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 hills / Shenzhen, China
20년 만에 심천에 다시 왔습니다. 모든 것이 어수선했던 이곳에는 인천공항보다 더 크고 현대적인 공항이 들어섰고, 잠시 다른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일본인지 한국인지 깜빡 착각할 만큼 묵직하고 탄탄하게 성장했습니다.
당신에게 중국은 아직도 당신이 스무 살에 처음 갔던 중공이듯 내게 중국은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믿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랬기에 나는 공공연히 우리가 책에서 배웠던 전통과 예절 같은 중국적인 것들은 문화혁명 와중에 모조리 뭉개져 버려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곤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문혁 이후 세대들의 머리에는 오직 돈밖에 없다는 독설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조공과 사대의 역사에 대한 반감 때문이기도 했고, 우리에게 못되게 굴다가 다른 동네 아이에게 흠씬 얻어맞고선 조용해진 못된 아이 이미지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을 국가 혹은 집단의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한 중국은 인해전술을 구사할 수 있거나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는 거대한 이미지일 뿐이었고, 그 속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궁리를 하고 자식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끌려가던 소가 울부짖는 모습을 보고 소 대신 양을 쓰도록 했던 제나라 선왕의 행동을 사람들은 인색하다고 했지만, 맹자는 그 이유가 바로 선왕이 소를 봤기 때문에 그 고통과 슬픔에 공감했지만, 양은 보지 못했기 때문임을 간파했습니다. 본다는 것, 그리고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머릿속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아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자나 호랑이의 사냥에는 유희가 없지만, 인간의 갈등과 전쟁은 다릅니다. 모니터에 비친 대상은 나와 동류의 실재가 아니라 추상화된 관념이기 때문에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버튼을 누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공격의 대상이 나와 같은 인간임을 생각한다면 차마 하지 못 할 일들이 사랑과 평화 혹은 구원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민족과 문화, 종교를 무시하고 그려진 국경선은 지나간 역사를 공정하게 대변하기보다는 지금 체제의 기득을 지키는 울타리에 불과하기 때문이고 눈과 귀를 닫으면 공감도, 더 이상의 관계도 없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우리는 문화적으로 한 덩어리라고 말하면 당신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중국은 항상 주변에 있었고 아시아인은 모두 중국인이라고 말할 만큼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편전쟁과 청의 몰락, 민국과 대만, 일본의 침략과 한국전쟁, 대약진과 문화혁명, 그리고 개혁개방과 천안문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근현대사로 인해 어제의 햇볕이 오늘의 빨래를 말릴 수 없다고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吶喊속에서 죽어가는지도 모르고 자고 있다고 루쉰이 그토록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깨어나 정신승리가 아닌 생활 속에서 성취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보다 많은 피와 눈물을 담고 있는 그들의 역사가 잊었던 과거의 영광을 찾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찬란했던 과거가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 세대가 중국을 얕볼 수 있었던 유일한 세대가 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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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골프 리조트로 알려진 심천 미션힐즈입니다.
처음부터 다른 코스들과 비교되는 뚜렷한 차별성을 가지도록 잭 니콜라우스를 비롯한 13명의 세계 정상급 선수와 설계자들을 불러 모아 개혁개방의 상징인 심천에 총 216홀 12개의 코스를 만들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엄청난 자본 투자를 통해 남들이 수십 년간 노력해서 만들어온 명성과 전통을 한순간에 따라잡으려 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세상에서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게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명품 코스가 오래된 양복과 나무로 만든 골프채를 들고 있는 서양인들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는 항변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골프 리조트인 만큼 이 방대한 스케일을 어떻게 당신께 이야기할까 내내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마주쳤던 수많은 좋고 멋있는 것들을 모두 버리기로 하고, 각 코스와 인상 깊었던 홀들에 대해 적어두었던 꽤 긴 글을 지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에게 분주한 디너 뷔페보다는 미역국에 밥 말아먹는 저녁을 대접했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곳이 보내고자 하는 많은 메시지 중에서 내가 이해한 두 가지를 당신께 말하고 싶습니다. 이 둘이 당신이 머릿속에서 코끼리를 想像해 낼 수 있는 조각들이기를 바랍니다.
이곳에 돈과 명예를 투자한 그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만들고 보여주고 싶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첫 실마리는 잭 니콜라우스가 디자인한 월드컵 코스에 있는 것 같습니다. 월드컵 코스는 애초부터 토너먼트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고, 중국 최초의 국제대회를 개최한 이곳은 미션힐즈 심천의 상징적인 코스이지만 의외로 스펙타클하지도 않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홀을 별로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느 홀에서나 티박스에서 그린 혹은 그린엣지를 볼 수 있도록 토너먼트 규격의 원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모든 수준의 골퍼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널찍하고 길쭉합니다. 사실 밋밋하고 그냥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그가 추구하고 보여주려 한 것은 화려한 기교나 현재의 감탄이 아니라, 묵직하고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을 원칙에의 충실 즉 클래식임을 깨닫게 됩니다.
잭 니콜라우스 코스는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을 원칙과 클래식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과거, 전통 그리고 클래식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미션힐즈 심천에서 가장 인기가 없을 것 같은 코스에서 잭 니콜라우스의 대척점을 발견합니다.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는 직사각형 그린, 네 개의 화산을 호위병으로 세워둔 그린, 그린 한가운데 버티고 있는 커다란 벙커와 같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이 모여있습니다. 어느 한 홀도 소홀하지 않고 하나하나 다르게 꼼꼼한 구성도 재미있지만, 18홀 모두를 파 3로 채운 배짱도 대단합니다. 파3 코스는 연습코스라는 인식 혹은 걸어 다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다른 곳보다 한적하지만 Zhang Lian Wei코스에서는 클래식과는 다른 미래 혹은 변주가 있습니다.
사실, 오래된 미래나 미래의 진화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모순입니다. 미래는 오래될 수 없고, 진화는 과거의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곳에 서면 전형적인 클래식 코스를 내보이면서 미래를 만들려고 했을 잭 니콜라우스와 장리엔웨이가 보여준 미래 골프의 에너지원으로서 중국의 진화에 대한 믿음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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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코스 첫 홀에서 드라이버 대신 아이언 티샷을 하고 걸어간 적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이기도 했고 코스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걷다 보니 나보다 먼저 아침 이슬을 밟고 간 발자국이 보입니다. 캐디인 것 같습니다. 발을 질질 끌고 간 모습에서 즐거움이나 경쾌함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1인당 GDP가 7,000불을 넘는 개발도상국이 된 이 나라에서 매 라운드가 끝나면 그들이 받는 캐디 팁 100위안의 크기가 예전만큼 크지는 않으리라 짐작됩니다. 또래들과의 수다가 좋고 외모 가꾸기가 좋을 나이에 촌스러운 빨간 츄리닝과 커다란 안전모를 쓰고 땡볕에 온종일 남의 시중을 들어야 하는 이 일이 얼마나 힘들까 싶습니다.
아침나절에 벌써 땀에 전 캐디가 건네주는 클럽을 받으며 나의 레저와 그의 노동이 엇갈려 지나갑니다. 가볍게 목례하며 속으로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에게도 빛나는 한 때가 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