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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xxtwo Feb 05. 2022

아쿠아로빅

아파트를 통째로 구워삶는 것 같은 무더운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는 8월 중순이었다. 날이 너무 뜨거우니 자연스레 몸도 늘어지는 주말 오전이었다. 늦게 일어나 아침인지 점심인지 애매한 밥을 먹으려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찌개를 데우고 있는데 외출하고 돌아오신 엄마가 분주하게 들어오셨다. “어휴- 이제 일어나셨어요? 해가 중천에 떴어요 아가씨!” 늘 주말마다 듣는 잔소리인데 엄마는 지겹지도 않으신가 보다. “엄마, 저기 스포츠센터에서 아줌마들하고 아쿠아로빅 하려고!” 갑작스럽게 운동 선언을 하시는 엄마의 모습을 보자 웃음이 나왔다. 살아생전 운동이라고는 걷기, 등산 등 돈이 들지 않는 종류의 것으로만 해오시다가 갑자기 아쿠아로빅을 유료로 다니겠다고 선포하시는 모습이 생경하기도 했고 또 근래 살이 부쩍 찌셔서 숨 쉬기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저기 안나 아줌마가 아쿠아로빅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좋대!” 


안나 아줌마는 앞 동 3층에 사시는 아들을 두 명 두신 아주머니로서, 근래 엄마와 부쩍이나 가까운 사이였다. 세례명이 Anne여서 안나 아줌마라고 부르게 되었다. 어렸을 때 안나 아줌마 둘째 아들하고 나하고 같은 영어 학원을 다녔다고 하던데 사실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엄마 정도 나이가 되면 관절이 아파서 걷는 것도 한계가 있고, 또 거기 사우나 시설이 되게 잘 되어 있다고 그러네! 여기 동네 아줌마들이 다 거기 스포츠센터에서 헬스도 하고 수영도 하고 아쿠아로빅도 하고 그런다더라고. 엄마 요새 너무 살도 찌고 그래서 센터 끊어서 다니려고. 셔틀버스가 또 오니까 시간 맞춰서 나가서 타면 되니까 편하고. 시설이 잘 되어 있다나 봐~”엄마는 이미 마음을 굳히신 듯했다. 그 말인즉, 이제 엄마의 아쿠아로빅을 결제해서 수강신청을 해달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돈은 엄마가 줄게~ 그거 신청 좀 해봐라. 그거는 전화로는 안 받는다네. 온라인 결제를 해야 된다던데. 경쟁률이 너무 치열해가지고 지금 들어갈 자리가 없다나 봐. 누가 나가야 들어가는데 너~무 좋으니까 다 안 나가려고 하는 거지. 하고 싶은데~ 어쨌든 틈틈이 한번 들어가 봐 신청되는지. 


엄마의 채근에 밥을 먹자마자 스포츠 센터에 전화해서 수강신청 문의를 하였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이미 수강 인원이 풀로 가득 차서 더 이상 신청을 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워낙 연로하신 분들께 인기가 많은 강좌여서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을 한꺼번에 끊으신 분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설상가상 인기가 너무 많은 강좌여서 온라인으로는 신청을 받지 않고 현장 결제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실망하실 엄마의 모습에 괜스레 기분이 안 좋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처음으로 저렇게 들떠서 동네 아줌마들하고 같이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빨리 소식을 전해주어야 할 듯해서 조심스레 엄마한테 다가가서 말을 꺼냈다. “엄마~ 스포츠센터에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워낙 인기 강좌라서 다 3개월치 끊어 놓고 풀로 다 인원이 찼다네요. 게다가 현장 결제까지 해야 된대요 이제”생각보다 엄마는 실망보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만 쉬셨다. “그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누가 빠지지 않으면 들어가지를 못하니까. 안나 아줌마랑 시간 맞춰서 같이 다니면 좋은데-” 아쉬워 보이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더 안타까웠다. 


