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Aug 01. 2021

나의 첫 밴드기

내가 이 정도인 걸 우야라고!

“우리 밴드 하기로 했어. 넌 베이스야.”


지난해 여름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캐스팅을 당했다. 코로나가 많은 즐거움을 앗아간 그해 내 친구들은 할 것도 없는데 밴드나 해보자며 모처럼 의기투합하고 있었다. 밴드라는 게 심심한 김에 시작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이 여자들은 무서울 만큼 추진력이 있는 여자들이었다. 마침 노래를 잘하는 애, 취미로 드럼을 치는 애,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애가 모여있어 안 될 것도 없었다. 베이스 칠 사람이 없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베이스는 낮은 음역대에서 다른 악기들이 내는 소리를 받쳐주는 일을 한다. 베이스 연주자이기도  가수 윤상은 베이시스트는 리듬과 화성을 모두 다루며 밴드 음악의 뼈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 밴드의 심장은 베이스이며 베이스 없는 밴드란 골조 없이 지어진 건물과 같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나서는  없이 묵한   베이스의 매력이다. 이토록 중요하고 멋지고 우아한 베이스가 빠진 밴드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당연했다. 내가 베이스를 쳐서 이렇게 말하는 건 절대 아니다.


나는 베이스를 못 쳤다. 잘 못한다는 게 아니라, 쳐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었다.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간지란 게 넘쳐흐르는 타고난 밴드맨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여자들이 내게 베이스를 맡긴 이유는 하나였다. 시키면 다 하는 사람,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딜 가자고 하거나 뭘 먹자고 하면 불만 없이 그렇게 하는 유형에 속했다. 같이 뭘 사자고 해도 보지도 않고 돈을 냈다. 베이스를 하라고 해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살면서 베이스를 구경해 본 적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지만, 뭐 괜찮다. 얘네랑 있으면 뭘 해도 재밌을 테니까. 그렇게 얼렁뚱땅 취미 밴드의 베이시스트가 됐다.


세상의 모든 처음이 그렇듯 베이시스트 되기 도전도 험난하긴 마찬가지였다. 베이스를 사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어떤 브랜드나 모델이 좋은지, 사기 전에  확인해야 하는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검색을 하다 포기하고는 오래 알고 지낸 밴드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고 판매자와 채팅하고 만나서 악기를 확인하는 것까지 모두 걔의 조종을 받아서 했다. 시작이 반이고 나는 반을 해냈다. 나의 날엔 베이스 폭주기관차가 되는 미래만이 은 것이다! 거래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 베이스 가방을   모습을 보면서는 이런 흥분에 사로잡혔다.


겨우 악기 하나 사놓고 터질 듯이 부푼 꿈은 새로 산 베이스를 잡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베이스를 잡은 내 자세는 내가 봐도 정말 구렸다. 엉거주춤 악기를 안아 들고선 왼손과 오른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를 두고 씨름하는 꼴이란...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건 도대체 뭐부터 배워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베이스 입문자를 위한 유튜브 강의조차 음악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첫 합주곡을 연습해 오기로 친구들과 약속했는데, 모이기로 한 날까지 내가 한 거라곤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더듬더듬 친 게 전부였다.


 합주  방구석에 처박아둔 베이스를 들쳐 멘 내가 느린 걸음으로 집을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뭐라도 합을 맞춰보자며 모이는 건데 악보 읽는 법조차 공부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얄밉겠지, 날 나무라겠지, 친구들 얼굴 보기가 민망했다. 하지만 이 여자들은 또한 마음이 넉넉한 여자들이어서 핀잔을 주기는커녕 기꺼이 팔을 걷고 나서줬다. '코드'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타브 악보 보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합주곡에서 베이스 소리를 구별해내지 못하자 베이스 박자에 맞춰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귀찮은 내색  번도 없었다. 손뼉을 쳐주는 친구들 앞에서 서툴게 베이스 현을 튕기고 있으니  유치원생이   았다. 그 기분이란 쑥스러우면서도 안락한 것이었다.


“5 5 5 5... 4 4 4 4...” 형편없는 박자감에 줄을 힘 있게 잡지 못해 나는 삑사리는 덤. 그런데도 "잘한다", "베이스 천재"라는 터무니없는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취미는 못해도 귀엽다"는 명언도 나왔다. 이 다정한 친구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어이없고 웃겨서 신이 났다. 하다 보니 소리가 아주 후지지 않은 것도 같았다. 내가 떠받치는 박자에 드럼이 더해지고, 기타와 보컬이 멜로디를 입히니 하나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우리가 있었다. 비록 부실한 뼈대 위에 졸속 공사로 올려진, 곧 무너질 듯한 앙상블이었지만 말이다.


첫 합주의 소동을 겪으며 불현듯 취미에 대한 지론이 확고하게 굳어졌다. 취미란 못하면 못하는 대로 "내가 이 정도인 걸 우야라고!"라며 웃어넘길 수 있는 게 좋다는 것. 세상에는 기록을 늘리고 성장하는 데서 기쁨을 얻는 취미인도 있지만 적어도 난 아니다. 잘해야 하는 건 일로 충분하다. 취미에서까지 아등바등 힘 빼고 싶지 않다. 잘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격려와 박수를 아끼지 않는 친구들이 있으니 더 바랄 것도 없다. 이 안일한 시간의 품에서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이게 내가 믿는 취미의 힘이다.


역사적인 첫 합주가 끝나고 우리는 홍대 거리로 나섰다. 깊어가는 밤의 한복판으로 가볍게 얼굴을 붉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내일이 주말이기 때문인지 들이킨 술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사람의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가을밤의 공기 때문인지 우리의 목소리는 반 옥타브쯤 높아져 있었다. 한 데 섞인 웃음소리엔 묘한 흥분이 깃들어있었다.


“꼭 콘서트 한 기분이야.”

“난 보드카 궤짝으로 마신 느낌이야.”


20초 남짓한 인트로를 합주한 게 전부이면서 우리는 마치 엄청난 일을 해낸 양 허풍을 떨며 걸었다. 술은 몇 모금 안 마셨지만 거나하게 취한 사람처럼 크게 손짓하고 과장되게 웃었다. 우리의 밴드기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