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May 26. 2024

나이를 먹어도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휴가를 앞둔 일주일 동안 나를 지배한 감정은 귀찮음이었다. 마음은 이미 휴가 중인데 출근을 해야 하는 게 참을 수 없이 귀찮았다. 아직 다하지 못한 여행 준비가 밀려있는데도 일을 시키는 선배들도 성가시고 미웠다. 귀찮아, 정말 귀찮아 죽겠어!

불행하게도 일주일 간은 평소보다 많은 일에 시달려야 했고, 꾸역꾸역 그것들을 해내는 동안 계획된 여행 자체를 후회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괜히 휴가를 해외로 간다고 했나. 아무 계획 없이 집에서 잠이나 자고 밀린 드라마나 볼걸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첫 유럽여행에 대한 걱정 때문에 준비를 해도 해도 뭔가 빠진 것 같아 지친 상태이기도 했다. 하루종일 집에서 잠이나 자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건 귀찮음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모든 게 거기서 거기인 것 같고, 뭘 해도 새롭고 설레지 않을 때야말로 사람이 늙어가는 순간인 것 같다. 타고나길 게으른 구석이 있는 나는 이런 정신의 낡아감에 더 취약한 셈이다. 한 발짝만 더 나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걸 알면서도 그 문턱 앞에서 지레짐작하고 귀찮아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던 숱한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언젠가 이하늬 배우님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나이를 이렇게 먹었는데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너무 좋아!라고. 젊다. 젊게 산다는 건 저런 태도를 유지하며 사는 게 아닐까. 쉽게 익숙해하지 않기, 모든 처음을 경이롭게 바라보기,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귀찮아하지 않기. 금요일, 일을 마치고 배낭 하나에 열흘간의 짐을 꼼꼼히 챙기는 동안 그녀의 말을 곱씹으면서 다짐 아닌 다짐을 새롭게 새겼다. 귀찮아하지 말자고.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인 지금 낯선 바깥 풍경에 기분이 붕 뜨는 걸 보니 꽤나 먹히는 다짐이었나 보다. 아직도 처음인 게 있다니, 멋진 일이야!

작가의 이전글 P의 계획법: 유럽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