며칠이 지났을까. 안나 아줌마가 커피 드시러 집을 방문하셨다.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먼저 드렸다. 그러자 아줌마의 눈꼬리가 한 층 꺾이며 더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셨다. “아이고~ 점점 더 이뻐진다” 그 말을 듣자 공연히 쑥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너무 후줄근한 트레이닝 복 차림에 부스스한 머리를 거울 너머로 봐 버렸기 때문이다. 짐짓 자연스레 넘기며 “네, 편하게 말씀 나누세요~ 저는 방에 들어가 있을게요”하며 서둘러 자리를 비켜 드리려 하자 아주머니는 말을 꺼내셨다. “엄마 아쿠아로빅 신청 못했지? 아줌마랑 같이 하면 좋은데!” 이야기가 시작되었구나 싶어 방으로 향하던 몸을 돌려 다시 이야기 모드로 들어갔다. “네, 신청해드리고 싶었는데 워낙 인기가 많은 강좌 인가 봐요. 근데 진짜 무릎에 무리도 안 가서 어머니 연세되시는 분들한테 정말 좋을 것 같기는 한데…”다시 생각해도 아쉬운 마음에 목소리가 늘어졌다. “아줌마도 그거 신청하는데 진짜 힘들었어! 하하 오죽했으면 선착순 이어 가지고 새벽에 아들하고 차 끌고 가 가지고 거기 줄 서가지고 있었잖아. 아휴~ 그때 생각하면 진짜 말 다 했다 말 다했어. 우리 아파트뿐만 아니라 저기 옆 동네 아파트에서도 소문이 나가지고 대기자가 엄청 많아. 그날 추운 겨울이었는데 겨우 신청했지 뭐야” 


그 말을 듣자 자동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먼저는, 새벽에 차를 운전해서 안나 아줌마와 함께 수강신청을 하러 갔다는 아들의 효심이 대단해서였고 둘째는 집념으로 일궈낸 수강 신청이 대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빨리 엄마의 수강 신청을 포기한 것일까. 


Rrrrrr 그때 갑자기 엄마의 벨소리가 울렸다. 순간 안나 아주머니도 본인의 핸드폰을 쳐다보셨는데 엄마와 벨소리가 똑같기 때문이다. 왜 아줌마들은 다 기본 벨소리로 해놓으시는 걸까. 바꿔 준다고 해도 한사코 괜찮다며 말리시는 게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보세요~ 아줌마~ 오랜만이네! 잘 지내시죠~?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엄마는 정말로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늘 전화를 받을 때마다 길게는 2~3시간을 열심히 통화를 하시는데 대부분은 전화를 받으시는 편이시다. 이렇게 사람들이 엄마를 찾고 또 전화를 먼저 하시는 데에는 정말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으신 것 같다. 워낙 정 많고 사람 좋아하고 챙기는 걸 좋아하시다 보니 그 진심이 사람들에게 전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아쿠아로빅? 아니, 그러니까. 네, 네. 그거 수강 신청하고 싶은데 사람이 빠져야지 뭘 하지. 네, 네. 네? 네~ 아 지금요? 지금 시간 되지~ 네, 모퉁이에서 봬요!” 엄마의 들뜬 목소리가 집안을 메웠다. “웬일 일야~ 아니 세상에. 앞동 505호 아줌마가 아쿠아로빅을 그만둔다고 대신 들어가라고 하시네. 지금 스포츠 센터 가서 같이 현장 등록하자고. 또 누가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그 사이에” 하늘은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엄마의 간절한 수강신청 사연이 아파트에 친한 아줌마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던 모양이다. 505호 아주머니도 그 소식을 들으시고 그만두는 참에 엄마 수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는 듯했다. 급히 나갈 채비를 하시는 엄마와 함께 안나 아주머니도 따라나섰다. “어휴~ 형님 너무 잘됐다. 네 엄마 기분 날아간다 날아가. 같이 가야지. 형님 가는데! 시간 맞춰서 같이 들어요!” 새삼 그들의 우정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는 아무것도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했지만, 이렇게 아파트 주민들끼리 돕고 도와 가면서 살아가시는 모습을 보자 다시 한번 새삼 이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엄마, 신분증하고 혹시 모르니까 현금도 좀 챙겨가세요~” 바쁘게 안나 아주머니와 나가시는 등 뒤로 그나마 딸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을 했지만 “당연히 챙겼지~”하며 가시는 모습에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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