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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r 11. 2024

아이용 기저귀 가방, 아이 기저귀용 가방

아이용 기저귀 가방, 아이 기저귀용 가방… 목요일 밤에는 샤워하면서 이 두 개의 말 조합을 계속 반복해 중얼거렸다. 마감해 제출한 글을 다시 천천히 읽어보다가 원고 한 구석 ‘아이용 기저귀 가방’에 꽂힌 게 시작이었다. 아 좀 이상한데… 냈으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넘기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비누를 씻어내면서도 생각이 그냥 흘러가지를 않았다. 


아이용 기저귀 가바앙…? 암만 생각해도 애가 드는 기저귀 가방 같아… 애가 기저귀를 어떻게 들고 다녀… 아이 기저귀용 가방이라고 쓸걸… 아니 그냥 기저귀 가방이라고 해도 됐는데… 처음에 그렇게 쓴 대로 둘걸… 누가 성인용 기저귀라고 생각한다고 굳이 아이용이라고 덧붙여선… 개운하게 샤워를 마친 뒤에도 쿨타임이 찾아오기는커녕 편집증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휴대폰을 들고 친구들에게 카톡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이용 기저귀 가방이라는 말 너무 이상하지 않냐..”

“별생각업는디”


“뭔 글을 봤어. 거기 아이용 기저귀 가방이라고 쓰여 있어. 어때? 뭔 글을 이따구로 쓰나 싶냐?"

“머가?”


그런 게 뭐가 대수롭냐는 반응들. 하지만 안심되긴커녕 찝찝한 기분만 남았다. 사실 그 글을 볼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거였다. '아이용 기저귀 가방'과 '아이 기저귀용 가방'의 차이를 알아차릴 만큼 유심히 보는 사람은 더더욱. 그걸 알면서도 2800자 중 고작 8자가 못 견디게 후회되는 건 내가 그만큼 이 일을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정한 기준에 맞게 일을 완성하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만 나를 모니터 앞에 데려다 놓기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만듦새까지 집착하는 지경에 이르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깨어나 일에 대해 생각한다. "아이 기저귀용 가방!" 이렇게 써야 했으나 차마 그러질 못한 문장을 부르짖으면서 새벽녘 뜬금없이 눈을 뜨는 것이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이지만 적어도 그날 새벽 난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을 뒤척였다. 이런 아무래도 좋은 거 말고 좀 더 근본적인 고민과 그럴싸한 번뇌를 하고 싶지만 뭐든지 디테일이 중요한 법이니까. 이런 식으로 일을 사랑하다 보면 이 마음이 날 또 다른 차원으로 이끌어줄 거라고 믿어보는 것이다.


일에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이런 날들이 며칠 흐르다 보면 섣부른 욕심과 흥분이 가라앉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때가 온다. 그럴 땐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답이다. 최대한 뻗대고 일을 뭉개는 것이다. 그런 날들이 또한 흐르다 보면 어느 날엔가는 '아이용 기저귀 가방'이라고 쓴 게 치욕스러워서 잠도 잘만큼 일에 몰입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그게 나의 리듬이라는 걸 이제 알겠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이 이 리듬을 믿으면서 잠깐 쉬어가면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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