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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Apr 28. 2020

화전으로 즐긴 놀이문화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음력 삼월 삼짇날 여성들은 아름다운 꽃풍경을 노래하면서 진달래 꽃잎으로 화전을 부쳐먹었다.

우리 민족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먹는 것을 중시한 민족이지만 그냥 먹지만은 않았다. 계절마다 챙겨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었고 이를 챙겨 먹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생각한 음식 민족이다. 지금도 봄이 되면 먹거리를 싸들고 산과 들을 누비지 않는가? 생신이나 혼례 그리고 제사에서도 높이 쌓아 올린 고배상이 기본이다. 이제 4월, 봄이 본격적으로 열리는, 계절이 바뀌는 시기다. 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절에 우리 조상들은 무엇을 어떻게 먹고 즐겼을까? 아름다운 이 계절, 음식 여행을 떠나 보자. 


우리 민족은 계절에 따라 격조있게 놀았다. 이를 세시풍속 혹은 절기의례라고 부른다. 절기와 생활이 결부되어 여러 명절이 정해지고 그날은 맛있는 음식으로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가족과 이웃이 서로 나누어 먹었다. 이를 ‘절식’이라 하며, 계절 식품으로 요리한 음식을 ‘시절 음식’이라 불렀다.


세시풍속 중 상당수가 음식을 장만해서 먹고 즐긴 행사였으며, 현대에 전해오는 대다수 행사 역시 음식과 관련되어 있다. 세시 음식은 제철 식품 재료를 최대한 이용하여 만들어 ‘식보(食補)’, 즉 몸을 보하는 약의 의미가 강했는데 복중의 보양탕이나 용봉탕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는 계절 변화에 따르는 생리적 변화를 조절하여 건강을 지속시키는 방편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냥 먹고 놀지만은 않아서, 이를 충실히 기록에 남겼다. 남성들이 기록한 조선 시대 풍속지인 <경도잡지>, <열양세시기>, <동국세시기> 등이 그것이다. 현재의 남성 미식가들 못지않게 조선 시대 남성들도 음식 관심이 지대했다. 의례를 중요시하는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의례를 위한 음식의 상징적 사용은 사대부 남성들의 지식과 권력이 행사되는 중요한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시절의례의 핵심은 음식이다

시절음식은 농경문화권의 산물이다. 때를 맞추어 씨를 뿌리고, 재배하고, 추수 때 농작물을 거두는 농경문화권 행사에서 파생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음력 12월 말이나 정월 초에 입춘이 오는 데, 이날은 봄이 시작되는 좋은 날의 의미가 있으므로 눈 밑에서 갓 돋아난 푸성귀로 ‘오신반(五辛盤)’을 만들어 먹음으로써 긴 겨울동안 부족했던 비타민을 보충하였다. 움파, 멧갓, 승검초, 순무, 생강 등을 무친 매콤한 나물로서 식욕을 돋우는 효과가 있다. 불교나 도교에서는 금하는 식물이었지만 일반 민속에서는 화합과 융합을 상징하는 온 우주의 기운을 함유한 식품으로 여겼다. 우리 음식의 중심 철학인 몸을 보하고 함께 어우러짐을 중시하는 상징적인 음식인 셈이다.


세시풍속을 살펴보면 평상시에는 곤궁하게 식사했지만, 명절이 되면 그동안 못 먹었던  제철 채소와 과일, 떡, 한과 등의 별식을 즐긴 서민층의 식생활이 잘 드러난다. 이처럼 시절음식은 영양보충의 의미가 있다. 요컨대, 통과의례에서는 육류 등을 통한 단백질 보충의 성격이 강하고, 세시의례에서는 떡과 제철 과일, 채소류 섭취를 통한 탄수화물과 비타민 보충의 성격이 강하다. 세시 음식도 통과의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섬기는 신을 모시는 의례로서 음식을 차려서 대접하는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럼, 4월의 음식을 살펴보자. 봄이 시작되면 봄에 피는 꽃을 이용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 영양보충도 하고 놀이도 겸했다. 봄이 시작되는 음력 3월에는 특히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과 관련된 행사들이 많았다. 음력 3월 3일은 삼짇날로, 이날에는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근 떡을 빚어서 화전(花煎)을 만들었다. 또 진달래꽃을 녹두가루에 반죽하여 빚기도 한다. 녹두 녹말로는 국수도 만드는데, 녹두가루에 붉은색 물을 들여 꿀물에 띄운 수면(水麵)을 만들어 시절 음식으로 제상에 올리기도 하였다. 

