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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22. 2021

'밴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이 됐습니다

서른 즈음에 발견한 새로운 취미의 세계

인생은 때때로 예기치 못하게 흘러간다.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소동들이 모여 삶의 거대한 줄기를 바꾸기도 한다. 당장 작년 이맘때와 지금을 나란히 떠올려 봐도 단 1년의 시간이 격세지감이다. 성인이 됐을 때나 직장인이 됐을 때만큼 많은 게 변했다.


계기가 뭐냐면, 밴드다. 밴드 오디션 프로에서 1등을  벼락스타가  것도 아닌데 삶을 운운하는  웃기지만 아주 과장은 아니다. 친구들과 합주를 하며 보낸 시간들이 그만큼 깊은 자국을 남겼으니 말이다.


평생 내가 밴드를 하게   몰랐다. 재능과 관심이 없는  둘째 치고,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밴드 같은 취미' 가질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퇴근  홍대 한구석에서 합주를 하는 직장인을 떠올리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 그려진다. 이것이 바로 나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인물이다! 책을 읽거나 산책을 하는 정적인 활동을 즐기고,  실제로 그게 취미의 전부인 사람이 나였다. 누굴 만나기보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점에서도 그랬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난다면  낯설다고 느낄 것이다. 호흡이 딸린다고 질색할 것이다. 친구들과 모여 음악을 하고 그걸 콘텐츠로 영상을 찍고 그림까지 그리며 시간을  채워 보내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밴드를 시작할 무렵 나는 평소보다 활동적이게 돼서, 이것저것 새로운 운동을 배우고 틈날 때마다 바다로 달려가는 사람으로 변신을 해버렸다. 새로운 도전에서 얻은 에너지가 삶의 다른 부분까지 흘러넘친 영향이다.


영화 <화차> 만든 변영주 감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있다. 20대들이 취향을 빌미로 자신의 심장을 좁히지 말았으면 한다는 말이다.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섣불리 단정할수록 자신의 세계가 좁아진다는 맥락이었다. 스무 , 그의 인터뷰를 봤을 때만 해도 심드렁했다. 조금은 아니꼬웠다. 당시 나는 소위 '멘토'들의 충고와 조언이라면 뭐든 병적으로 날을 세우는 애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살면서  말을 종종 떠올렸다. 그럴 때마다 의미가 선명해지는 것도 같았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며 스스로를 규정하는 말은 과거의 누적된 경험에 근거하지만, 내일의 나는 어제의 틀을 벗어나 꿈틀거리기도 한다. 어느 날엔가는 평소  하던 짓을 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데.  당연한 건데도  과거를 배신하는 기분에 민망해지며 내가 규정한 모습에 스스로를 욱여넣고  때가 있다. 말이 아집이 되는 순간들이다.


아는 것도 없이 편견과 고집뿐인 사람으로 자라고 있진 않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제일 두려워지는 건 이런 것이다. 단순히 취미나 취향만의 문제가 아니다. 삶에 대한 태도, 인생관,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신념.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바늘 끝이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은 이미 나침반이 아닌"데, 고장 난 나침반이 나를 고장 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늘 돌아보게 된다.


알지 못하는 세계와 만나며 우리는 변한다. 우연히 밴드를 시작하며 휴일을 보내는 방법이 달라졌고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새로워졌다. 앞으로도 나를 변화시킬 새로운 소동들을 찾아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기꺼이 헤매겠다고, 그런 다짐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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