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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Mar 25. 2024

전지현 사주로 어그로를 끈 건에 관하여

일요일 밤이면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 내 브런치 통계를 한번 훑어보곤 한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앞서 꾸물거리며 딴짓하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쓴 글이 얼마나 읽혔는지 늘 궁금하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며 올린 글인 만큼 많이 읽힐수록 기쁘겠으나..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일주일의 절반은 조회수가 0, 이 계정에 올라온 수십 개의 글 중 아무것도 읽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뭐.쓰.모(뭐라도 쓰는 모임)를 시작할 땐 곧 브런치 스타가 돼서 책을 내게 되는 건가 두근두근했는데. 치열한 관심 경제 사회에서 타인의 시간을 얻기란 만만한 일이 아니란 걸 하루하루 깨닫고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통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조회수 그래프가 전반적으로 위로 올라온 것이다. 조회수가 '0'이 찍히는 날은 아예 사라졌다. 하루에 적어도 한 명씩은 이 계정에 접속해 내가 쓴 글을 본다. 이런 변화는 4개월 전, 정확히는 11월 27일부터 시작됐다. '사주가 전지현이네요' 글을 올린 날이다.


사람들이 전지현 사주에 이렇게나 관심이 있을 줄이야... 저 글을 올린 후 전지현 사주를 궁금해하다가 사주와 전혀 상관없는 이 브런치에 들어오게 된 사람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겨났다. 실제 브런치 통계를 보면 검색을 하다가 브런치에 유입된 사람들은 모두 '전지현 사주'를 쳐서 들어왔다. 통계에 잡히는 조회수 3분의 2 이상은 '사주가 전지현이네요' 몫이고, 최근에는 조회수 2000을 넘어 내 브런치 글 랭킹 1위가 됐다.


이걸 좋아해야 돼 말아야 돼. 짐작하건대 전지현 사주를 찾다가 여기까지 온 사람들은 한 문단 만에 뒤로 가기 버튼을 눌렀을 것이다. 난 전지현의 사주를 모르고, 내 글에도 전지현의 시주나 일주 같은 건 한 자도 안 적혀있으니까. 하지만 조회수의 질과 별개로 2000이라는 숫자 자체가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 많지 않은 숫자조차 '전지현' 세 글자에 숟가락을 얹어 얻어낸 셈이다.


이야기를 쓸 때도 이런 딜레마에 종종 빠지곤 한다. 쓰고 싶은 글을 쓸 것이냐 소위 '팔리는' 글을 쓸 것이냐. 잘 쓴 글이 널리 읽히는 글이라는 건 자명하지만 그런 지경까지 오르는 건 너무나 고된 일이니까, 조금이라도 쉬워 보이는 길을 힐끔거리게 된다. (물론 그게 정말 쉬운 길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꾸만 곁눈질하지 않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씩씩하게 걷고 싶지만, 그러기엔 모든 곳에서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하다못해 글 쓰는 AI 하고도 대결해야 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까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뭐였는지 까먹어버릴 때도 있다. 이렇게 귀가 팔랑거리고 기억력까지 안 좋은 내게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다. 미약한 기도를 품에 안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걷는 수밖에. 가끔은 전지현 사주에 대해서 쓰고 또 가끔은 묻어둔 얘기들을 꺼내 쓰다 보면 그 사이 어디쯤 길이 보일 거라고, 그렇게 믿으며 다만 펜을 놓지 않을 수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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