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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Nov 27. 2023

사주가 전지현이네요

"한 마디로 전지현 사주예요."


며칠 전 일로 알게 된 분이 식사 자리에서 재미 삼아 사주를 봐주셨다. 사주라면 2년 전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본 게 처음이자 마지막. 그는 신을 모시는 동시에 명리학을 공부한 점쟁이로 신점과 사주를 섞어 나의 미래를 점쳐줬는데 그다지 신통하지 않았다. 아까운 7만 원만 날린 기억 때문에 큰 기대를 안 했다. 그분의 입에서 '전지현'이라는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얼굴도 키도 몸매도 아니고 사주... 전지현의 다른 무엇도 아닌 하필 사주를 닮다니. 약간 아쉬운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사주라도 닮은 게 어딘가. 승승장구하는 필모그래피로 보나 20년 넘게 시들지 않는 인기로 보나 그녀의 사주를 닮았다는 게 나쁜 뜻일 리는 없어 보였다. 직업적으로 성공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 역시 잘 나가는 작가가 돼서 유명세를 타게 되는 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지현 사주'의 정체가 밝혀지길 기다리는데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남편복이 너무 좋아요."


전지현의 성공도 재력도 유명세도 아니고 남편... 그녀가 가진 것 중 유일하게 탐나지 않는 하나가 있다면 바로 남편복일 것이다. 우선 그 남편복의 실체가 뭔지 불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남편이 누군지 잘 모르는 데다가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어떤지 알 길이 없으니 말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어릴 때부터 결혼을 안 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모자라 동네방네 비혼주의라며 선언하고 다닌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남편복이 좋은 비혼주의자라니! 그건 도화살이 낀 스님과도 같은 거 아닐까. 바란 적 없는 운을 타고난 건 차라리 불행이 아닐까. 심란한 속도 모르고 와인잔이 놓인 그날의 테이블에서는 이런 대화가 계속 오갔다.


"결혼보다도.. 무슨 일을 해야 제게 잘 맞을까요?"

"결혼이요. 취집 하시면 돼요."

"제가 조직을 나와 프리랜서를 해도 잘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요?"

"그보다는 결혼을 하셔야..."


그분은 이런 남편복을 타고난 내가 도대체 누구와 결혼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이면서 흥분으로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내가 비혼주의임을 고백하자 실망과 안타까움으로 탄식하기에 이르렀다.


"제가 결혼을 안 하면 제 팔자를 망치는 게 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이 좋은 운을..."

"아..."


침묵. 계속되는 침묵. 와인 홀짝이는 소리만 남은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심란해지려는데, 마침 그분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요는 사주에 대한 해석이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주 일주 월주 년주(4주)의 8개의 글자(8자)를 풀이하는 게 명리학인데, 흔히 '남편복'이라고 해석될 수 있는 글자가 요즘에는 다른 의미일 수 있다고 했다. 예로부터 남편이란 여자에게 뭔가를 가져다주는 사람을 뜻했는데, 요즘 시대에 남편은 아내의 노동력이든 뭐든 가져가면 갔지 주는 사람은 아니지 않냐면서. 그러니 지금 시대에 맞게 남편운을 다른 운으로 바꿔서 쓰면 된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나를 위로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꽤 근사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내가 가는 길에서 가능한 행복의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체 모를 그 '전지현 사주'라는 게 정말로 내 주머니 속에 든 네잎클로버처럼 느껴졌다. 이건 언제 어느 때든 내가 쓸 수 있는 운,  지치고 힘들고 불안할 때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괜히 만지작거려 보면 되는 것이다. 그 길의 끝에 선 내가 전지현의 성공과 재력과 유명세를 닮았을 리는 없지만... 그녀와 내가 누리는 행복의 무게는 다르지 않겠지. 그것이 내 사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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