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amuros, Manila, the Philippines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왔습니다. 이박삼일에서 오고 가는 시간을 빼면 하루가 조금 넘는 시간에 모든 것을 마쳐야 하는 바쁜 일정이지만 여행 가방에 공 몇 개와 장갑, 티 따위를 챙겨 왔습니다. 출장으로 여러 번 와봤던 마닐라지만 치안이 불안하고 혼자서 도시 밖으로 이동하는 것이 불편한 탓에 여태까지 여기서 한 번도 라운드를 못 해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내가 묵는 호텔에서 택시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예약 없이 가서 줄을 서는 순서대로 티오프 할 수 있는 18홀 골프코스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골프코스가 국가로서 필리핀의 기원을 상징하는 역사적 유물인 인트라뮤로스를 둘러싸고 있다는 말에 더욱 혹해서 출장 마지막 날 새벽 시간을 이리저리 쪼개 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층 건물과 녹지는 여느 도시와 다름없지만, 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보는 마닐라는 아주 다릅니다. 매일매일 청소하고 손보지 않으면 금세 남루해지는 이 도시에는 천 만개가 넘는 가난과 무기력이 빈틈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쭈그리고 앉아 있습니다. 다들 비슷하게 가난해서 힘든지 모르고 살았었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가난이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정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가난이기 때문에 그들의 가난을 똑바로 바라보기 부담스럽습니다.
잘못된 지도자는 첫 번째 임기에 정권을 망치고, 두 번째 임기에 나라를 망친다는 리콴유의 비판처럼 필리핀의 구조적 모순과 가난은 긴 식민지배의 유산보다는 마르코스 재임 시절 추진됐던 토지 개혁의 실패에서 더 큰 책임이 있습니다. 땅을 소유한 지주들은 소작농들을 동원한 선거를 이용해 합법적인 권력에 접근하고 이렇게 얻은 정치적 권력을 세습하면서 말끔한 정장과 세련된 영어를 쓰는 무리가 되어 인력송출이라는 이름으로 자국민을 외국에 팔아먹은 돈으로 호의호식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역사상 단 한 번도 통일된 국가로 존재해 본 적 없는 수많은 섬을 오직 식민지배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하나로 묶어 놓고선 3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착취한 스페인과 카쓰라-태프트 밀약의 대가로 필리핀에 지배력을 행사했던 미국이 이 도시에 가득한 가난에 큰 몫의 책임이 있지만 말입니다.
새벽 세 시. 이따 오후에 발표할 자료를 마무리하고 담배를 사기 위해 호텔을 나서는데 젊은 여자가 손을 흔들며 나를 따라옵니다. 편의점 방향으로 길을 건너자 그녀는 더 따라오지 않고 멈춰서 나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내 비슷한 또래의 다른 여자가 편의점 옆에서 나타나 나를 쳐다보며 웃음을 짓습니다. 이곳에서는 새벽 밤거리도 보통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권력과 질서에 따라 조직화하여 상품화되어있다는 깨달음은 그들이 팔고자 하는 그들이 가진 유일한 것도 사실 온전히 그들의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으로 이어집니다.
