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Mar 14. 2022

우리는 느리게 걷자

봄의 문턱에서 느낀 것들

겨울 동안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고양이들이 어느새 양지바른 골목에 나와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었다. 매섭던 바람도 오간데 없어 외투를 벗어던진 가벼운 차림으로 흙냄새가 올라오는 땅을 실컷 밟고 다녔다. 돌아와서는 이불을 빨아 널었다. 잔뜩 쌓아뒀던 고구마와 귤은 어젯밤 모두 먹어치웠다. 대신 오늘은 신선한 달래로 된장찌개를 끓였고 얼음을 탄 차가운 라떼를 마셨다.


계절이 바뀌는 순간이 좋다.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는 세상에서 찰나의 계절은 더 소중해, 해를 거듭할수록 요란하게 맞게 된다. 봄이 왔다고.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가고 있다고. 단장을 새로이 하고 제철 음식을 챙겨 먹으며 몸과 마음을 정비하게 된다. 게다가 봄은 모든 게 새로 시작되는 계절이라 법석을 떨기에 특히 좋다. 한 해의 시작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1월보다는 3월이라고 답하겠다. 얼어붙었던 땅이 녹아 대지의 향이 달라지고 부드러운 바람이 콧속으로 들어와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때. 바로 그때가 돼서야 웅크렸던 몸을 들어 기지개를 켤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겨우내 나를 지배한 감정은 불안이었다. 잠들기 전 흐린 눈으로 천장을 보고 있으면 답도 없는 질문이 아무렇게나 맴돌았다. 이게 맞아? 이렇게 사는 게? 하지만 성찰하려는 마음이 피로감을 이길 순 없는 법이어서 질문이 차마 끝맺어지기 전에 까무룩 잠들었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나 출근하고, 집에 돌아와선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각종 스낵 콘텐츠에 몰두하고, 자정이 다 돼가서야 다시 심각하게 고민할 뻔하다가 스르륵 잠들기 일쑤였다. 불안했고, 맘 놓고 불안해하기엔 바빴고, 하지만 어찌 됐든 불안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애매한 마음이 일상을 관통했다.


이렇게 얼렁뚱땅 살다가는 똑같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또 다른 봄을 맞이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가 뭘 어쩔 수 있단 걸까.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고 있고 취미 생활도 나름 부지런을 떨며 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는 그다지 불안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매일 밤 초조해하며 나를 돌아보고 있다니 이상한 일이다. 정말로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미래에 대한 실체 없는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시대의 속도에 맞춰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짓눌려서. 주변을 돌아보면 남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사람들도 끝없이 다음 단계를 궁리하곤 했다. 언제는 결혼을 해야 하고 언제는 직장을 옮겨야 하고 언제는 얼마를 모아야 하고... 더러는 욕망의 대상이 명확했지만 대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질주했다. 이 집단적인 열정이 모여 우리는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을 품은 채 저만치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몰려오곤 했다. 더 깊은 피로와 함께 말이다.


미래는 지나치게 저돌적으로 닥쳐오고 사람들은 지나치게 성찰적이어서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뒤쳐지고 하나의 단계를 뛰어넘은 후에도 맘 편히 쉴 수 없다. 정신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스스로 뭔가 잘못하고 있단 막연한 불안에 휩싸인다. 이 불안감을 견디지 못한 나는 반대의 다짐을 했다. 언제나 뒤에 남겨지는 사람이 되겠다고. 폭풍 같은 미래가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후 잔잔해진 수면 위로 고요하게 떠오르는 것들을 들여다보겠다고. 성취와 낙오, 화해되지 못한 상처 같은 것들을 응시하며 한 발짝 뒤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되겠다고. 시작의 계절을 맞아 내가 유일하게 다짐한 건 그거였다.

작가의 이전글 아흔아홉 번의 상처, 한 번의 포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