 


1차선인 귀의 통로를 2차선으로 확장하는 것도 또다른 해법이 될 수 있다. 단선에서 복선으로 바뀌는 철로처럼 귀 바깥으로는 하나의 통로이지만 중간쯤에 2개의 통로 중 하나로 선별해서 보낼 수 있는 구조 말이다. 한쪽 통로는 고막을 통해 뇌의 청신경으로 연결되어서 현생 인류와 동일하게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다른 통로는 소리를 직수관처럼 뇌 어디에도 전달하지 않고 바로 뇌 바깥으로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다. 상수도와 하수도 관을 나누는 것처럼 의미 있는 소리는 1번 관으로, 무의미한 소음은 2번 관으로 우리가 마음대로 조절해서 보내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완벽하게 소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회의실에서 내가 외치는 말들 중 몇 % 정도가 직원들의 1번 관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을까? 1번 통로로 억지로 집어넣기 위해서 전원 회의록 작성을 강요하고 사후 검사를 하는 등 대안도 마련하겠지. 사람들 간의 대화 중에 '그런 얘기 첨 듣는데'라는 표현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사실 귀꺼풀이나 귀 속 2차선 같은 비현실적인 상상이 아니더라도 우리 집의 구성원 중 한 명은 이미 인공 귀꺼풀을 이용해서 신종족의 귀로 진화했다. 큰아들의 귀에는 언제나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있는 에어팟이 꽂혀 있다. 에어팟 덕분에 아들의 귀는 3가지 옵션을 완벽하게 구비했다. 


평화로운 상태에서 그 에어팟은 off 상태로 구인류의 귀와 동일한 옵션 1의 상태로 유지된다. 주변에 약간의 소음이 있거나 노트북을 통해 집중이 필요한 일을 할 때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 적절히 외부와 차단되는 옵션 2의 상태를 유지한다. 집안에서 원치 않는 논쟁이 벌어지거나 소음이 심할 때는 아들의 손은 바로 귓속의 에어팟을 길게 터치해서 '노이즈캔슬링' 상태인 3번째 옵션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아들의 귀 상태가 현재 몇 번 옵션인지 파악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에 응답하면 1번 현생 인류 귀 상태, 큰 소리로 불러야 대답을 하면 2번 과도기 신인류 귀 상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대답이 없을 때 3번 완벽한 신인류 귀 상태인 걸로 판단한다. 3번 옵션일 때는 방으로 들어가서 톡톡 어깨를 치면 아들은 단절된 세상과 다시 연결된다. 


그런데 귀는 단순히 소리를 듣는 기능만 하는 게 아니다. 귀 안쪽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는 달팽이관이 하는 역할은 평행감각 기능. 더 이상 맹수를 피해 야생을 내달리면서 균형을 잡을 필요가 없어진 오늘날 달팽이관은 평행감각 보다 균형감각을 유지하는데 더 필요할지 모르겠다. 화자와 청자 사이 서로 존중하는 균형감, 대표와 직원 사이 역할의 균형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세계관의 균형감. 


그리고 빠르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이 세상,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묵묵히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의지의 균형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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