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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식문화진흥 Oct 23. 2020

막걸리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

2천 년 전의 이야기다. 얼개는 간단하다. 


유화부인(柳花夫人)은 강을 다스리는 하백(河伯)의 딸이다. 하백은 물의 신이다. 어느 화창한 봄날, 유화부인은 동생들과 더불어 강가 산책을 나선다. 마침 부근을 지나던, 하늘나라에서 온 해모수가 유화부인 일행을 만난다. 해모수는 한눈에 유화부인에게 반한다. 


그놈의 술이 원수다. 해모수는 ‘밥이나 먹자’는 말로 유화부인 일행을 꼬드긴다. 밥은 술자리로 이어진다. 술이 두 사람을 이어준 것이다. 아버지 하백의 반대를 무릅쓰고, 해모수와 유화부인은 부부가 된다. 이 사이에서 태어난 이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다. 이른바 고구려 건국 신화다. 


해모수와 유화부인을 이어준 것은 ‘술’이다. 고구려 건국 신화는 여러 버전이 있다. 하백은 사윗감 해모수가 못마땅했다. 술에 취하게 한 다음, 가죽 포대에 구겨 넣었다. 마찬가지로 술이다. 술이 원수다. 술이 문제다.

 

해모수와 유화부인 일행이 나눠 마신 술, 하백이 사윗감 해모수에게 권한 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증류주는 아직 발명되기 전이다. 해모수, 유화부인, 하백의 술은,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킨 발효주였을 것이다. 신화의 내용 중에는 유화부인이 아들 주몽에게 곡식의 씨앗을 전해주었다는 내용도 있다. 이미 곡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고구려나 부여에 대한 중국 측 기록에는, 늘 선장양(善藏釀), 능가무(能歌舞), 희가무(喜歌舞)라는 글귀가 나타난다. 선장양은, 술 빚고, 식재료 저장하는 일을 잘한다는 뜻이다. 냉장, 냉동고가 없던 시절이니, 식재료를 잘 저장한다는 것은, 곧 발효음식, 말린 음식을 잘 만진다는 뜻이다. 발효식품이나 말린 나물 등이 아니면 별도의 저장법은 없었다. ‘능가무, 희가무’는 춤추고, 노래 부르는 일에 능하고, 즐긴다는 뜻이다. 술 없는 노래와 춤은 없다. 역시 술 잘 마시고, 잘 논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을 보고, 술 잘 마시고, 노래 잘 부르고 춤추는 일을 즐기는 민족으로 여겼다. 한반도 술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세상의 모든 술은 두 종류다. 발효주와 증류주다. 


발효주는 자연발생적이다. 곡물이나 채소, 과일 등을 오랫동안 보관하면 자연의 효모가 곡물, 과일 등에 들러붙는다. 과일, 곡물 등의 당분은 효모와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발효작용이다. 이렇게 빚은 술을 발효주라 부른다. 발효주는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 자연 상태의 효모 작용을 인간이 발견한 것이다. 막걸리, 와인, 일본주, 중국의 소흥주와 황주 등이 모두 발효주다. 곡물, 과일 등과 효모가 결합하여 발효작용을 일으키면, 적절한 방법으로 걸러서 술을 만든다. 알코올 도수는 대략 18~19도 정도가 최대치다. 18도 정도의 술에 물을 200% 섞으면 알코올 도수는 6도 정도로 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다.  


증류(蒸溜)는 자연 상태로 일어나지 않는다. 먼저 발효주를 만든다. 발효주를 적절한 방법으로 증류하면 증류주다. 자연 현상이 아니다. 인간의 손으로, 인위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발효주의 시작이 어디인지는 정확지 않으나, 증류주는 아랍, 중동 지역에서 연금술사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다수설이다. 


해모수, 유화부인, 하백의 술은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발효주다. 아쉽게도 과일, 곡물, 채소 등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원 3~4세기 무렵의 한반도 술은 발효주였다. 증류주는 아주 긴 시간이 흐른 후, 한반도에 전래 된다. 해모수 등이 마셨던 술은 막걸리와 같은 발효주다. 


