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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Feb 12. 2024

단골

한강을 걷고 남산을 오른 시간이 20대의 정서를 만들었다면 서른 살에는  공간에 파묻혀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마당 겹벚나무에 꽃이 흐드러질 때부터 녹음이 우거지고 단풍이 들며 눈이 소복이 쌓일 때까지  주말  공간과 계절을 함께 맞았다. 한강이 마르고 남산타워가 무너지는 일은 없어도 단골 가게가 사라지는 일은 있다. 상업적인 공간에 이만큼 정을 붙인 적도 처음이었는데. 서운하다. 돌아오는 주말에도 새로운 곳에서 뭔가를 읽고 끄적일 테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과 같을  없을 것이다.


신수동의 단골 카페가 문을 닫은 날 난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썼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그 카페는 마당에 심어진 아름다운 겹벚나무 아래로 사시사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이었다. 섬세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에 매료된 난 평일이면 그곳에서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 일을 했고 주말이면 책을 한 권 끼고 반나절을 앉아있다 왔다. 동네에 찾아온 손님의 손을 끌고 매번 기쁜 걸음으로 찾은 곳도 그 카페였다.


그곳을 잃어버린 뒤 한동안 다른 카페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그럴 이유야 차고 넘쳤으니까. 우선 그곳만큼 공간의 밀도가 적당한 곳이 없었다. 음악 선곡이나 볼륨이 편안한 곳도 없었다. 거기만큼 커피맛이 훌륭한 곳은 더더욱 없었다. 무엇보다도, 그곳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공간이 없었다. 너무 오랜 날 거길 들락거린 나머지 직원들은 살갑게 말을 붙이는 손님이 아닌 내게 알은체를 했다.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관심이어서 딱 원하는 만큼만 환대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무렵부터 난 이 공간에 대해 많은 걸 알았고 거기에 익숙해져 갔다. 커피를 다 마실 때쯤에는 한 잔의 물이 권해질 거라는 걸 알았고 권진아의 노래 다음에 최유리가 나올 거라는 것 또한 무의식 중에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하나의 공간에 정을 붙인다는 건 그 공간의 리듬, 그 공간에 속한 사람들의 리듬이 익숙해지는 거란 걸 그때 알았던 것 같다. 그 고유함이란 아무리 비슷한 곳일지언정 다른 곳에선 다시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사라진 그곳만 한 데를 찾지 못해 프랜차이즈 카페나 전전하다가 신수동을 떠났다. 새로운 동네에서도 비슷한 공간을 찾는 데만 반년이 걸렸는데 잘 안 됐다. 주말이면 옆구리에 책을 끼고 찾는 카페가 생길지언정, 그와 같은 공간은 앞으로 다시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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