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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Jun 17. 2024

프랑스에서 벌금 20만원 낸 썰..

2주간 유럽 여행 내내 우리의 운빨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타지도 못한 자전거에 보증금을 뺏기고 길에서 물벼락을 맞았던 첫날(https://brunch.co.kr/@hansii/140)도 충분히 나쁜 날이었지만 그날 하루로 때워질 액이 아니었는지 짜증 나고 화나는 일들이 게임 속 퀘스트처럼 번번이 여행길을 막아섰다.


제일은 아무래도 프랑스에서 벌금 20만 원을 낸 일이 아닐까.. 처음 벌금을 낸 건 파리의 지하철역 안, 그때만 해도 우리는 "살다 보니 별 일이 다 있네!"하고 웃어넘기며 쿨하게 10만 원을 냈었다. 사건의 발단은 첫날 파리에서 만난 애인의 친구가 끊어준 티켓이었다. 파리가 세 번째인 그가 어리숙한 우리를 위해 끊어준 대중교통 티켓이 성인이 아닌 어린이용 표였던 것이다(그건 매우 모호하게도 reduced fare라고만 돼 있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지하철역 안을 지키고 있던 공무원들에게 붙잡히고 난 뒤에 알았다. 세 번의 파리 여행 내내 그 표가 어린이 표인 줄 몰랐던 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도 알고 싶지 않았는데..


10만 원짜리 벌금을 또 낸 건 니스의 버스 정류장에서였다. 해변에서 낮잠을 자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인파에 섞여 버스 뒷문에 몸을 구겨 넣고는 카드를 태그 하지 못했다. 한국과 달리 뒷문엔 리더기가 없었고, 만원 버스를 뚫고 앞쪽으로 가기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현지인들은 자연스럽게, 마치 처음부터 돈을 낼 생각이 없다는 듯이 빈손으로 버스에 올라탔다. "이런 식이면 무임승차 관리가 안 되겠다", "공영이라 방만 경영을 하는 건가?" 순진하기 짝이 없는 대화도 잠시, 광장 인근 정류소에서 제복 덩치들이 사람들을 내리게 한 뒤 카드를 검사하는 게 아닌가. 또 당했다! 관광객이 몰리는 정류소를 급습하다니! 이유 어찌 됐든 무임승차를 한 건 분명 우리 잘못이었는데도 괜히 반발심까지 들었다. 나라 곳간엔 과태료 한 푼 보태본 적 없는데, 생전 처음 발 디딘 나라에 국부 20만 원을 유출하게 됐네..1400원을 뚫은 유로 환율에 또 한 번 분통함을 느끼면서.


다행인 나의 기억력이 이런 일들을 오래 담아두지 못할 만큼 형편없다는 거. 20만 원 따위(흑흑)에 2주의 기억을 통째로 망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벌금'의 '벌'자를 꺼내면 벌금이라며 서로의 입을 단속하고, 두 번이나 벌금을 낸 어글리 코리안임이 황당해 헛웃음을 짓고, 그래도 웃는 우리가 '일류'라며 농담 90%의 칭찬을 서로에게 건넸다. 짜증 나고 화나는 일도 웃긴 추억으로 만드는 농담의 힘을, 애인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유럽 여행을 떠올리면 다른 무엇보다 하나의 추억이 유독 선명하다. 돌아온 니스의 광장에서 서로를 '일류'라고 치켜세우던, 텅 빈 주머니를 한 우리가. 애인도 나도 서로의 이런 모습을 알게 된 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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