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라는 멋진 핑계로

by 한시

“언니 저 유빈이예요. 잘 지내지요? 보고 싶어요.

생일 핑계로 연락 한 번 해봤어요. 생일 너무 축하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며칠 전에는 생일을 맞아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4년 전 펍에서 알바를 하며 만난 동생 유빈이로부터였다. 그 펍에서 2년 가까이 고참 알바생으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안 맞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매주 금요일 밤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만큼 가깝게 지낸 동료들도 있었다. 유빈이는 후자에 속했다. 알바를 그만두고 서서히 연락이 끊긴 후에도 문득문득 그 애가 코를 찡긋거리며 웃는 얼굴이나 두 손을 모으고 말하던 버릇 같은 게 떠오르곤 했다.


유빈이는 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모든 게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한 번은 유빈이가 카운터 뒤에서 간식을 먹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손님에 놀라, 들고 있던 빵을 한입에 넣은 적이 있다. 주문을 받아야 하니 손에 든 빵을 치워야 하는데 하필 입 속에다 치워버린 거였다. 그때 유빈이는 두 볼이 햄스터처럼 부풀어 손님을 받지도 못하고 숨넘어가게 웃는 나를 향해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목격한 귀여움 중 손에 꼽는 귀여움이었다. 항상 “언니”, “언니” 하고 나를 부르며 살갑게 굴던 유빈이.


그런 유빈이가 4년 만에 연락을 해왔다. 서로의 소식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고 그래서 함께 나눈 추억이 희미해졌을 법도 한데. 그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져 갑자기 연락하기 망설여졌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내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유빈이에게 선뜻 연락하지 못하고 애틋함만 간직하는 사이, 지혜로운 유빈이는 세상의 모든 ‘간만의 연락’이 맥락을 갖출 수 있는 근사한 핑계를 찾았다. 바로 생일이다.


만나서 들어보니 유빈이는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나에게 연락을 하는 거였다고 했다. 내가 바빠 보여 쉽게 연락하지 못했는데 생일이라면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가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 생일은 이런 날이다. 잊고 지내던 누군가를 떠올리고, 용기 내 연락하기 좋은 날.


1년 전 생일에도 반가운 연락이 왔었다. 대학생 때 알고 지낸 선배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좋은 인상으로 남은 사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편견 없이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사람이어서다. 그래서인지 이 선배와는 가끔 만나더라도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지난해 선배도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연락한다며 인사를 건네 왔다. 선배가 직장 문제로 지방에 내려가며 연락이 끊긴 지 5년 만이었다. 그때는 선배가 여전히 지방에 있어 카톡으로만 안부를 나눴다. 올해 다시 생일을 축하해준 그는 어느새 서울에 올라와있었다. 근황을 전해 듣고는 바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생일 덕분에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생일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끊어진 연락을 이어나갈 멋진 핑계가 된다는 것.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네가 보고 싶었어!”라며 먼저 반가운 연락을 해오다니 이만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다음에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보고 싶은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속에 보고 싶었다고, 항상 안부가 궁금했다는 쑥스러운 인사말을 숨겨 보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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