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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보라니까 Dec 16. 2024

그거 혼자 한 거 아니야

삶은 공학 / 빌 해먹 / 윌북

과학자들에 가려진 공학자들의 업적이나 발명의 뒷이야기를 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 주제는 공학과 과학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비행기의 원리를 아직도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지만, 공학자들은 비행기가 하늘에 뜨게 한다. 공학자들은 문제해결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실전에는 통하지만 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곤 한다. 그래서 공학자들의 성과는 과학자의 그들에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중간중간 일종의 한풀이를 한다.


그러나 이 책의 더 중요한 주제 혹은 가치는 어떤 발명도 불현듯 나타난 천재가 하루아침에 만드는게 것을 설명한데 있다. 발명을 위인전의 시각으로만 볼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개선들이 누적된 것임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 준다. 


전자레인지는 레이더를 만드는 일을 하던 사람이 우연히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둔 사탕이 녹은 것을 발견한 데서 영감을 얻어서 뚝딱 발명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원시지구에서 갑자기 진핵세포가 생겼고, 이어서 인간으로 변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생명의 진화가 긴 시간 누적된 변이의 결과인 것처럼, 전자레인지의 발명도 해당 시점의 기술과 재료의 한계 그리고 소비자의 수용가능성 등 수많은 이유로 인해 개발 방향이 달라지고 사용용도와 판매대상이 달라졌고 결과적으로는 처음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됐다는 것이다. 책의 끝무렵에 있는 전자레인지 발명 흐름도가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은 생물의 진화계통도와 다르지 않다. 결국, 발명은 천재발명가가 이뤄낸 기적이 아니라, 사회적 협력의 누적적 결과물인 것이다. 재미있다. 아주 잘 쓴 책이다.


그런데 표지와 제목이 난감하다. 구름들과 제목, 그게 표지의 전부다. 글쎄, 왜 구름일까. 그리고 제목은 왜 공학이 아니라 "공-학"일까? 책 내용을 떠올리면 얼추 짐작할 수 있다. 날씨나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서 과학자들은 이론에 의지한다. 마치 우유생산량이 떨어져서 걱정하는 목장주에게 과학자들이 제시한 해결책이 진공상태의 구형 젖소를 가정하는 것처럼. 하지만 공학자들은 과거 날씨 기록과 샘플을 이용해서 불확실한 미래에 수치를 매길 수 있고, 이렇게 경험칙을 통해 만든 자료로 고층 건물이나 다리를 만들 때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극단적인 기후환경을 견딜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매우 공학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이 여러 사람의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뜻에서 제목에서 공학의 공(工)을 함께 공(共)으로 바꾼 "삶은 공-학"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삶은 공-학" 즉, 삶과 발명은 여럿이 함께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 된다. 영문본의 직관적인 표지에 비해 생각을 많이 해서 만든 재미있고 뜻깊은 표지다. 


그러나 이런 수수께끼를 얼마나 알아볼까? 편집자 주를 넣어서 몇마디 해 줄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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