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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06. 2021

휴일의 규칙

서른 살에 접어들며 휴일을 보내는 느슨한 규칙이 생겼다. 내 생활의 리듬이 어떤지 뭘 해야 가장 완벽한 휴식을 취했다고 느끼는지를 탐구해 얻은 결론. 바로 쉬는 날 하루는 특별한 약속도 정해진 일과도 없이 보내자는 것이다.


그런 날에는 먼 데 돌아다니지 않고 집과 동네에서 시간을 보낸다. 느지막이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고 매일같이 마음먹었으나 해내지 못한 운동도 (내키면) 한다. 햇볕을 쬐며 낮잠을 자는 일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특히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동네 카페에서다. 편한 옷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가서는 몇 시간씩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다 온다.


귀중한 주말을 보내는 공간이니 아무 곳에나 갈 수는 없다. 평수가 넉넉하고 테이블 간격이 지나치게 좁지 않으며 흐르는 음악이 취향에 맞아야 한다. 커피까지 맛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최근 자주 가는 카페는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 걸리는, 붉은 벽돌집이 즐비한 골목에 터를 잡은 곳이다. 빛바랜 이층짜리 구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마당의 겹벚꽃나무가 봄마다 장관을 이룬다. 올봄에도 지난해처럼 카페 마당에 겹벚꽃이 풍성했다. 봄바람에 진한 분홍빛이 너울거리는 광경이 무척 근사했다. 너무 근사한 나머지 멀리서 찾아온 객들로 인산인해인 게 문제였다. 한껏 차려입은 사람들이 이룬 줄에 기가 질려 매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봄이 가고 난 뒤에야 이 공간은 이전의 속도를 되찾았다. 벚꽃 못지않게 커피 맛도 유명한 곳이라 여전히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편하게 책을 읽다가 갈 자리 정도는 있었다. 온화한 생활 소음으로만 복닥거리는 골목의 주파수도 더는 망가지지 않았다. 기쁘고 반가운 마음으로 마당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책을 폈다. 6월 말이었다. 우거진 잎이 드리운 그늘 아래서 바람을 쐬고 있자니 여름이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카페 안에서는 가사 없는 재즈의 선율과 주말을 맞은 사람들의 한가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담벼락 바깥에선 옆집 대문에 걸터앉아 부채질을 하던 할머니가 택배 아저씨와 도란도란 대화하는 소리도 새어 들어왔다. 이제 더워질 일만 남았다고 푸념하던 할머니는 아저씨에게 골목을 운전하기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아저씨는 30년 동안 이 동네에서 택배일을 해 눈을 감고도 다닌다고 했다. 지친 기색 없이 쾌활한 목소리가 듣기에 좋았다. 할머니와 아저씨의 수다는 멀리서 웅웅대는 소리가 아닌 구체적인 대화로 귀에 꽂혔지만 어쩐지 방해가 된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주말에 자주 찾는 동네 카페. 마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으면 담벼락 너머에서 살림과 생활의 다정한 소음들이 들려온다.


동네 카페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애착은 1인 가구로 살며 시작됐다. 지방에서 상경한 후 줄곧 내가 지낸 곳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셰어하우스였다. 서울의 폭력적인 주거난 속에 몸 하나 뉘일 곳 있다는 게 감사했지만, 온전한 내 공간을 갖지 못한 씁쓸함은 어쩔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집은 잠만 자는 방이 됐다. 생활의 공간으로서 ‘동네’ 역시 추상적인 개념어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1인 가구로 독립하며 가장 기뻤던 건 '동네'가 생겼단 사실이었다. 밥을 해 먹고 장을 보고 산책을 하며 골목골목 정을 붙이는, 일상의 때가 묻어나는 바로 그 동네 말이다. 주택가 근처에 위치한 안락한 분위기의 카페는 동네가 집약된 공간과 같았다. 여기엔 사무적인 말투도 없고, 전시하듯 꾸며낸 옷차림도 없다. 맨얼굴과 무릎이 나온 바지와 가벼운 수다, 게으른 독서만이 아무렇게나 뒤섞여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이곳의 온도를 마주할 때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든다.


쉬는 날 동네 카페를 찾는 건 하나의 의식에 가깝다. 이 의식을 통해 나는 이토록 낯선 땅 서울에 불안정하게나마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편안한 옷과 흐트러진 자세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나의 영역이 생겼음에 안도한다.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야 말로 나를 나로서 있게 한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네에서 보고 싶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누추한 차림으로 목적지 없이 산책을 하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실없는 농담을 하고 싶다. 그때의 내 모습이 가장 꾸밈없고 자유로운 진실한 나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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