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Jan 29. 2024

우정 시그널 하우스

여자 일곱이 살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게 내 꿈이다. 건물을 올려 2층은 내 집 3층은 니 집으로 사는 것이다. 왜 2층부터 시작하느냐, 1층은 같이 영화 보고 보드게임하고 음식을 나눠 먹는 공용 공간이기 때문이다. 지하도 있다. 거기엔 합주실을 둬야 한다. 우리 합주실이 생기면 실력은 일취월장할 거고 자작곡도 만드는 진정한 밴드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내 나이 서른셋. 여태 이 꿈을 진지하게 꾼다. "언젠가 친구들이랑 집을 짓고 같이 살 거예요!" 미래 계획을 묻는 선배들의 질문에도 숨기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돌아오는 건 혀를 차는 대답이다. "야. 나도 내 친구랑 별장 짓는 게 꿈이었어." "우리 와이프가 10년 동안 하는 소리..." 친구들과 같이 사는 게 이토록 흔히 꿈꾸는 낭만이었다니. 그런데도 누구 하나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니.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매번 막막했다. 조급했다. 이 꿈을 이루려면 부지런히 돈을 모아야 해. 빨리 엄청난 작품을 써야 해..!


부지런히 돈도 못 모았고 엄청난 작품도 못 썼지만 그래도 소원을 이뤘다. 집 한 채를 빌려 8박 9일을 친구들과 함께 산 것이다. 9일 동안 우리는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퇴근해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일상을 나눴다. 반에 반쪽짜리지만 이만하면 꿈을 이뤘다고 주장해 볼 만할 것이다.


이 9일짜리 동거 프로젝트엔 이름도 있다. 연애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에서 이름을 딴 '우정 시그널 하우스(우.시.하.)'. 코로나로 한 취소됐다 3년 만에 다시 추진되는 거라 에어비앤비를 예약한 후 디데이를 기다리는 동안은 매일매일이 설렘과 흥분 속이었다. 카톡방에선 시도 때도 없이 우시하에서 함께 즐길 기발한 놀이들이 공유됐다. 모루인형 만들기, 그림 그리기, 붕어빵 만들기, 랜덤선물 교환하기... 세상엔 참 창의적인 놀거리가 많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놀기에 이렇게 본격적이고 진지해본 지가 참 오래됐다는 것도.


너무 많은 놀이를 준비한 나머지 우시하에서 지내는 매분 매초마다 흐르는 시간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요리도 해 먹고 붕어빵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림도 그리고 보드게임도 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매일매일 돈 벌러 가야 하는 우리의 밤은 턱없이 짧았다. 그걸 굽이굽이 펴 늘려보겠다고 잠을 줄였다. 매일을 새벽 3~4시까지 술 마시고 게임하고 수다 떨면서 놀았다. 눈밑에 다크서클이 진해지도록. 우정의 파시스트답게 누가 깜빡 졸기라도 하면 흔들어 깨워가면서.


매일이 축제 같았던 9일이 끝나고 다시 꿈에 대해 생각한다. 부지런히 돈을 모으더라도 낭만이 가득한 우정의 집은 짓지 못할 수도 있다. 좋작품을 쓰더라도 바라는 만큼의 부는 얻지 못할 수도. 하지만 뭐,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연례행사처럼 우시하 시즌 2, 3, 4가 계속된다면 말이다. 그때도 우리가 함께하기 위해 멀고 불편한 숙소에 굳이 굳이 모인다면, 밥벌이에 지친 눈을 비비고 기어이 둥글게 모여 앉는다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선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