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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Oct 02. 2023

대체 이걸 보고 왜 울어?

※※드라마 <무빙>의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을 들키는 건 부끄러운 일이 돼간다. 이번 추석 동안 드라마 <무빙>을 몰아보면서 7번 정도 울었다. 20화 중 현재 17화까지 봤으므로 2화에 한 번 꼴로 눈물을 질질 짠 것이다. 재만 역의 김성균 배우 서사가 메인인 14화를 보고서는 차오르는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어 애인에게 "ㅠㅠ눈물 줄줄 난다"라고 카톡을 보냈다. 며칠 전 똑같이 14화를 본 그라면 이 생생한 슬픔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연휴에도 일을 하고 있던 애인이 몇 분 후 답장을 보낸다. "어떤 부분이..?"


이걸 보고 안 슬프단 말이야? 지금 재만이가 아기 강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돌아왔잖아ㅠㅠ 돌아오면 잡혀갈 걸 알았을 텐데. 크면 기억도 못할 아이와의 약속 져버리는 것쯤 아무렇지 않은 어른이 있지만 재만은 다르다고! 이 캐릭터.. 눈물이 안 난단 말이야?ㅠㅠ 게다가 아기 강훈이가 바보 아빠를 지키겠다고 저러고 있잖아ㅠㅠ 저 깜찍한 바가지머리 4살짜리가.. 저 부자관계를 보고도 눈물이 안 난단 말이야?!!!!


라고는 차마 보내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압축하지 고민하다가 "강훈아빠가 아기 강훈이와 약속을 지키러 온 장면이 슬펐다"고만 썼다. 잘 된 요약 같기는 한데.. 근데 이게 내가 느낀 전부는 아닌데.. 그래도 이 이상 말이 길어지는 건 좀 주접스러워 보이기도 하니까.. 아니 근데 진짜로 안 슬프다고?..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와중에 그대로 카톡을 전송했다. 그리고 다시는 애인에게 <무빙>의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는데..


이런 일은 내게 좀 익숙한 일이다. <무빙> 이전에는 <더 글로리>를 보며 휴지를 옆에 쌓아두고 울었다. 그때 나의 눈물 버튼은 현남 역의 염혜란 배우였다. 현남과 선아의 서사가 나올 때마다 나란히 집중하고 있는 옆 사람을 의식할 틈도 없이 눈물 콧물이 터져 나왔다. 훌쩍거리는 소리를 듣다 못한 친구는 "도대체 이걸 보고 왜 울어?" 물었고 (티발 너 씨야..?)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까지 터뜨렸다. "풉!"하고 터져 나오는 걔의 웃음에는 조롱도 비아냥도 없었다. 이해하려 해 봐도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어쩔 수 없이 터져 나온다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을 뿐. 그 순간 나는 내 눈물이 엄청나게 부끄러워졌다. 그럴 만도 한 게 신파를 대표하는 영화 <7번 방의 선물>이나 도대체가 울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드라마 <도깨비>를 보고도 운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내 눈물은 나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쉬웠다. 난 감정을 쉽게 드러내는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으므로 의지와 달리 무너진 둑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은 늘 부끄러웠다.


이런 모습을 들키는 게 애인이나 친구 같은 사람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또한 도대체 왜 슬픈지 물어줄 만큼 다정한 사람들이라는 게. 예전에는 내 곁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 게 서운했다. 내가 곁의 사람들과 같은 걸 느끼지 못하는 것 또한. "이게 왜 슬프나면.."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짠 것처럼 울거나 웃는, 그런 종류의 유대감을 한때는 분명 꿈꿨었다. 그건 불가능하다는 걸, 오직 서로에게 가닿으려는 노력만이 진실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게다가 눈물 많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은 좀 걱정스럽기도.. 그럴만하지 않은 일에 슬퍼하고 분노하고 무력해할 때, 별 거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니까. 열 마디 말이 열 번의 오해로만 끝날 때, 한 번의 포옹으로 마음을 확인시켜 주는 사람 또한 없다는 뜻이니까. 왜곡될 틈 없이 단순한 말과 행동으로 전해지는 다정한 마음 앞에서 "어떤 부분이..?"라는 물음 같은 건 대수롭지 않을 수 있다. (근데 진짜 안 슬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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