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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 Jan 20. 2023

상처 많은 사람은 피곤해!

내 주위의 피곤하지만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

나부터가 상처를 무기처럼 휘두른 적 있다. 오래전부터 마음 한편에 맺힌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 날을 세운 적이 있다.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항상 있었다. 여러분은 어떤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투병생활을 하셨는데, 그런 아버지를 둔 자녀는 대개 어른들에게 은근한 기대를 받게 된다.


은근한 기대의 종류는 다양하다. 집안 사정을 이해하고,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에 감사해할 것. 철이 들어서는 부양의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것 등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기대였기 때문에 절대 반박할 수 없는 종류였다.


나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에 걸렸었다.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집안일을 돕고, 매일 같이 아버지 병문안을 가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주말에 한 번은 꼭 가고, 좀 더 철이 들어서는 일을 해서 집에 돈을 가져다 드려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콤플렉스는 한 층 진화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낳았다.


'이렇게 일이 쉬울 리가 없어. 대학에 올 수 있었던 건 분명히 누군가 앞으로 내게 더 큰 책임을 지우기 전에 주는 유예기간 같은 게 분명해.'


비논리적인 생각이었지만, 그 시절에는 제법 타당한 생각처럼 느껴졌다.


나는 대학교 1~2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꽤나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고, 심지어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한 것처럼 성공을 향한 열정도 넘쳤다. 완벽하고 창의적인 과제물을 제출하는 것이 즐거웠고, 부모님의 경제적 도움 없이도 내 힘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좋은 관계를 맺는 데에는 소홀했었다. 경제적 여유를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고,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나만큼 열심히 사는 또래가 주변에 없다는 교만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흔히들 '모난 성격'이라고 부르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절대라고는 못해도, 대다수가 이유가 있다. 어쩌면 상처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콕 짚어 누가 모났다, 누가 상처가 많다 표현하기에는 섣부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가 깊은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와 관련된 상황에 무척 민감하고 예민하다. 그리고 가진 상처가 많을수록 그 예민성이 어디서 발휘될지 미리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길지 않은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감히 단언하자면,


상처가 많은 사람 피곤하다!


상처가 많아 보이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더 너그럽게 대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이 그 사람의 최선일 수밖에 없었는지가 이해됐으니까. 의외로 세상에는 이성적인 논리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허다했으니, 냉정하게 자르지 말고 나라도 가슴으로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지랖 넓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날에는 그저 공감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어쩐지 약자의 입장, 피해자의 입장에 있으면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나라고 상처가 없지 않으니 마냥 공감해 주기 싫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피곤한 사람이겠지.

나도 내 상처로 다른 사람을 휘두르려고 한 적이 있겠지.

나도 누군가가 참아줬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거겠지.


그러니까 상처가 많은 사람만 탓하고 살 수는 없겠지.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조심스레 피해 가면서 서로 상처를 헤집지 않을 최선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당당히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때로는 너무도 쉬워진 것 같은 요즈음, 나를 포함해 상처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일지 고민하게 된다.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이기주의자가 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은 요즘 시대에, 그 결심을 남들보다 한 발 먼저 내린다고 해서 칭찬받을 수 없는 이 시대에.


감성보다 이성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한들, 그것이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면 잘못된 결정이 아닐까 고민하는 내가 있다. 단지 오늘도 결심한다.


더 이상 내 상처를 무기로 휘두르지 말아야지.

더 이상 상처를 무기로 휘두르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아야지.

상처를 가진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넓은 품을 가진 사람이 돼야지.


그게 힘들어지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고.


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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