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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Nov 21. 2021

아흔아홉 번의 상처, 한 번의 포옹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는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는 유명한 문장이 나온다. 고전의 지혜가 말하듯 사람은 자라며 성장하고 때론 과거와 화해될 수 없는 변화도 겪어야 한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그래야 하는 순간이 오는 법이다. 내가 깨트린 세계는 엄마였다. 엄마는 내 세상의 전부였고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는 데 내 존재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커왔다.


그때 난 10대였다. 그 나이 또래다운 정서는 아니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 연민, 죄책감… 딱 잘라 말할 수 없이 많은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내 눈에도 엄마가 겪는 삶의 풍파는 유난히 모질었으니까. 그런 여자가 자식을 키우려면 남들보다 많은 것을 짊어져야 하는 법이다. 물리력이 동원되곤 했던 부모의 싸움에서, 이불속에서 새어 나오는 엄마의 울음에서, 엄마가 집에 돌아오길 기다리며 지새운 밤들에서 나는 그걸 배웠다. 우리 없었으면 엄마 이 집에 안 돌아와도 됐을 텐데. 그런 부채감 때문에 난 엄마가 가진 온갖 결핍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자 욕망하는 지점,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중심에는 늘 엄마가 있었다.


성인이 되고 많은 게 변했다. 서울로 대학을 와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된, 그 단순한 계기가 많은 걸 바꿨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세계는 한 뼘쯤 넓어졌고 내 안의 엄마는 그만큼 작아졌다. 그제야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 엄마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덮어두었던 흉터들이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엄마는 어쩐지 불가해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기구한 팔자가 엄마를 변하게 만들었는지 내가 단지 엄마를 달리 보게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엄마라는 세계가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깨부수고 나온 과거가 됐단 사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와 마주 보고 있으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갈수록 그 마음의 빈도가 잦아졌다. 형제와 엄마의 사이는 훨씬 심각했다. 틈만 나면 신경전을 벌였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았다. 추석,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쌓인 갈등은 요란하게 폭발했다. 모처럼 기획한 화해의 술자리였는데 서로에게 서운함만 털어놓다가 엉망으로 끝난 거였다. "내가 너희에게 못 해준 게 뭐냐"는 말과, "엄마가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냐"는 말 따위들. 하긴 우리가 이제 와서 뭘 화해할 수 있다는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도 모르겠는데. 엄마는 이제 그만 얘기하고 싶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동생은 울다가 발작을 했다. 이제 다 끝났다. 엄마와 우리는 절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구나. 오늘이 지나면 한동안 엄마를 찾지 않겠다.


정말로 그렇게 하려 했다. 다음날에도 그렇게 말하기 위해 엄마의 가게를 찾았다. 이대로 떠났다가는 엄마와의 사이가 더 엉켜버릴 게 뻔했지만 손쓸 도리를 찾기에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건강하시라, 나중에 다시 오겠다, 말하며 마지막 포옹을 건넨 그때.


뜻밖에도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자존심이 강해 가족들 앞에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려 하지 않던 이 여자의 눈에서. 울음을 터뜨린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에 젖은 그 한 번의 포옹으로 어젯밤의 모든 소란은 오간 데 없었다. 내가 여전히 엄마를 사랑하고 깊이 연민하며, 엄마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것만이 분명해졌다. 결국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자주 전화드리겠다. 조만간 또 오겠다”라고 했다. 엄마는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인 게 쑥스러운지 알겠다고, 얼른 가라고, 조심해서 가고 도착해서 전화하라며 등을 떠밀었다.


엄마와 포옹하는 순간 손쓸 도리 없이 북받치던 감정이 도대체 뭐 때문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엄마의 작고 왜소한 몸이 팔 안에 생생하게 느껴져서인지, 눈물을 닦는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고되어 보였기 때문인지. 다만 분명한 건,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서로를 등지기에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왔단 것. 그래서 아흔아홉 번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도 한 번의 포옹으로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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