연분홍꽃이 아름답게 장식되어 마시는 것조차 아까운 도화주. 우리 조상들은 봄이 되면 술 한잔, 음식 한접에 풍류를 즐겼다.

이 밖에도 화면, 탕평채, 진달래 화채, 향애단 등을 만들어 먹었다. 술도 빠질 수 없는데 두견주, 송순주, 과하주 등을 빚어 마셨다.   

   

음력 삼월 삼짇날화전놀이 문화

화전놀이는 옛 여성들에게 봄소풍과 같았다. 음력 3월 3일이 되면 여성들은 솥뚜껑인 번철과 함께 찹쌀가루, 소금 등을 준비하여 경치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한 사람이 먼저 봄이 와서 아름답게 꽃핀 풍경을 노래하면 다른 사람들은 이에 답하는 노래를 연이어 부른다. 이렇게 한수, 한수 노래를 부르다 보면 끝내 시집와서 고생한 사연까지 나와 각자의 회포를 풀게 된다. 화전가와 답가가 오가는 와중에 미리 준비한 번철과 찹쌀 반죽으로 전을 지지고 사방에 널부러진 진달래 꽃잎을 따서 장식해 화전을 부쳐 먹고 논다.


전라도 지방의 민속과 전통을 고증을 거쳐 꼼꼼하게 기록한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에는 여러 쪽을 할애하여 당시 행해진 전라도의 유명한 화전놀이를 묘사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화전놀이에서 요즘의 백일장 같은 화전가 짓기 대회를 열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이 여성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어느 부인의 화전가 전문을 수록한다. 이를 통해 화전 만드는 법과 화전이 상징하는 전통 여성의 애환까지도 알아볼 수 있다. ‘화전가’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이 내 말쌈 들어보소
부유 같은 천지간에 초로 같은 인생이라
세상사를 생각하니 우습고도 도리하다
저 건너 저 산 우에 높고 낮은 저 무덤은 천고영웅 몇몇이며
절대가인 그 누군고 우리들도 죽어지면 저러이 될 인생인데
노세노세 젊어 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
십일 붉은 꽃이 없고 달도 차면 기울어라
일장춘몽 우리 인생 아니 놀고 무엇하리
놀음 중에 좋은 것은 화전 밖에 또 있는가
어화 우리 벗님네야 화전놀이 가자스라
단오 명절 좋다 해도 꽃이 없어 아니 좋고
추석 명절 좋다 해도 단풍 들어 낙엽 지니 마음 슬어 아니 좋고
설 명절이 좋다 하나 낙목한천 잔설 빛이 스산엄동 역력하니
꽃도 피고 새도 울러 양춘가절 화개춘 삼월이라 삼짇날에
강남 갔던 제비들이 꽃 따라서 돌아온가
제비 날개 훈풍따라 작년 진 꽃 돌아온가
천지상봉 새 기운이 만화방창 흐드러진 산천초목
금수강산 비단 같은 골짜기에
우리들도 꽃이 되어 별유천지 하루 놀음
화전 말고 무엇 있소 화전놀이 하러 가세     

 

김준근의 단오추천(기산풍속화첩) 보러가기

글 외에도 세시풍속을 잘 보여주는 풍속화도 있다. 봄나들이의 풍경을 그린 기산 김준근의 <풍속도>이다. 이 풍속화에는 봄을 맞아 진달래 화전을 부쳐 먹고 봄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들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되어 있던 조선 사회에서 이날만큼은 여성들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게 하였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뚜렷한 사계절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에 따른 문화를 잊지 않고 즐겼다. 그야말로 글, 그림, 가무에 능했던 민족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각 계절마다 그 의미를 찾고 즐겼다. 특히 제철 음식을 먹고 즐기는 것만큼은 놓치지 않고 즐겼으니 과연 음식 민족, 놀이 민족답다. 21세기에 필요한 덕목인 창의성도 결국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즐기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글/사진: 정혜경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


정혜경 교수는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호서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한국식생활문화학회장, 대한가정학회장 등을 역임했고, 한식진흥원 이사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우리 음식 이야기>, <밥의 인문학>, <채소의 인문학>, <조선왕실의 밥상> 등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익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매월 말에는 다양한 한식 관련 전문가들의 자유로운 글이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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