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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Aug 01. 2021

우리는 느슨하게 손을 잡고

나의 서울 엄마를 소개합니다.

나에겐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세상에 둘 있다. 생물학적으로 나를 낳아준 엄마,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 나를 키워주다시피 한 엄마. 생물학적 엄마가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후자의 엄마야말로 나를 살게 한 여자다. 언니를 못 만났다면 대책 없이 젊기만 한 날들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언니와는 대학교 글쓰기 모임에서 만났다. 친한 선배가 사람들을 모아 꾸린 거였다. 모임은 일주일에 한 번. 언니와도 딱 그만큼의 빈도로 만났으니 자주 보는 사이라고 말하긴 어려웠다. 그런데도 금방 언니에게 반했다. 그냥 반한 것도 아니고 홀딱 반해,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니가 지쳐 보이면 언니가 좋아하는 장미향 밀크티를 사다 줄 정도로 마음을 다했다. 지금처럼 음료가 배달되는 시절도 아니라 캠퍼스 언덕을 넘고 넘어 30분 이상 왕복해야 구할 수 있는 밀크티였다. 그때 사귀던 남자애가 그 밀크티를 마시고 싶어 했대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처음에는 언니가 구사하는 시적인 말들에 매료됐다. 그녀는 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상을 관찰하고 자신을 탐구했다. 휘몰아치는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그 미세한 결들을 포착하려 했다. 그러고는 섬세하고 적확한 말로 그것을 표현해냈다. 그녀만의 언어 세계에서 매일의 기분은 ‘쫄딱 망쳐버린 부침개’가 됐다가 ‘녹차 아이스크림 맛’도 됐다. 맛있는 걸 먹어도 멋진 풍경을 봐도 근사한 공간을 발견해도 “쩐다”는 말로 대충 눙쳤던 나와 달랐다. 이 언어의 여신을 향한 추종이 열렬한 구애의 발단이었다.


언니 역시 나만큼이나 내게 마음을 썼다. 언니는 유별나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제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가방을 들쳐 메고 다니면서 그나마 비는 손엔 보따리를 한가득 쥐고 날 만나러 오는 사람이 이 여자였다. 내게 줄 과일이며 비타민이며 간식거리 같은 것들이 들어 있는 보따리였다. 그것도 평범한 주전부리가 아닌 농약을 치지 않고 키워내 빛깔이 유난히 고운 홍옥이라든지 코타키나발루에서 온 밀크티, 그리 달지 않은데도 살면서 먹어본 것 중 제일 맛있었던 초콜릿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입맛 까다로운 언니다워 나를 울다가도 웃게 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 면접에서 떨어졌을 , 씁쓸한 기분을 삼키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하필 옆에서 술을 따라보라는 손님을 만났을 ,  이상 못해먹겠는데 그렇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 그런   보따리 속에   하나씩 꺼내먹으면 거짓말처럼 기운이 났다. 호랑이 기운까지는 아니어도 주저앉은 무릎을 털고 일어날 정도는 됐다. 누군가 나의 건강과 안녕을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어떤 안전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언니를 서울 엄마, 서울 엄마하고 부르게 것도 친엄마보다도 살뜰한 이런 보살핌 때문이었다.


언젠가 언니에게 선물 받은 엽서.


다른 날은 언니가 내게 소개해주기 위해 주변 남성들, 주변의 주변 남성들까지 샅샅이 뒤지고 있다고 해 나를 또 눈물짓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난 내게 쉽게 상처 주는 남성에게 푹 빠져 스스로 팔자를 꼬아버리는 궁상맞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사정을 알게 되자 내가 아무나 만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며 팔을 걷어붙인 거였다.


언니가 모색한 남성들은 흔히 괜찮은 연애 상대로 여겨지는 외모가 출중한 사람, 배경이 좋거나 재력이 넘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대신 ‘동물과 같던 남자애들 사이에서 유별나게 진중했던 동창’이나 ‘애처가 아버지를 보고 자란 만큼 애인에게 충실할 남성’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상대를 진심으로 아낄 줄 아는 진중하고 의리 있는 사람일 게 눈에 선했다. 내 곁이 함부로 내어지길 나보다도 아까워하는 이 여인의 분투는 그 어떤 질책보다도 나를 움직이곤 했다. 전보다 단단한 마음가짐으로 사랑에 임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이 다정한 여성의 따뜻한 관심과 무조건적인 환대 속에서 내가 자랐다. 하트 모양 쪽지가 붙여진 사과며 밀크티며 초콜릿으로 낯선 도시와 사람들을 견뎠고, 꾹꾹 눌러 적어준 편지를 머리맡에 두고 숱한 밤들을 보냈다. 내 청춘을 키워낸 나의 팔월의 빛. 언니를 생각하면 늘 눈부신 여름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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