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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Apr 27. 2020

코로나 19를 이기는 면역 밥상이란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영국의 시인 T.S.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읊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유럽의 4월이 너무 아름다워 오히려 잔인하다고. 지난 두세 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이하 코로나19)으로 우리는 봄을 빼앗겼다.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 진달래, 목련 등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꽃들은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보니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 시인의 마음이 이해된다. 

지금 한창 제철인 나물들은 우리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쑥쑥 키워줄 수 있다. 봄을 대표하는 두릅나물

코로나19를 이기는 4월의 밥상은 무엇일까? 코로나19는 전염병으로 개인의 면역상태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당연히 면역 밥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 영양학을 공부하고 또 가르치고 있지만, 하나의 면역 음식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면역 음식이 존재한다고 하기에는 우리 인체가 각자 다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몸에서 다 함께 소화, 흡수되고 대사과정을 거친다. 개별 음식의 효과를 이야기하기보다는 이를 식사(밥상)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코로나19를 이기는 면역 음식을 찾기보다 우리 몸에 좋고 건강한 식사라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게 더 맞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인 음식 작가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책은 고기 아니면 채소, 탄수화물 아니면 지방, 슈퍼푸드 아니면 정크푸드로 대변되는 현대인의 식사 문제를 다룬다. 그녀는 현재 우리 음식에 공정이 간단하고 값싼 초가공식품(시리얼, 인스턴트 라면, 시리얼 바, 탄산음료)이 범람하고 있다고 말한다. 몸에 좋다고 홍보하는, 우리가 한 번쯤은 빠져들고 현혹됐던 식품들인 ‘슈퍼푸드’가 문제라는 것이다. 퀴노아, 코코넛워터, 요구르트,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페스토, 석류 주스, 프로틴 바, 글루텐 프리 등이 바로 그 식품들이다. 이런 단일 상품화된 식품보다는 좀 더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식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산업화의 전철을 밟지 않은 한국인 밥상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대목은 전 세계 식품산업화로 인한 식단 변화의 영향을 비껴간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한국이 전통음식을 지키는 나라로, 급속한 식품산업화에도 나름의 음식을 먹고 건강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식의 건강성을 인정하고 이러한 전통음식에서 멀어지지 말기를 당부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를 쓴 마이클 폴란도 김치에 주목하고 한국을 방문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가기도 했다. 이렇게 세계적인 음식 칼럼니스트들은 최근 건강성과 자연성에 주목해 한식을 홍보하고 있다. 


반면 역설적으로 우리의 최근 식생활은 많이 변했고, 전통 식사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직도 한식이 우리 밥상의 근간을 이루니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한식은 건강한 자연밥상이고 식사 구성이 상당히 우수하다. 따라서 인체 면역력에서도 우수할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면역과 관련하여 대규모 역학조사를 통해 식사 패턴과 질병의 관계를 규명하는 식사염증지수 연구가 활발하다. 결과에 따르면 채소는 염증지수를 낮추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국립암센터연구에서 국내 대장암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비교 실험을 통해 김, 미역, 다시마 등 해조류 총 섭취량이 많은 그룹의 암 발생위험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35%가량 낮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채소와 해조류가 염증지수를 낮추고 암발생 위험을 떨어뜨리는 데에 대단한 효과가 있음을 나타내는 유의미한 결과다.


한식은 밥을 주식으로 하고 국과 반찬 같은 다양한 부식으로 구성되는 상차림이다. 서구 영양학에서 주장하는 건강 식단의 핵심은 바로 ‘균형성’과 ‘다양성’이다. 한식은 한 끼 식단의 채식과 육식의 비율이 대략 8 : 2가 된다. 채식 기반 균형성과 매끼 다양한 반찬을 활용하는 다양성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자연 건강식이다. 한식은 가공식품이 대세가 된 서양 식사보다 비만과 만성질환 예방에 효과적인 식사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면역력을 높인다.     


면역밥상은 바로 나물밥상

이처럼 한식의 건강성은 채소에서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총 4,000여종의 야생식물이 있고, 그 가운데서 800여 종을 식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몇 년 전 서울대 장수노화연구소에서는 장수식품을 찾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총 71종의 한국산 상용 식물의 효과를 분석하는 실험이 진행됐다. 

그 결과, 놀랍게도 돌연변이 억제 효과 우수식품은 메밀, 미나리, 쑥갓, 파래, 표고, 풋고추, 돌미나리, 영지 쑥, 파슬리, 율무, 기장, 매실, 살구 보리똥씨, 솔잎, 생강, 톳인 것으로 나타났다. 암세포 독성효과가 우수한 식품은 무잎, 부추, 쑥갓. 생강, 정향, 계피, 후추, 메밀, 수수, 솔잎, 깻잎 등이었다. 유방종양과 같은 암 예방효과 우수식품은 메밀, 생강, 솔잎이었다. 항산화 효과를 가지는 식품은 갓, 고들빼기, 근대, 부추, 우엉, 깻잎, 수수, 율무, 냉이, 돌나물, 무잎, 미나리, 브로콜리, 취나물, 마, 영지, 딸기, 자몽, 바나나, 방울토마토, 매실, 망고, 자몽피, 오렌지피, 살구, 보리똥씨, 배피, 생강, 메밀, 돌미나리. 쑥, 쑥갓이었다. 면역기능 증진에 효과적인 식품으로는 돌미나리, 고들빼기, 톳, 메밀, 생강, 수수, 깻잎, 잣, 율무 등이었다. 


