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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Nov 11. 2024

브런치 방학을 마치며..

친구들과 '뭐라도 쓰는 모임(뭐.쓰.모.)'을 결성한 지 일 년 하고도 아홉 달 째던 3주 전. 뭐.쓰.모.는 발족 이래 처음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멤버 여섯 중 셋이 각자의 사정으로 모임을 잠시 떠나게 된 것이다. 모임이 반으로 쪼그라들며 사기가 떨어진 건 물론, 남은 셋이 하필 모두 불량 멤버라는 점은 뭐.쓰.모.의 미래를 한없이 어둡게만 만들었다. 아, 여기엔 나도 포함이다.


우리 셋은 작년 2월 '5만 원×멤버 수'의 막대한 벌금을 걸고 뭐.쓰.모.를 결성한 원년 멤버다. 마감이 없으면 글을 쓰지 못하겠어서 서로가 서로의 감시자로 나선 건데, 초반부터 돌아가며 약속한 마감(일요일 밤 12시)을 슬쩍슬쩍 넘기더니 일 년이 지날 무렵부턴 모두가 당당하게 월요일 새벽에 글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암묵적으로 합의된 새로운 기준인 것처럼 말이다. 새로 초대한 멤버들은 일요일이 되기 전 글을 올리거나 늦어도 일요일 12시 전을 맞췄지만 셋은 그걸 보면서도 자극을 받을 의지도 없어 보였다. (최근에서야 우리는 우리의 불성실함에 질려버린 나머지 '1분이라도 늦으면 추가 벌금'이라는 셋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이 역시 얼마 못 가 깨졌지만..)


기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헐렁한 사람들끼리 남게 되면 더 헐렁해지는 결말밖에는 없다. 모범생 세 사람(엄밀하게는 두 사람과 한 명의 엑스맨)의 충격적인 탈퇴 선언 후 우리가 한 것 또한 기강 잡기가 아닌 '방학'이라는 이름의 휴식이었다. 잇단 탈퇴로 받은 상처와 헛헛함을 달래고(?)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하자는 차원이었는데, 사실 다 거짓말이고 그냥 맘 편히 놀고 싶어서다. 마감이 없는 일요일이라고 대단히 특별하게 보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의 짐이 있는 주말과 그렇지 않은 주말은 다르니까. 방학을 처음 제안한 건 나였고, 머쓱함을 감추기 위해 덧붙인 깜찍한 하트가 소용없게도 두 사람도 기다렸다는 듯 호응했다. 처음엔 2주였던 방학이 마지막날 만장일치로 연장된 점 또한 뭐.쓰.모.의 미래를 한없이 어둡게 만들고 있다..


다행히도 방학이 두 번 연장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유혹을 느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 것이리라. 얼렁뚱땅 3주간의 방학이 끝난 지금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미래가 의심되는 뭐.쓰.모. 2기를 앞두고, 오직 글 쓰는 게 좋아 말도 안 되는 벌금을 흔쾌히 걸었던 그 마음을 다시 되짚어본다. 늘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마감하더라도 그래서 온통 후회투성이인 글이 피드를 채우더라도, 이 마음을 기억하는 한 그리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일요일 밤이 쌓여가는 한, 이 시간들은 분명히 나를 어디론가 데려다줄 거라고. 또한 매번 늦고 헐겁고 얼렁뚱땅이더라도 적어도 멈추지는 않으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 밤을 함께해 준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시간들은 우리의 마음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게 될 것이다. 잘 부탁해, 뭐.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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