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한참 늦은 비밀의 숲 입덕기..

내가 사랑한 캐릭터들

by 한시

※드라마 <비밀의 숲>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드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선 10시간 동안 미리 저장해 둔 <비밀의 숲>을 봤다. 2017년 종영한 뒤 시즌2에 스핀오프까지 나온 그 드라마.. 덕질을 위해선 7년 전 사람들이 떠들어놓은 열광 어린 글들을 파헤쳐야만 하는 그 드라마.. 한참 늦은 입덕은 나의 업보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이제라도 이 드라마를 봤다는 사실이다. 7년이 지나서도 캐릭터는 세련됐고 사건은 탄탄하며 서사의 재미 또한 훼손되지 않은 걸 보니 명작은 과연 명작..!


내게 이 드라마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요인은 선인과 악인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단죄마저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는 점이다. 주인공 황시목 한여진보다도 더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창크나이트' 애칭을 얻은 이창준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들마저 좋은 놈 나쁜 놈 헷갈리게 하다가 끝내 신경 쓰이게 만드는 캐릭터 플레이는 시종일관 인간의 입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다. 현실과 살을 맞댄 듯이 느껴지는 캐릭터 사이에서 죄지은 자들을 흔들림 없이 잡아들이는 황시목은 그러므로 감정이 결여된 인물로 설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의외로 뇌리에 깊이 박힌 인물은 김수찬 경사(!)였다. 부패한 서장의 따까리로 시종일관 한여진의 수사를 방해하지만 '썩은 동아줄'이 된 보스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진짜 충심을 보여주던 그의 뒷모습에선 화면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정신 질환을 가진 자식을 해외에 보낸 기러기 아빠라는 사연까지, 시종일관 이름보단 얼굴이 익숙하던 물인데도 망할 놈아 망하지 마를 외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감정에 휩쓸려 단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우유부단함은 극이 허락하는 바가 아니다. 황시목이 이창준의 유언을 공개하면서 덧붙인 '괴물'이라는 평가가 보여주듯이 말이다. 겨진 감정은 사사롭고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이런 단호한 정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씁쓸한 뒷맛은 현실을 살아가는 시청자들의 몫이라, 손바닥 뒤집듯 권선징악이 이뤄지는 사이다 드라마를 봤을 때와 달리 스크린 밖의 삶과 사회를 고민하게 만든다. 좌천에 가까운 지방 발령을 명 받는 황시목이 소시오패스인 점은 그나마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을 안심시킨다. 황시목은 자리에 목매지 않고 묵묵하게 제게 주어진 일을 할 것 같아서,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사회를 전진하게 하는 힘이라는 걸 적어도 드라마를 본 우리들은 알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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