나물이 건강에 좋은 이유는 채소 속의 식물 영양소 ‘파이토뉴트리언트(phytonutrient)’ 때문이다. 최근 인간 질병과 식품 간의 높은 관련성이 밝혀지면서 영양만을 강조했던 과거와 달리 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기능성 개념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최근 식품의 개념은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의 양적인 정보뿐만 아니라 플라보노이드(Flavonoid)나 라이코펜(Lycopene), 카로티노이드(Carotenoid), 안토시아닌(Anthocyanin) 등과 같은 파이토뉴트리언트의 생리 활성을 중시한다. 식품에서 생리활성을 가지는 기능성 물질은 생체 방어계, 호르몬계, 신경계, 순환계 등의 인체 기능을 조절해 줌으로써 질병으로부터 예방과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두릅과 쑥으로 챙기는 4월 밥상

이 잔인한 달, 4월의 면역 밥상은 그러니 당연히 나물 밥상이 아니겠는가? 이는 누구보다도 우리 조상들이 잘 알았고 또 실천에 옮겼다. 조선 시대 정철(1536-1593)은 그의 시조에서 “ 씀바귀 데운 국물이 고기보다 맛있다”고 했다. 고기보다 채소가 더 맛있다고 한 것이다. 또 채소를 사랑한 실학자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도 < 농가월령가>(1816)에서 음력 2월령의 가사에 다음과 같이 읊었다.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 먹세
고들빼기, 씀바귀요 소로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비위를 깨치나니.


또 아래 시조에서 보듯이 우리의 선비들은 이른 봄이면 산에 돋은 나물을 따다가 쑥국 끓여 마시는 일을 가장 운치 있는 일로 여겼다. 과거 먹거리가 부족했던 우리 민족의 생명줄을 이어준 나물이지만, 풍류를 즐기는 일로도 승화되었다    

                     

槿薺靑靑苜蓿香  푸른 씀바귀와 냉이 향기로운 목숙
早春新菜正堪嘗  이른 봄 새로 돋은 나물 매우 맛있네
山家韻事隨時物  산가의 운치 있는 일은 시절사물 따라서
會酌陽坡煮艾湯  양지 바른 언덕에서 쑥국 끓여 술 마시는 것
- 유만공 『세시풍요歲時風謠』(한식寒食)


코로나로 뒤숭숭하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봄이지만 지금 한창 제철인 나물들을 챙겨 먹고 우리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보기를 권한다. 특히 제철 나물인 두릅과 쑥을 넣어 만드는 쑥국 한 그릇은 꼭 챙겨 먹어서 우리 몸을 보호하자.    

  

두 나물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두릅은 비교적 단백질이 많으며, 섬유질과 칼슘, 철분 등과 비타민B1, 비타민B2, 비타민 C 등이 풍부하다. 특히 쌉쌀한 맛을 내는 사포닌 성분이 혈액순환을 돕고, 혈당을 내리고 혈중지질을 낮추어 준다. 두릅은 어떻게 조리해 먹는 것이 좋을까? 껍질부터 순, 잎, 뿌리까지 버릴 것이 하나 없는 두릅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좋고, 두릅산적, 두릅잡채, 두릅김치 등 어떤 요리를 만들어도 향긋하게 잘 어울린다. 두릅은 어리고 연한 것을 골라 껍질째 연한 소금물에 삶아 건져 찬물에 헹구어 요리에 응용하면 된다.

향긋한 쑥내음을 맡을 수 있는 쑥국.

쑥은 파이토뉴트리언트가 매우 풍부하다. 쑥의 쓴맛은 그만큼 식물 영양소가 많다는 뜻이다. 그 쓴맛 때문인지 지구상에 쑥을 먹는 민족은 거의 없다. 서양에서는 망각의 식물이고, 러시아에는 쑥을 넣은 보드카가 있다. 우리 민족만 거의 유일하게 쑥을 제대로 먹고 활용하는 셈이다.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 에서도 쑥을 먹고 인간이 된 곰 이야기가 나온다. 채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선사시대부터 알아본, 그야말로 대단한 나물 민족이다. 지금도 코로나 19를 가장 효율적으로 극복한 민족으로 전 세계에 회자 되고 있지 않은가?      

이 봄, 쑥국, 쑥개떡, 도다리쑥국, 쑥 부침개, 그리고 두릅을 활용한 두릅적, 두릅나물 등의 새순 나물들을 잘 챙겨 먹어 봄을 몸으로 느끼고, 면역력을 키우고, 코로나 19도 극복해 보자.


글/사진: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정혜경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식생활문화학회장, 대한가정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식진흥원 이사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우리 음식 이야기>, <밥의 인문학>, <채소의 인문학>, <조선왕실의 밥상> 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매월 말에는 다양한 한식 관련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글이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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