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 / 와이즈베리
엔트로피와 중력이 만든 우주, 시간
유능한 젊은 학자들을 초끈이론이라는 개미지옥으로 끌어들여서 망쳐놓는다고 한 때 학계(혹은 업계)에서 원성을 듣던 물리학계의 천재가 유발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서 썼다는 책이다. 그런 만큼 스케일이 정말 장대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 더 크고 길고 장엄한 시공간 혹은 우주의 시작과 끝이 책의 주제고, 도구는 과학과 철학이다.
우주와 시간을 만든 것은 엔트로피와 중력이라는 소위 하드 사이언스다. 그래서 차갑다. 이 거대한 스케일에 인간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자유의지는 어떤 경우에도 물리적 진행을 능가할 수 없고, 우리의 소망과 판단 도덕등은 물리적 세계의 일부로서 자연의 냉정한 법칙에 이미 반영되어 있다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입자와 장, 물리법칙 그리고 초기조건에 따른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라는데 이 책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게 대체 무슨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덧붙힘으로써, 우주론에 존재와 의미를 연결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아무리 인간은 하찮고,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냐는 물음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일 뿐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쓴 철학책인 셈이다. 멋지다. 그리고 인간을 우주론에 끼워 넣어준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표지는 그냥 준수해 보인다. 어느 행성에 인간이 혼자 우주를 바라보고 있다. 황량한 행성이지만 이 인간은 당당하게 서있다.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실존과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인간이 우주적 허무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언듯 그럴듯하다. 그러나 책의 주제인 엔트로피 즉 시간이 잘못되어 있다. 아마도 표지를 만든 사람들이 공백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시간의 끝에서 우주는 엔트로피 평형을 이룬다. 모든 별의 불이 꺼진 상태이고, 가속팽창이 빛보다 빠르기 때문에 우주에는 절대 진공의 캄캄한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우주적 시간이 흐른 후의 우주에서는 별이 없고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표지에는 빛을 내는 항성들이 너무 촘촘하게 많다. 뭐 그럴 수 있다. 표지를 너무 비워놓는 게 부담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표지 주인공 앞에 커다란 행성을 그려 넣은 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행성이 이렇게 보일 정도면 이건 현재에서 멀지 않은 과거나 미래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주제인 책 표지가 시간을 잘못 표기한거다. 물론 여기에 서있을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