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항공편을 타기 전부터 지인의 지인, 지인의 지인의 지인까지 끌어모아 시드니에 산다는 교민분들을 소개받았다. 운이 좋았던 건 모두가 하나같이 "기왕 도와주기로 한 거 최선을 다해주겠다"며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분들이었다는 점이다. 시드니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그 '최선'의 정체는 내가 기대보다도 더 최선의 것이라 난 속수무책으로 놀랐다. 사실은 놀라기 전에 일이 잘 풀려간다는 확신과 기쁨이 앞섰다. 한국처럼 빠르지 않은 그곳의 행정 속도도 그런 최선 앞에서는 소용없을 정도였는데, 예를 들면 하루 만에 취재 목적에 맞는 방문지가 섭외되고 하루 만에 6명의 인터뷰이와 줄줄이 미팅 약속이 잡히는 식이었다. 이건 한국에서도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다. 엄청난 운이 따른 결과였고 그 운을 만들어낸 건 부끄럽게도 내가 아니라 그분들이었다.
그분들은 일이 마무리지어질 때쯤 나를 차를 태워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기까지 하셨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 말고, 진짜 '시드니사이더'가 놀러 가는 곳을 알려주겠다는 거였다. 차를 타고 2시간 반은 올라가야 나오는 포도밭과 와인공장도 서슴지 않고 데려가주셨다. 그 차 안에서 나는 뉴욕 사람은 뉴요커, 파리 사람은 파리지앵, 시드니 사람은 시드니사이더라고 불린다는 걸 알게 됐다. 서울에 산다는 것과 시드니에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또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또한. 드넓은 포도밭 위에서 느리게 지는 해와, 그 덕분에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빛을 바라보는 건 또 다른 재미였다.
그분들과 나는 '한국인'이라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인생을 살다시피 해왔다. 이 유일한 공통점조차도 그분들의 정체성을 따져본다면 매우 모호한 무언가일 수밖에 없다. 시민권의 귀속으로 따져보자면 그분들은 분명히 '호주 사람'이니까. '이주 배경'이라는 단서가 붙는 점이나 백인들을 '호주인'이라고 부르며(조상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백인들조차 역시 이주 배경인데도..) '한국인'이란 명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 그분들의 내셔널리티를 나와 가깝게 만들어줄 뿐이다. 그토록 모호한 무언가에 호소할 뿐인데도 기꺼이 발 벗고 나서주는 마음이란 내 작은 가슴으로 잘 이해하지를 못하겠다. 어쩌면 그분들은 준비된 선의를 늘 품고 사는 분들이실 지도 모른다. 비슷한 외모를 하고 한국말을 쓴다는 그런 작은 핑곗거리에도 모른 척 열어줄 수 있는 그런 넓디넓은 마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