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시 Mar 27. 2023

일요일 밤 11시, 글 쓰는 여자들

일요일 밤 11시면 일주일 동안 조용하던 한 카톡방이 시끄러워진다. 월요일 출근 직후 최선을 다해 딴짓거리를 찾는 직장인처럼 이 시간마다 카톡에 모이는 세 여자가 있다.


여자1: 흑흑

여자2: 뭐 쓰지.. 목요일에는 분명 영감이 넘쳤는데

여자3: 소재가 없네

여자1: 난 지금 스티븐 스필버그 인터뷰 보는 중

여자2: 자소서 내기 직전까지 유튜브 보던 취준생 시절 나 같네

여자3: 진짜 큰일이다


세 여자는 글을 쓴다. 써야 하는데 혼자선 죽어도 안 되겠어서 같이 쓴다. 매주 1편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로 약속했다. 마감은 일요일 밤 12시. 기한을 어기면 나머지 여자들에게 5만 원씩을 즉시 송금해야 한다. 돌아가면서 1분씩 늦었지만 모두 공범이기에 돌아가면서 모른척한다. 최근엔 두 여자가 더 참여해 벌금이 10만 원에서 20만 원으로 올랐다.


2년 전 피의 각서까지 썼다.


이 모임을 2년째 하는 동안 많은 곡절이 있었다. 여자3은 주말마다 마라톤을 하거나 울릉도, 오키나와 같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느라 호텔에서 기차에서 마감을 했다. 여자1이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일이 바빠져 모임이 잠깐 중단됐다. 이런 두 사람이 낸 적 없는 벌금을 나 혼자만 내봤다. 11시 반쯤 글쓰기 시작했는데, 하필 몇 시간씩 써야 겨우 마감될 것 같은 주제를 골라서 아예 포기했다. 일도 많이 안 바빴고 약속도 없었는데... 마감이 있어야 뭔갈 하는 'P'형 인간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루기 대장은 바로 나였다. 새로 온 두 여자는 주중이나 늦어도 토요일에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라 나의 지위 앞으로도 견고할 것이다.


2년 동안 한결같이 마감시간에 쩔쩔매고 있다는 게 새삼 놀랍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겠는가. 이 여자들과의 우정이 진득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우리가 이토록 일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최근 이런 대화를 나눴다. 글쓰기가 좋은 이유는 이게 한가한 일이라서라고. 밥 벌어먹고 살다가 쉽게 잊곤 하는 것들에 대해 집요하게 고민하는 일이라서라고. 그러니까 찰나의 감정이나 뚜껑이 닫힌 유년시절의 기억, 지키고 싶었던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학생이거나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서로를 만났다. 여자1도 여자3도 이런 걸 중요하게 여기기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전혀 없다. 이렇게 좋은 글쓰기를 이렇게 한결같은 사람들과 하니 더할 나위 없다. 단지 내가 조금만 더 부지런해지면 될 일이다.


 다짐을 2년째 하고 있다. 오늘도 마감 직전까지 카톡 알람이 멈추지 않는다.


여자2: 소재 고갈 끝에 우리 브런치 모임으로 브런치 쓰는 중

여자1: 벌써 좋아


여자1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가 올리는 글을 좋아해 준다.


여자3: 아니 미친.. 나도임


여자3과는 오늘의 글감이 겹쳤다. 지난주에는 여자1과 여자3같은 주제로 글을 썼다. 여자3은 이를 '뇌트워크'라 불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의 첫 번째 독자이니까. 뇌든 마음이든 조금은 연결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


세 여자가 마감을 자축하다 깨닫는다. 어쩌면..


작가의 이전글 밴드 좋아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