막걸리는 쌀을 주재료로 만든 술이다. 쌀이 아닌 밀가루를 이용한 막걸리가 한때 유행했다. 수수, 좁쌀, 감자, 옥수수 등을 재료로 사용하지만, 보조적인 재료다. 주재료는 역시 쌀이나 밀가루다.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를 별도로 ‘밀 막걸리’라 부르기도 한다. 


막걸리는 ‘요(醪)’라고 표기한다. ‘막걸리 요’다. 양조장과 친분이 있으면, ‘진땡이’라는 술을 얻어 마실 수 있다. 진땡이는 물을 타지 않은, 막걸리 원액을 일컫는 사투리다. 무회주(無灰酒)라고 부른다. 우리 시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에도 진땡이는 있었다. ‘순료(醇醪)’다. ‘순’은 진하다는 뜻이다. 물을 타지 않아서 진한 막걸리가 순료다. 


고려 말기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석탄 이존오(1341~1371년)의 시다. “동문선”_제21권_칠언절구, 제목은 “정랑(正郞) 정몽주가 시를 지어 주기에 차운하여 아룀”이다. 포은 정몽주와 이존오는 동시대 사람으로 친분이 두터웠다.      


눈 가득한 암자에서 공부한 지 삼 년이라
순료에 절고 취하는 줄 깨닫지 못했으니
이별한 뒤 세월은 번개처럼 달리는데
나를 지도해 줄 사람 없음을 슬퍼하노라


겸양이겠지만, 산속 암자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핑계로 순료, 진땡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성리학자의 귀여운 고백(?)이다. 석탄과 포은의 시대는 고려 말기다. 아마 더불어 공부하다가 포은이 먼저 벼슬길로 나섰을 것이다. 나라는 기울어져 가고, 민생은 엉망진창이었다.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자신들의 힘으로는 무너져 가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술로 울분을 푼다. 


소주는 증류주다. 귀한 술이다. 웬만한 벼슬아치, 부호가 아니면 마시기 힘들었다. 역시 막걸리다. 무너져 내리는 고려 왕조를 보면서 석탄은 진땡이 막걸리로 울분을 풀었을 것이다. 


해모수, 유화부인의 막걸리는 사랑의 술이다. 사랑의 술은 주몽과 고구려 건국으로 이어진다. 석탄의 술은 울분과 슬픔의 술이다. 석탄이 죽고 난 후, 30년이 되지 않아 고려는 멸망한다. 


진땡이, 순료는 다른 이름으로 ‘전국술’이라고도 부른다, 순료의 뿌리는 깊다. 


중국 삼국 시대 오(吳)나라 정보(程普, ?—210년)는 적벽대전의 영웅이다. 대도독 주유(周瑜)를 도와 부도독으로 참전했다. 공도 세웠다. 문제는 대도독 주유의 나이가 정보의 아들뻘이었다는 점. 정보는 오나라 4대 천왕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꿀릴 것 없는 이다. 정보는 주유와의 나이 차를 넘어선다. 아들뻘인 주유를 상사로 모신다. 오히려, 주유를 극찬한다. “주공근과 사귀다 보면, 마치 순료를 마신 것처럼 나도 모르게 절로 훈훈하게 취해 온다.[與周公瑾交 若飮醇醪 不覺自醉, 여주공근교 약음순료 불각자취]”라는 글을 남겼다(“자치통감”_권66 한기). 주공근은 주유다. 어린 주유의 인품을 높이 칭찬한 것이다. 순료를 마시고 나도 모르게 취한다는 문구, ‘음순자취(飮醇自醉)’는 정보의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막걸리, 순료 이야기는 뿌리가 깊다. 

(좌) 막걸리 괴는 모습. (우) 막걸리 용수.

막걸리는 ‘막 걸러서 먹는 술’이다. 우리는, 바로 걸러서 먹는 일은 평범하게 여긴다. 그렇지는 않다. 외국에서는 발효한 술을 바로 걸러서 그 자리에서 마시는 일이 드물다. 언젠가 “막걸리는 바로 걸러서 마시는 술”이라고 했더니 누군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막걸리는 바로 걸러서 그 자리에서 마셔도 되고, 얼마간 발효, 숙성 과정을 거쳐도 된다. 막 걸러서 그 자리에서 마신다고 해서 막걸리의 ‘품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로 걸러서 마시든, 얼마간의 발효, 숙성 시간을 가지든 모두 막걸리다. 


