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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r 02. 2022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

캄보디아에서의 데이트

이번 발렌타인데이가 다가오자 A가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발렌타인데이를 맞는 거 어때?


발렌타인데이를 여행지에서 보낼 수 있다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그대로 특별할 것 같아 나는 당연히 좋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를 2월 14일이 아닌 2월 24일로 하자고 약속했다.


각자 발렌타인데이 선물은 한국에서 준비해 가기로 했는데, 짐을 싸야 하다 보니 부피가 작은 선물을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우리 둘 다 보통 선물을 여러 개 준비하고 작은 선물부터 풀어보도록 하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나는 전에 A가 아직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말을 기억하고 영문판 '데미안'과 캄보디아에서 신을 만한 뉴발란스 스포츠 양말을 샀다. 그즈음 A가 계속 새 벨트를 사야 한다고 했었기에 심플하고 예쁜 남성용 벨트도 선물로 준비했다. 같이 편지를 쓰기로 했어서 캄보디아로의 여행과 어울리는 귀여운 엽서를 샀다. 야자수에 둘러싸여 춤추는 랍스터가 그려진 엽서가 A와 퍽 잘 어울린다고, 꽤나 닮았다고 생각했다.


캄보디아로 출국하기 며칠 전, 내 선물을 사러 쇼핑을 간 A가 갑자기 전화를 해왔다. 내 선물을 사러 왔는데 주고 싶은 선물이 부피가 너무 커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사고 싶은데 캄보디아에 절대 가져갈 수 없다는 거다.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라고 했다.


다시 A에게 전화가 와 받아보니, 부피가 큰 선물이라 캄보디아에 가져갈 수는 없지만 선물을 여러 개 준비했으니 두 개는 한국에서 서로 선물하고 나머지 한 가지만 캄보디아에 가져가자고 했다.


그래서 먼저 받아본 선물은 무드등과 텀블러였다. 무드등 사이즈를 보니 절대 캄보디아엔 가져가지 못했겠다 싶었다. 나도 책과 양말을 먼저 선물했다. 우리는 남은 선물을 서로에게서 꽁꽁 숨긴 채 짐을 쌌다.


그리고 캄보디아에서의 발렌타인데이가 되었다!

2월 24일 목요일. 이날 우리는 프놈펜을 떠나 남서쪽 작은 해안도시인 캡에 도착했다. 피부에 난 알러지가 심해지기 시작해 엄청 속상했던 날이지만 우리만의 발렌타인데이로 정했던 날이라 한편으론 들뜬 기분이었다.


별거 없었지만 그냥 그 하루에 이름을 붙인 것만으로도 특별했다.


잠시 멈춰 그날의 바다도 구경했다.

우리는 그 전날 야시장에서 산 옷을 입고 귀여운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먹고, 차가운 커피를 마셨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과 맥주를 사려고 했는데 근처에 편의점이나 마트가 없어서 길가의 레스토랑에서 물과 맥주를 샀다. 주인분은 우리에게 물과 맥주를 팔 수 있어서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숙소로 돌아왔는데 하늘에 별이 정말 많았다. 역시 어두운 시골에서 보는 별이 최고다. 둘 다 숙소로 가는 길에 계속 멈춰 서서 하늘에 뜬 별을 구경했다.

숙소에서 보이는 별들

숙소에 돌아가 각자 한국에서 준비해 온 선물을 풀어봤다. A는 캄보디아에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귀여운 캡모자를 내밀었다. 사실 내가 모자를 두 개 가져가려고 할 때 하나만 가져가도 충분할 것 같다기에 약간 눈치를 챘었다. 그래도 귀여워.


나도 내가 선물로 준비한 벨트를 A에게 건넸다. 오래오래 잘 써라!


그리곤 우리는 숙소 앞 발코니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서로에게 편지를 썼다. 알레르기 약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한 캔만 마셨다. 아마 피곤했는지 A도 한 캔만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A도 한국에서 엽서를 사 왔는데 엽서가 나랑 닮아서 샀다고 했다. 둘이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웃겼다.  


책상이 없어 둘 다 편지를 무릎에 대고 쓰느라 글씨가 개발새발... 그래도 그랬기 때문에 서로에게 줄 편지를 함께 쓰던 그 시간도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

우린 이렇게 맥주를 마시며 쿵푸팬더1을 보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프놈펜에서 캡까지의 여정은 정말 험하고 길고, 힘들었지만 이날은 알레르기만 빼면 정말 완벽했던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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