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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 Sep 19. 2021

생일이라는 멋진 핑계로

“언니 저 유빈이예요. 잘 지내지요? 보고 싶어요.

생일 핑계로 연락 한 번 해봤어요. 생일 너무 축하해요! 항상 건강하세요.”


며칠 전에는 생일을 맞아 반가운 연락을 받았다. 4  펍에서 알바를 하며 만난 동생 유빈이로부터였다.  펍에서 2 가까이 고참 알바생으로 일하는 동안 수많은 동료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동료가 있는가 하면, 매주 금요일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만큼 가깝게 지낸 동료들도 있었다. 유빈이는 후자에 속했다. 알바를 그만두고 서서히 연락이 끊긴 후에도 문득문득  애가 코를 찡긋거리며 웃는 얼굴이나  손을 모으고 말하던 버릇 같은  떠오르곤 했다.


유빈이는 하는 행동이나 말이나 모든 게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한 번은 유빈이가 카운터 뒤에서 간식을 먹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손님에 놀라, 들고 있던 빵을 한입에 넣은 적이 있다. 주문을 받아야 하니 손에 든 빵을 치워야 하는데 하필 입 속에다 치워버린 거였다. 그때 유빈이는 두 볼이 햄스터처럼 부풀어 손님을 받지도 못하고 숨넘어가게 웃는 나를 향해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목격한 귀여움 중 손에 꼽는 귀여움이었다. 항상 “언니”, “언니” 하고 나를 부르며 살갑게 굴던 유빈이.


그런 유빈이가 4년 만에 연락을 해왔다. 서로의 소식으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고 그래서 함께 나눈 추억이 희미해졌을 법도 한데. 그 공백이 어색하게 느껴져 갑자기 연락하기 망설여졌을 법도 한데 말이다. 내가 바로 이런 이유에서 유빈이에게 선뜻 연락하지 못하고 애틋함만 간직하는 사이, 지혜로운 유빈이는 세상의 모든 ‘간만의 연락’이 맥락을 갖출 수 있는 근사한 핑계를 찾았다. 바로 생일이다.


만나서 들어보니 유빈이는 올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나에게 연락을 하는 거였다고 했다. 내가 바빠 보여 쉽게 연락하지 못했는데 생일이라면 연락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가을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래, 생일은 이런 날이다. 잊고 지내던 누군가를 떠올리고, 용기 내 연락하기 좋은 날.


1년 전 생일에도 반가운 연락이 왔었다. 대학생 때 알고 지낸 선배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좋은 인상으로 남은 사람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편견 없이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사람이어서다. 그래서인지 이 선배와는 가끔 만나더라도 꽤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지난해 선배도 생일을 핑계로 오랜만에 연락한다며 인사를 건네 왔다. 선배가 직장 문제로 지방에 내려가며 연락이 끊긴 지 5년 만이었다. 그때는 선배가 여전히 지방에 있어 카톡으로만 안부를 나눴다. 올해 다시 생일을 축하해준 그는 어느새 서울에 올라와있었다. 근황을 전해 듣고는 바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생일 덕분에 또 다른 반가운 얼굴을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생일의 가장 좋은 점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끊어진 연락을 이어나갈 멋진 핑계가 된다는 것.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네가 보고 싶었어!”라며 먼저 반가운 연락을 해오다니 이만한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 다음에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보고 싶은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면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속에 보고 싶었다고, 항상 안부가 궁금했다는 쑥스러운 인사말을 숨겨 보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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