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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r 17. 2024

P의 계획법

난 10년 차 아침형 인간 호소인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며 밤새 굳은 몸을 푸는 삶. 신문을 대충 넘기는 법 없이 꼼꼼히 읽은 뒤 여유롭게 출근하는 삶. 내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삶이나 이건 내가 단 하루도 손에 넣어본 적는 삶이기도 하다.


세종으로 이사와 경이로운 직주근접을 경험하고 있는 요즘에는 8시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다. 그런데도 피곤이 안 풀려 늘 비몽사몽 출근해 비몽사몽 일하곤 한다. 매일 새벽 늦게 자는 데다 운동을 안 한 지도 오래, 이유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달라져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 그냥 그렇게 산 8개월... 8시에도 못 일어나 지각을 일삼는 지경까지 되자 이제는 정말 6시에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만다. 내일은 진짜 달라질 거야!


늘 그렇듯 아침이면 모든 원대한 계획은 늘 '10분만'에 밀려나곤 한다. 첫날에는 6시에 눈을 떴다가 조금만 더 누워있어야지 생각하며 침대에서 30분을 더 보냈다. 그래도 6시 반에 일어나다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자축하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30분의 시간을 잃어버린 만큼 스트레칭 영상을 1.25배속으로 틀고 따라 했지만, 그래서 근육이 충분히 풀리기 전 동작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그래도 뭐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 다음날에는 1시간 늦은 7시 반에 눈을 떴다. 그래도 8시에 일어나던 것보다는 30분 일찍 일어났으니까... 작심삼일을 하루 앞둔 셋째 날에는 드디어 원래의 루틴으로 돌아와 8시 반에 일어났다. 일이 바빴으니까.. 어제 하루가 힘들었으니까...


작심삼일도 못 지킨 내 모습이 실망스러웠을까? 아니다. 10년째 못 지킨 허황된 계획을 '계획'이라고 믿는 대문자 P는 이걸 못 지키더라도 '내가 그럼 그렇지...'하고 만다. 스스로에게 실망한다거나 크게 스트레스받는다거나 하는 타격이 부끄럽지만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이런 타격 없음이 내게 일종의 원동력이라고 믿고 있다. 어떤 다짐을 하고, 그걸 사흘도 못 지킨 채 무너뜨리고, 다시 훌훌 털고 일어나 또 새로운 다짐을 하고. 비록 그 다짐이라는 게 믿을 수 없이 허황된 것일지언정 그렇게 한발 한발 나아가다 보면 조금 더 나아진 내 모습이 있겠지. 이것이 P로 태어난 자의 계획법이라고, 그렇게 믿을 뿐이다. 내일은 진짜 6시에 일어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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