그녀들을 외면하고 들어선 편의점의 간이 테이블에는 이 나라가 만들어 내는 크지 않은 파이의 대부분을 잘라먹는 사람들이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좋은 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에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지켜주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는 남루함들이 야식을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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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뮤로스는 16세기 스페인의 식민지배 당시에 만들어진 성으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라는 의미에서 walled city라고 불리기도 했던 이곳 오리지날 마닐라에는 주로 관공서와 성당, 학교와 같이 식민통치와 규율을 위한 장치들이 작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성의 바깥은 엑스라뮤로스라고 불렸다고 하니 성안에 사는 사람들과 밖에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당신이 짐작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城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bourg에서 유래한 부르주아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들이 태평양전쟁 와중에 파괴되었지만, 아직 남아있는 성곽과 건물은 마닐라 관광의 필수 코스가 되었고, 그 성곽을 둘러서 18홀 파66 골프 코스가 있습니다. 누가 여기에 이런 골프 홀들을 만들었는지 궁금하지만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클럽 하우스에 있는 사람도 내 캐디도 그냥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일 뿐 이 골프장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고 몇 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택시가 골프장 입구를 우회전해 들어가자 드라이빙 레인지의 축 늘어진 그물망과 맨땅이 드러난 이곳저곳이 보입니다. 차라리 잠을 몇 시간 더 자는 게 나았을까 싶지만, 어차피 왔으니 하는 마음으로 등록을 하고 기념품이 있을까 찾아봅니다. 로고가 찍힌 볼처럼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물건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몇 년이나 진열장에 저대로 있었을까 싶은 낡은 골프용품들 밖에 없어서 아쉽습니다.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내게서 영수증을 자연스럽게 낚아챈 나이 든 남자 캐디가 구석에 있던 골프백을 들고 나오며 이게 렌탈클럽 중에선 제일 좋다며 자신은 자일스라고 악수를 청합니다. 가볍게 악수하며 그러자고 나서는데, 사무실 처마 아래에 모여 앉아있던 흰옷을 입은 여자아이들 중 하나가 나를 보면서 뭐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지만, 라운드 동안 우산을 받쳐 줄 엄브렐라걸 필요하지 않냐는 것 같습니다. 이른 아침이고 날도 흐려서 굳이 그럴 필요 없었지만, 이 젊은 여자가 밤거리에서 낯선 남자들에게 받을 수 있는 더 큰돈을 마다하고 새벽녘에 여기에 나왔을 생각을 하며 몇 백 페소를 더 쓰기로 합니다.
첫 홀을 시작하는데 갤러리가 많습니다. 작은 책상에 기대앉은 스타터와 캐디로 보이는 중년 남자 서넛, 퍼팅 그린 주변에서 일본인 골퍼들이 출발 준비를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있는 나이 든 여자 캐디들, 그리고 내 캐디 자일스와 엄브렐라걸 래인. 보는 눈이 많아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넉넉하게 넓은 페어웨이를 보며 이 정도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오늘 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편안한 시작입니다. 오른쪽 큰 나무가 시선을 약간 방해하지만, 출발만 제대로 하면 아무 방해가 되지 않는 짧은 홀입니다. 처음 쳐보는 렌탈 클럽이 부담돼서 한 클럽 크게 잡았더니 그린을 훌쩍 넘겨 버렸습니다. 좀 아쉽지만 무난한 시작입니다.
자일스는 참 말이 많습니다. 자신의 핸디캡이 12인데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풀스윙을 해본 지 일 년이 넘었다는 얘기, 한국 골퍼들은 이렇고, 일본 사람들은 저렇다는 얘기 따위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면서도 볼 것은 다 보는지 한두 홀 지나니까 따로 말하지 않아도 거리와 라이에 적당한 클럽을 들려줍니다.
5번 홀 파 4에서야 처음으로 자일스가 내게 드라이버를 줍니다. 왼쪽으로 치면 성벽에 가려서 그린이 안 보이니까 우측을 노리는 게 좋답니다. 제대로 쳤다 싶었는데 훅이 나면서 내 공은 왼쪽 성곽 바로 아래로 갔습니다. 자일스가 안 좋다고 하던 바로 거기입니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한번 더 해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쳤더니 이번에는 더 심한 훅이 나면서 뉘 집 지붕을 때립니다. 누가 맞았으면 어떡하나 싶은데 자일스와 래인은 아무 일 없는 듯 렛츠고를 외칩니다. 내 공이 날아간 성벽 주변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 한 무리가 이 아침부터 모여서 떠들고 놀고 있습니다. 저 녀석 중 하나가 내 공을 주워서 콜라와 바꿔 마시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코스의 유일한 파 5인 7번 홀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홀 페어웨이가 좌측에 붙어 있으니 아무리 훅이 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서 다시 한번 풀파워로 드라이버를 날려봅니다. 역시 좌측으로 한참 날아갑니다. 자일스는 그 후로 다시는 드라이버를 주지 않습니다.
