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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켠서 Mar 17. 2022

캄보디아에서의 첫 병원 방문기

눈물로 얼룩진, 캡


뒤집어진 피부 때문에 속상했지만 우리만의 특별한 발렌타인데이를 보내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피부 상태를 확인했지만 전날보다 더 수포가 많이 올라온 것이 아닌가. 속상한 마음에 아침부터 눈물을 쏟을 뻔했다.


도대체 이유가 뭔지, 덥고 습한 날씨와 땀, 먼지가 피부를 뒤집어지게 만든 건지, 아니면 알레르기 반응인지, 땀띠인지, 알 수 없었기에 막막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계속 악화되기만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어떤 부위도 아니라 얼굴이었기에 더 속상했다.


나는 입맛도 없는데 아침부터 먹자는 남자친구가 밉기까지 했다.


A는 혹시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 호스트는 캄보디아에 오래 살았으니 원인을 알 수도 있다며 한번 물어보자고 했다. 아침식사와 커피를 기다리면서 프랑스인 호스트에게 혹시 이런 두드러기 증상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에 그는 여기 와서 시작된 거냐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프놈펜에서부터 피부에 빨갛게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전날부터 엄청 심해졌다고 말하자 호스트는 몸이나 다른 부위는 어떻냐고 물었다. 다른 데는 다 괜찮다는 내 대답에 그는 내 증상이 딱 양 볼에만 일어나고 있기에 아마 덥고 습한 날씨에 쓴 마스크 때문일 거라 말했다.


물이 안 맞다면 얼굴의 다른 곳도 충분히 두드러기가 올라올 수 있는데 오직 양볼에만 올라오는 것이 마스크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우리는 호스트가 위치를 알려준 약국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캡 해변 쪽에 위치한 UCare Pharmacy라는 드럭스토어 체인점에 들렀다.

엄마가 말씀하신 것처럼 약한 스테로이드 성분 연고나 알약을 얻을 수 있길 바랐지만 약국에서는 스테로이드 크림은 처방을 받아야만 줄 수 있다고 했고, 또 오히려 피부를 예민하게 만들 수 있다며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딱히 별 도움도 받지 못하고 약국을 나와야 했다. 아벤느 미스트와 바이오더마 수분크림만 구매할 수 있었다.


오전 열한 시부터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더웠고, 피부는 더 뜨거웠고, 이게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여행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상황이 날 힘들게 했다.


엄마도, A의 어머님도, 에어비앤비 호스트와 약사까지 햇빛을 조심하라고 했으니 오늘만큼은 자외선에서 벗어나 있기로 했다. 그렇게 계획하고 나니 해가 쨍쨍한 건기의 캄보디아에선 정말 할 게 없더라.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 갔다가도 그냥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괜히 심통을 부린 것도 있지만 가만히 있는다고 달라질 게 없으니 뭐라도 해서 빨리 낫게 하고 싶었다. 그래야 남은 여정을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날 저녁을 먹었던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는 내내 나는 거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A는 내게 제발 거울 좀 그만 보라고, 계속 거울만 보면 더 스트레스를 받을 거라며 너무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 나아질 기미가 없이 더 심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식당에서 나오자마자 울먹이는 목소리로 A에게 얼굴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치만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심각한 표정으로 내 뺨을 살핀 후 그가 말했다.

-병원에 가자.


캄보디아에서 이런 이유로 병원에 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구글맵에 병원이라고 검색하니 고민할 것도 없이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하필이면 정말 깡촌에서 지내고 있었다.


정말 여기가 병원이 맞나 싶은 곳에 도착했다. 모래로 된 운동장 같은 것이 중간에 자리한 게, 한층짜리 중학교 같이 생긴 곳이었다. 모든 게 다 크메르어로 적혀있어서 우리는 들어오자마자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 우리를 현지인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힐끔거렸다.


접수처도, 안내하는 사람도 없이 휑하니 놓인 병원 앞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익숙한 듯 성큼성큼 걸어 들어오는 백인 남성이 눈에 띄었다.

A가 때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저기요, 혹시 영어 하세요?


그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예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진료를 받고 싶은데 혹시 어떻게 받는지 아시나요?