막걸리는 품이 넓다.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모두 막걸리다. 우리 음식, 우리 술의 특장점 중의 하나가 굳이 경계를 세우고, 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석봉 한호(1543~1605년)는 조선의 명필 한석봉이다. 석봉의 시조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아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산골이다. 짚방석 대신 낙엽에 앉는다. 솔불도 켜지 않는다. 달이 밝다. 박주산채는 산나물 안주의 ‘엷은 술’이다. 엷은 술은 물을 많이 섞어 알코올 농도가 옅은 술이다. 산골에서 낙엽, 달빛, 산나물과 더불어 마시는 술이 귀한 소주일 리가 없다. 막걸리다. 막걸리 중에서도 진땡이 순료일 리가 없다. 엷은 술, 물을 많이 섞은 하급 술이다. 박주산채도 좋다. 그저 “없어요”라고 하지 말고, 그것이라도 충분히 좋으니 내오라는 뜻이다.


막걸리를 이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산료는 산촌에서 빚은 막걸리 혹은 산에서 마시는 막걸리다. 


갈암 이현일(1627~1704년)은 조선 중기 영남학파의 거두이자 대유(大儒)다. 어머니가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이다. 퇴계의 학통을 이었다. “갈암집”에 실린 시다. 제목은 “봄날 안국화(安國華) 명하(命夏) 와 시냇가에 노닐며”이다. 안명하는 젊은 후배다.       


한낮이라 들판엔 안개와 이슬 걷혀
벗들과 천천히 거닐며 한가히 노닌다
산촌 막걸리 기울이매 호기가 일어나
이내 생애 이미 백발인 줄도 몰라라


시 중에 산료가 있다. 산촌에서 빚은 것인지, 산촌에서 마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산과 연관이 있으니 산 막걸리, 산료라고 했을 것이다. 


시골의 소박한 막걸리는 촌료(村醪)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촌 막걸리다. 거칠고 투박하지만, 막걸리는 막걸리다. 

막걸리를 빚는 누룩. 일본식 입국 방식은 정제한 효모를 사용한다. 일정한 술을 만들 수 있지만 닫힌 방식이다.

이른바 일본주는 맑은 술이다. 막걸리 형식으로 빚어 잘 걸러낸, 맑은 술이다. 막걸리의 또 다른 이름은 탁주(濁酒), 탁배기다. 막걸리는 청탁 불문이다. 맑은 술이든 탁한 술이든 가리지 않고 막걸리다. 알코올 도수 18도의 순료를 빚은 후 적당한 양의 물을 섞는다. 전형적인 막걸리다. 맑게 걸러낸 술을 우리는 청주라고 부른다. 일본 술에만 청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흐린 막걸리든, 맑은 청주든 가리지 않았다. 


발효가 진행되는 중간 과정에서 발효를 멈추면 12도 안팎의 술을 얻을 수 있다. 약주라고 부르지만 역시 막걸리 종류의 하나다. 알코올로 변하지 않은 6도 부분만큼 당분으로 남아 있다. 단맛이 나는 알코올 도수 12도의 술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막걸리 중의 하나다. 


막걸리는 ‘열린 술’이다. 이런저런 모든 형태의 술을 품는다. 순료, 박주, 탁주, 촌료, 산료, 약주 등 어떤 술이든 우리의 막걸리 중 하나다. 해모수가 유화부인을 꼬드기면서 마셨던 술도, 물론, 막걸리였다.       


 


본 글은 황광해 음식 칼럼니스트가 2020년 3월부터 한국음식문화 누리집에 게재 중인 정기칼럼 내용입니다. 황광해 칼럼니스트의 주요 저서로는 <한식을 위한 변명>(2019), <고전에서 길어올린 한식이야기 식사>(2017), <한국맛집 579>(2014) 등이 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식문화진흥사업의 일환으로 매주 한식에 대한 유용한 칼럼을 소개합니다. 내용에 대한 문의는 한식문화진흥사업 계정(hansikculture@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본 칼럼은 한국음식문화 누리집(www.kculture.or.kr/main/hansikculture)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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