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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25. 2023

우린 어디든 갈 수 있어

한낮의 태양이 여름처럼 뜨거워도 우주의 시간까지 속일 순 없는 법이다. 나들이 다녀온 원주를 뒤로하고 서울을 향해 달리던 저녁 6시 반. 밤이 멀었는데도 창밖의 하늘이 온통 쪽빛이라 많이 먹고 웃고 사랑하며 보낸 하루가 이미 끝난 것처럼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차 안에는 이탈리아 거리 악사들이 즉흥으로 합을 맞춰 연주하는 Autumn Leaves가 나오고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조명이 길게 늘어진 한강을 보고 있으니 서울이 낯설고 새롭게 느껴졌다. 주중을 서울의 바깥에서 지냈고, 또 내일이면 다시 서울을 벗어나 내려가야 하기 때문일 거였다. 고작 하나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에도 참 많은 일이 있었기에 서울살이도 그만큼 아득한 것이 됐다.


세종으로 내려가며 제일 아쉬웠던 건 더는 한강과 가깝게 살 수 없단 사실이었다. 이제는 잠들기 아쉬운 밤에도 한강으로 뛰쳐나갈 수 없다. 3점 슛을 연습하는 정대만 선배처럼(?) 텅 빈 운동장에서 농구공을 튀겨볼 수도 없고 강바람을 맞으면서 맥주를 마실 수도 없다. 물론 세종에도 강은 흐른다. 한강과 함께 4대 강으로 묶이는 금강이다. 처음 금강을 봤을 땐 생각보다 폭이 크고 조명이 화려하게 반짝여 이만하면 아쉽지 않다고 여겼다. 얼마 못 갈 착각이었다. 아무래도 생동감이 부족하다. 여긴 맥주 마시는 사람도 없다. 역시 한강을 두고 떠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산, 서울숲, 서촌 일대 등 서울의 많은 장소를 좋아해도 모두 한강만 못하다. 예전에 어떤 선배는 남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본 후에야 서울이 살만한 동네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갓 상경한 대전 촌놈 그 선배에게 남산이 그런 장소였다면, 스무 살 내겐 한강이 그런 곳이었다. 하나는 산이고 하나는 물이지만 남산과 한강에도 공통점은 있다. 서울에 대한 지분을 주장하기 어려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촌스러운 화장과 옷으로 고향의 흔적을 가리고 싶어 했던 스무 살 때는 어딜 가나 초대받지 않은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서울 사람들은 왠지 다 멋있어 보였다. 그것도 좀 위화감을 주는 방식으로. 특히 강남을 걸을 때는 우리가 몇 걸음 걷는 동안 밟은 땅이 수십억짜리라고 농담하면서도 금방 씁쓸해졌다. 한강에서는 그런 기분을 안 느껴도 됐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도시의 흉한 얼굴은 가려지고 반짝거림만 남아 더 좋았다. 장난감처럼 작게 빛나는 강 건너 고층 빌딩이나 차들의 행렬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낮동안 날 누른 이 도시의 위압감 따위 별 거 아닌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아니구나. 여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한강 중에서도 남쪽으로는 동작, 북쪽으로는 용산이 있는 구간이 가장 멋지다. 한강대교 때문이다. 금빛 무지개 모양으로 빛나는 한강대교를 처음 봤을 때 단박에 서울에서 가장 멋진 다리란 걸 알아차렸다. 그날부로 마음속에서 그 다리는 내 다리가 됐다. 그런다고 진짜 내 것이 될 리는 없지만 그렇게라도 마음 둘 곳을 찾는 건 중요한 일이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한강이 흐르고 한강대교가 서 있어 버틸 수 있었던 무수한 밤들을 여전히 기억한다.


원주로 떠나기 전날에는 언니를 만났다. 한강을 가려던 원래 계획은 바꿨다. 우리는 삼각지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런 다음 한남동으로 이동해 찻집에 갔다 와인집에 갔다 삼겹살집까지 간 다음에야 헤어졌다. 길어지는 수다가 자꾸만 새로운 장소로 이끄는 여행 같은 하루였다. 어디든 갈 수 있다. 집으로 오면서는 이런 문장에 대해서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어딜 가나 오타처럼 놓여있었지만, 그래서 틈만 나면 우리를 받아주는 곳을 찾아 너른 한강의 품으로 달려가야 했지만, 이젠 아니다. 어디서든 풀어진 표정으로 크게 웃을 수 있고 멋쟁이의 동네 한남동에서도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다(?). 각자 나이 든 만큼 얼굴이 두꺼워진 탓도 있겠다. 하지만 또 하나, 우리가 함께이기 때문일 것이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던 이 도시에서 뜻하지 않은 인연들을 만났고 그 덕에 조금쯤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한강이 흐르고 한강대교가 서 있으며 또한 언니 같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그리하여 함께인 한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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