홀과 홀이 연이어 붙어 있는 데다가 워킹 코스라서 거리를 가늠해서 샷을 하고 나면 바로 클럽을 옆구리에 끼고 공이 떨어진 곳으로 걸어갑니다. 걸어가면서 다음 샷을 머리에 그려 보고는 클럽을 바꿔 다시 샷을 하고 또 속보로 걷어 나가다 보니 래인은 나를 못 쫓아와서 쩔쩔맵니다. 어느새 따라붙은 자일스와 함께 가다 보면 뒤에서 우산! 우산!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전반이 끝났습니다. 후반을 시작하는 160야드 파3가 아마도 이 코스에서 시그니쳐 홀인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 홀인데 그린이 참 작습니다. 좌우로 조금만 빗나가면 여기에 공 하나를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만만찮네 생각하고 있는데 티박스 뒤편에서 잔디를 깎던 사람이 제초기를 끄더니 흥미로운 눈길로 나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13번 파 4를 지나는데 자일스가 옆에 있는 건물이 마닐라에서 제일 오래된 신문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저기 가면 슈퍼맨을 만날 수 있냐는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어느새 익숙해진 오래된 벽을 따라갑니다. 처음에는 특이했지만 업다운이 없는 평지에 만들어진 코스이고 비슷비슷한 경관이라 크게 기억에 남는 홀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마냥 쉽지만은 않아서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 일찍 출근하기 전에 들르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벌써 마지막 홀입니다. 탄도가 낮은 티샷을 잡아내겠다고 양쪽으로 나무들이 좌우로 팔을 벌리고 있는 150야드가 채 안되어 보이는 짧은 스테이트 파3 홀입니다. 나무에 가려 그린이 거의 안 보이지만 저 공갈에 속지만 않으면 미들 아이언으로도 충분해 보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친 티샷이 그린을 때리고 덤불까지 굴러갔습니다. 얼른 쫓아가서 이건 무벌타 드롭이라며 공을 꺼내 놓는 래인에게 몇 마디 배운 따갈로어로 고맙다고 말하며 오늘 라운드를 마칩니다.
떠나기 전에 18번 홀 그린 뒤에서 서서 지나온 길을 돌아봅니다.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과 어느 이른 아침에 운동화에 셔츠 하나 적당히 걸치고 와서 오늘 자일스하고 래인 출근했냐고 물어보고 있을 내 모습이 겹쳐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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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척의 배와 270명의 젊은 선원들을 데리고 스페인에서 출발한 마젤란 선단의 세계 일주는 단 한 척의 배와 21명의 귀환으로 끝났습니다. 그들에게 대서양 최초 횡단이나 잔잔한 바다의 발견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싣고 온 향신료의 가치가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로 인해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의 새로운 비지니스 모델이 확대 재생산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젤란이 처음 필리핀에 도착했을 때 그 배에는 현지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젤란보다 먼저 세계 일주를 마친 셈입니다. 힐러리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을 셀파들의 노고처럼 그들의 여행은 자의에 따른 목적성이 없다는 이유로 영광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 번쯤은 어두운 갤리선 밑바닥에 손발을 결박당한 채 노를 젓던 벤허의 옆자리를 채우던 사람들과 무역풍을 타고 동방으로 향하던 수많은 배에서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세계 일주를 해야 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역사의 양팔 저울 한쪽에는 발견과 개척, 개종, 정복이 올려져 있고 반대쪽에는 침략과 착취, 억압이 있습니다. 저울의 눈금은 마땅히 한쪽으로 기울어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중간하고 희미합니다.
서둘러 택시를 불러 떠나는 내게 자일스와 래인이 손을 흔들며 꼭 다시 오라고 합니다. 지난밤 나를 향하던 미소는 돈으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훅이 나면 안 되는 곳에서는 드라이버를 주지 않는 자일스와 샷이 끝나면 바로 앞으로 걸어 나가는 나를 쫓아오기 위해 종종걸음을 쳐야 했던 래인의 미소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