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Mar 05. 2023

엄마의 포니테일

오감에세이: 촉각

뜬금없는 질문으로 종종 날 당황시키곤 하는 친구가 한 번은 TV를 보다 말고 툭 물어왔다.

"어렸을 때 언제가 제일 행복했어?"

낄낄거리며 유퀴즈를 보던 중이라 갑작스럽기도 했고, 빠르게 머릿속을 뒤져봐도 가난하고 싸우고 울고불고한 기억뿐이라 정말로 좋았던 게 잘 떠오르질 않았다. "어.. 없는데?.. 너는?" 근데 이런 기억쯤 누구한테나 하나씩은 있나. 나도 없진 않을 텐데. 그냥 잘 모르겠다고 할걸. 어색한 기분이 들려는 찰나 기막힌 타이밍으로 걔가 자기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빠가 요리하는 주말의 식탁. 에게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이란 그거였다. 엄마가 늦잠을 자는 사이 아빠와 함께 냉장고를 털어 잔치국수 같은 걸 만들어먹곤 했던. 어린 그 애에게 걔네 아빠는 요리하는 법이라던지 헤엄치는 법,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해 가르쳐줬다고 한다. 걔는 미역국을 끓이고 꼼꼼하게 씻어 꼭지를 자른 딸기를 내주면서 그런 얘기를 했다. 하얀 부분이 잘려나가 더 달게 느껴지는 딸기였다. 어쩌면 이런 모습도 아빠로부터 왔겠구나. 들기름과 딸기향으로 가득한 방에서 나는 지금보다 훨씬 개구지게 웃었을 어린 그 애를 상상했다. 걔의 유년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애틋했고, 다시 어색해졌다.


살아온 환경이 다른 만큼 부모와 만들어온 추억의 가짓수도 다르겠지만, 내가 대답을 못하고 걔는 대답을 한 결정적인 차이는 환경이나 부모보단 우리 자신에게 있는 듯했다. 그 애는 이런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훌쩍 커진 로 혼자 밥을 차려먹고 많은 걸 스스로 헤쳐갈 때조차 자기를 만들어온 게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하려는 사람. 그건 자신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지만 아빠에 대한 기억이기도 했다. 반대로 나는 엄마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잊은 채 살고 있었다. 젊었던 엄마가 서툰 방식으로 내게 준 것에 대해서, 주려고 했던 것에 대해서. 내가 기억하는 건 원했으나 가지지 못했던 것들뿐이다.


제대로 답하지 못한 질문이 내내 마음에 걸리는 때가 있는데 저 질문이 그랬다. 왠지 모르겠지만 저런 식으로 대답해선 안 됐다는 생각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그땐 내가 얼버무렸는데 사실 내 대답은 이거였어, 굳이 고쳐 말해줄 게 아니어도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느낀 이유가 당연히 있었다.


그 장면은 시원찮은 드라이기를 탓하며 머리를 말리다 문득 떠올랐다. 엄마가 젖은 내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고는 꼬리빗으로 잘 빗어 높게 묶어주는 장면. 가게에 늦게 나가는 날이면 엄마는 꼭 그렇게 내 머리를 만져주곤 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흘러내리지 않는 포니테일이라 난 좀 까탈스러운 여자애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애는 늘 엄마의 손재주를 신기해했다. 내가 머리를 말릴 땐 드라이기를 쥐고 아무리 오래 흔들어도 한참 걸리는데 엄마가 해주면 달랐으니까. 그만큼 깨끗하게 머릴 묶는 법도 난 알지 못했다. 이렇게나 능숙한 존재가 내 곁에 있다. 화장품 냄새가 풍기는 엄마의 손에 머리를 맡기고 있으면 그런 생각에 안심이 됐다. 그런 날엔 평소보다 단정한 차림으로 마음껏 씩씩하게 걷곤 했다.


그때 엄마 새벽에 일 끝나서 쪽잠 자고 나가는 거였는데 어떻게 피곤한 기색도 없이 내 머리를 해줬을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던 때였는데, 조만간 낮에 식당일하고 밤에 대리운전 뛰게 될 거였는데, 엄마도 많은 게 무서웠을 텐데, 그 손이 어떻게 그렇게 따뜻했을까. 엄마에 대해서는 언제나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데 어째서 이런 건 죄다 잊어버리고 있었을까.


이제와 엄마의 표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건 내가 그때의 엄마만큼 나이가 들어서일까. 엄마, 엄마도 그때 어렸잖아, 날 어떻게 키웠어?, 이런 게 묻고 싶어 지는 것도. 엄마와 나의 시간은 늘 평행선을 달려서 지금도 엄마에겐 내가 결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이 시차가 나를 더 슬프게 만들지 않기 위해 해야 하는 건 최선을 다해 기억하는 일뿐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했고 앞으로도 나를 만들어갈 것들에 대해서. 결국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온 것들에 대해서. 그러니까 천천히 머리를 묶어주던 손길 같은 것. 그때보다 훨씬 늙고 작아진 엄마의 손이 건네는, 여전히 서툰 마음 같은 것.



작가의 이전글 샤브샤브의 맛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