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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r 04. 2024

언니의 명품백

지난주에는 조카 대추의 어린이집 졸업식이 열려 언니를 쫓아 나와 동생까지 주렁주렁 꽃다발을 들고 갔다. 난 마침 금요일 휴무였고, 동생은 대추의 졸업식에 가기 위해 가게 문을 닫기로 했다. 전날 밤부터 세 자매 카톡방에는 아이의 졸업식에 뭘 입고 가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토의가 이뤄졌다. 그렇게 서로가 가진 가장 예쁜 외투를 입거나 서로에게 그런 옷을 빌려주고선 어린이집 앞에 모였다.


문제는 가방이었다. 식이 시작되길 기다리며 강당에 서 있는데 옆 사람이 든 가방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루이비통이었다. 애인이 어머니께 가방을 사드린다길래 인터넷으로 함께 그 브랜드의 백을 둘러본 적이 있었다. 무슨 가방 하나가 이렇게 비싸냐. 애인이나 나나 그렇게 비싼 가방을 딱히 원해본 적도 없어,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지 확인하고는 웃었다. 그런데 강당을 둘러보니 그 비싸다는 가방을 옆 엄마도, 옆옆 엄마도, 옆옆옆 엄마도 들고 있는 거였다. 루이비통뿐만 아니라 샤넬 구찌 생로랑... 종류불문의 다양한 명품백들이 거기 있는 모든 엄마들의 손에 들려져 있었다. 단 한 사람, 우리 언니만 빼고.


언니는 명품에 관심이 없었다. 빠듯한 형편은 아니지만 굳이 명품백을 드는 건 사치라고 언니는 말하곤 했다. 없는 명품에 자격지심을 느끼지도 않았고, 오히려 살림을 알뜰하게 꾸려간다는 자부심이 있다면 있었다. 그러니까 혹시 자기만 명품백을 안 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더라도 괜히 기죽을 언니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모든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괜히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 언니는 전날 우리에게 여러 번 물어본 끝에 고른 단정한 재킷과 바지를 입고 있었다. 안 그래도 미인인 언니가 오랜만에 옅은 화장을 하고 화사한 꽃까지 들고 나타나자 대추는 오늘 엄마가 너무 예쁘다면서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 옆에서 나는 자꾸만 옆 엄마들의 가방을 힐끔거리게 됐다.


졸업식이 끝난 뒤 어째서 그 많은 엄마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명품백을 들고 있었는지에 대해 친구들과 토의했다. 친구들 말은, 입학식마다 엄마들이 우리 애 기죽지 말라며 유독 명품을 챙겨간다는 거였다. 친구 남편의 회사 선배는 아이 학교 입학식에 가기 위해 명품 옷까지 샀다고 했다. 분명 해로운 과시 문화이고 동조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언니를 위해서 비싼 가방을 하나 사줘야겠다는, 사줘야만 한다는 의무감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대추의 학교 행사 때 맬 수 있도록 말이다. 그건 어쩌면 대추를 위한 일인지도 몰랐다. 계급과 계층의 위계가 끊임없이 답습되고 점점 더 노골화되는 세상에 사는 아이를 위해서.


한국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유럽에서 태어난 애들보다 부자라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 1등인데 아동 빈곤율은 최저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통계가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유복해지고 있음을 말하는 건 물론 아니다. 있는 집일수록 애를 낳고 그렇지 않은 집일수록 애를 안 낳아서 그럴 뿐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 드는 최소한의 비용보다도, 엄마의 명품백처럼 언제부턴가 기본값이 돼버린 부가적인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일 것이다. 출산은 개개인의 선택이라지만 이렇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는 숫자라면 우리는 이걸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언니를 위해서, 조카를 위해서라며 명품백을 고민하는 나부터가 이런 숫자에 책임이 있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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