그는 문 앞에 놓인 의자를 가리키며 "저기서 기다리면 된다"라고 말한 후 사라졌다.


엉거주춤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드디어 내 순서가 되어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손짓을 따라 작은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앉아 진료를 봤다. 갑자기 캄보디아에 오고 며칠 후부터 얼굴에 이렇게 붉게 올라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어제 더욱 심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 얼굴을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해산물 같은 거 먹은 게 있나요?


A가 해산물을 그닥 좋아하지 않고 나도 육류를 더 선호하는 편이라 우린 해산물을 먹은 적이 없었다. 내가 아니라고 하자, 의사 선생님께선 얼굴만 그런 건지, 다른 부위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는지를 물었다. 나는 또 아니라고 답했다.

-얼굴만 그래요, 양 볼만.


잠깐 고민하던 의사 선생님은 알레르기 반응 같다고, 괜찮아질 거라며 얼굴을 시원하게 해 주고, 자외선을 조심하고, 세수는 생수로 하라고 말씀하셨다.


얼떨떨하게 진료실 밖으로 나왔는데 돈을 내라는 사람도 없더라.


A가 돈은 안 내도 되는 거냐며 물어왔지만 나 또한 그게 궁금했다. 몇 분간 서성이며 기다리던 우리는 그렇게 병원을 나왔다.


병원에 다녀오니 해결책은 없어도 마음은 아주 약간 편해졌다.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구나-싶었다. 그리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알레르기 반응이라는 것. 내 얼굴을 보자마자 해산물을 먹은 적 있냐는 질문에서 전문가가 볼 때 이건 알레르기인 것이다. 볼 사진을 찍어 엄마에게 보냈을 때도 엄마가 말씀하셨지만 알레르기가 맞았다.


그치만 또다시 난관 봉착이다. 무슨 알레르기인 것인가.


이날 아침, 일어났을 때 어렴풋이 든 생각이 있었다. 혹시 말라리아 약 때문일까? 병원에서 돌아와 저녁 먹기 전까지 실내에서 쉬는데 A가 말했다. 혹시 말라리아 약 때문 아니야? 그렇지만 검색을 해봐도 말라론 부작용 중에 피부 트러블이나 두드러기 같은 건 없는데. 엄마에게 병원에 다녀왔다는 소식을 전하는데 엄마도 말라론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씀하셨다. 2017년에 다른 약을 먹고 똑같은 알레르기 반응이 양 볼에 올라온 적이 있는데 안 맞는 약을 먹었을 때 나에게 나타나는 알레르기 반응일 것 같은 것이다.


말라리아 예방약 자체가 강한 성분의 약이고 이미 비행기에서 메스꺼움을 겪었었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A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A는 자기가 아까 맞췄지 않냐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알레르기 반응보다 말라리아가 훨씬 위험하지만, 아직까지 캄보디아에서 모기 한 방 물리지 않은 우리였다. (그만큼 모기 기피제를 엄청나게 뿌려댔긴 하지만)


일단 이게 정말 말라리아 약 때문일지도 모르니까 약을 한번 중단해 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알레르기 약은 계속 복용 중이었다.


저녁으로 캡에 있는 피자 레스토랑에서 피자를 먹고 숙소에 돌아가기 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우리가 가장 많이 방문했던 바닷가 레스토랑을 한번 더 방문했다. 찰랑이는 밤바다 소리. 캄보디아의 밤바다는 정말 어둡다. 캄캄한 어둠 속 고작 몇 개의 불빛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한다. 우리는 나란히 밤바다를 마주 볼 수 있는 테라스 앉았다. 커피가 안된다고 하여 뜨거운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2 pot이나 시켜두고 캡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을 마무리 했다.

결국 약국에서 구매한 것들


+얼굴을 식혀주라던 의사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한국에서 가져온 팩을 붙이고 선풍기 아래에 누워있으니 천국이었다. 팩이 말라갈 때면 위에 다시 아벤느 미스트를 뿌리면서 거의 한 시간가량 붉게 올라온 얼굴을 식혔다. 실제로 팩을 제거하고 나니 붉은 기가 많이 사라져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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