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광장에서 생리 해방을 (못) 외치다..

by 한시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찾아온 주말에는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


광장만큼 '공동체'의 실체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또 없을 것이다. 각자가 가진 정치적 열망의 구체적인 모습은 서로 다를 것이나, 그 끝엔 결국 자유나 민주주의 같은 공통의 목표가 있을 뿐이라는 걸 광장은 보여준다. 이런 공감대 위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에게 보이는 신뢰와 다정함도 좋다. 집회 참석자들을 위해 커피를 선결제해두고 생수를 나눠주고 의료봉사를 제공하고.. 숭고에 가까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광장의 힘일 것이다. 그날 나는 "까지 않은 물인데 드실래요?" 하며 생수를 건네는 사람들 곁에서 추위를 잊고 기어이 늦은 밤까지 함께할 힘을 얻곤 했다. 혼잡한 국회 앞에서 긴 줄을 선 끝에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까진...


생리 예정일이 일주일도 더 지난날이었다. 생리 때 특유의 신체 변화가 주는 은은한 스트레스마저 익숙해지고 옅어지던 때. 언젠가 터지겠지, 하지만 오늘은 아니겠지(대체 무슨 근거로?) 하며 생리대가 든 파우치를 가져오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아, 생리대가 있어도 소용없었겠다. 인파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참다 참다 들어간 화장실에서 발견한 건 말 그대로 피범벅 된 속옷이었으니까. 길어질 집회에 대비해 히트텍(이라 쓰고 내복이라 읽는..)을 입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연청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덮지 않는 숏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그 한 겹 덕분에 곤란한 상황이 바깥으론 표가 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정신승리도 거리에 빼곡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광장이 주는 들뜬 열기와 기분 좋은 흥분도 잠시, 탄핵이고 나발이고 그저 목욕을 한 뒤 쉬고 싶어졌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한 개인이 되어 집에 처박히고 싶다는 열망이 치솟은 것이다. 급격한 피로감이 몰려왔다. 어쩐지 배도 살살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엄살은 사치, 당장 갈아입을 속옷과 생리대를 사는 게 급했다. 그러지 않으면 바지에도 붉은색이 비쳐 피를 흘리며 집회에 참석한 여자로 기억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열사가 되는 건 마다하지 않겠지만 엉덩이로 피를 흘리는 건 좀 곤란하니까. 하지만 다급한 생리인의 사정 따위 알 길 없는 그 시각 서여의도에는 어딜 가든 편의점에 줄이 길었다. 물이나 핫팩을 사는 사람들 틈에서 당당하게 팬티와 생리대를 계산대에 올릴 자신이 내겐 없었다. 어찌어찌 구하더라도 깨끗하지도 않은 데다 문밖에 긴 줄이 기다리고 있는 공중화장실에서 속옷을 갈아입을 자신은 더더욱.. 집회에 몰린 인파로 국회의사당역은 열차 무정차 통과,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동여의도로 이동해 쾌적한 IFC 몰에 가 비밀스러운 거사를 치르기로 한다.


한걸음.. 국회의사당역.. 또 한걸음 KBS 앞 사거리.. 그리고 여의도공원.. 탄핵을 향한 시민들의 열망을 얕본 건지 내 생각보다도 많은 인파가 여의도공원까지 가득 차 있었다. 혹시라도 그 사이에 피가 샐까 봐 더운 척, 패딩을 어깨 아래로 내려 엉덩이도 감췄지만 초조함은 숨길 수 없었다. '여의도공원만 지나면 될 거야'라는 행복회로를 돌린 지 40분째.. 겨우 도착한 여의도환승센터에서 나는 매복한 적군의 정예부대를 만난 것과 같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공원을 빠져나오자마자 차들을 막아선 채 16차선 도로를 점령한 사람들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동시에 윤석열을 향한 나의 분노는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그 밤보다도 열렬하게 치솟았다. 왜 이 사달을 만들어 서울 한복판에서 팬티와 생리대조차 사지 못하게 하는가..


결국 난 파도를 이루는 물결처럼 속수무책으로 거리를 떠돌다 1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여의도역 편의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 화장실도 여전히 줄이 길었지만 여기가 최선이란 걸 난 직감할 수 있었다. 체념하듯 속옷과 생리대를 사 뒤처리를 해내고, 그 길로 지하철에 몸을 실어 도망치듯 여의도를 빠져나왔다. 세종집으로 가는 차편까진 2시간이 남아 한참을 스타벅스에서 보내야 했지만 누더기가 된 몸과 마음엔 그 정도도 감사한 일이었다. 따뜻한 음료와 히터 바람에 노곤해져 얼빠진 얼굴로 앉아있는데 휴대폰에 알람이 울렸다. 탄핵안 투표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는 속보였다.


당도가 높아 평소 잘 마시지 않는 밀크티까지 시켰건만 끓어오르는 짜증과 분노는 진정이 잘 안 됐다. 윤석열도 아니고 표결에 불참한 여당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편의점과 화장실에 줄 선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었다. 곱씹을수록 화살이 돌아가는 건 이런 생리 현상에 제대로 대비도 못한 나의 바보 같음뿐이었다. 왜 생리를 해서, 왜 여자로 태어나서(!) 같은 질문이 엉망이 된 나라꼴을 뒤로한 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였다. 분명 잘못된 물음이었다. 이런 생리현상이 뭐라고 의연하지 못하는지, 이렇게 부끄러워하는지를 생각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명백하게도 내게는 찝찝함이나 불쾌함보다 부끄러움이 앞섰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수도 없이 곱씹어야 했던, 향할 곳 잃은 책망이 뽀송뽀송한 새 속옷을 입고도 끈덕지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오랜만이었다. 오래된 숙제가 여전히, 여가부 폐지를 공약한 정권이 정치적 자해행위로 무너져가는 걸 목도하는 와중에도 여전히나 날 괴롭게 하다니.. 조금은 막막한 기분이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까지 광장을 지킨 사람들 중에는 젊은 여성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다만세를 부르는 밝고 유쾌한 분위기가 1020 여성들의 참여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있지만 바뀐 순서일 것이다. 내가 있었던 첫 집회부터 응원봉과 재치 있는 깃발을 든 앳된 여성들의 존재가 두드러졌으니까. 밤이 깊어가는 동안 중개화면으로나마 그들과 함께 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여자들은 무책임하다거나 변덕스럽다(과거에는 여성의 생리가 변덕스러움의 생물학적 증거였다고 한다)는 오랜 편견과 싸워온 사람들. 스스로가 여성이라 자랑스러운 동시에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성이 싫었을 사람들. 정확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감정 사이에서 요동치듯 살아왔을 사람들. 윤석열 탄핵 집회가 열리던 광장, 해묵은, 해묵었어야 할 여성 해방의 깃발이 그들의 머리 위에서 다시 펄럭인 이유에 대해. 해방된 것은 무엇이고 해방되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 해방의 구호조차 허락되지 않은 것은 또 무엇일까. 아무래도 나 혼자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남겨진 숙제를 풀 희망은 여전히 그 광장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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