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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xxtwo Feb 05. 2022

보호자

아이고오- 아이고. 엄마는 연신 다리를 주물 거리며 앓는 소리를 하셨다. 오래 서있는 일을 오래 동안 해오셔서 그런 걸까. 요 근래 부쩍이나 종아리가 아프다고 다리를 만지작 거리셨다. 새벽녘에 종아리가 저리고 쥐가 나기를 매일 반복하자, 웬만해서는 병원을 가지 않는 엄마가 직접 아픈 다리를 이끌고 병원을 갔다 오신 것이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에도 가느다란 실핏줄이 거미줄 모양처럼 돌출되어 보여 아프게도 생겼다. 


“엄마, 예전보다 더 심해진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이 수술해야 된다고 그랬다면서요?” 종아리에 시선을 둔 채 걱정스러운 마음에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수술만은 피하려고 했는데, 피가 역류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수술을 해야 될 듯싶다” 수술 이라고는 우리 자매 낳을 때 제왕 절개밖에 해본 적이 없으신 분께서 막상 수술을 받으려고 하시니 용기가 나지 않으시는 모양새다. “위험하다고 하니까 수술 날짜 잡고 빨리 하는 게 좋겠어요. 병원은 정하셨어요?”한숨을 푹 내쉬는 엄마의 등을 보자 왜 이렇게 오늘따라 작아만 보이는 건지 더 마음이 내려앉았다. “여기 아파트 아줌마들 하지정맥류 수술받은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저~기 청량리 쪽에 잘하는 병원이 있다 더라고. 거기서 수술받으려고. 의사, 간호사들도 친절하고… 거기가 마음이 편할 것 같네” 환자 입장에서는 실력 좋은 의사 선생님도 물론 필요하지만 정말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의료진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엄마의 의견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은 일주일 뒤로 날짜가 잡혔다. 아침부터 수술이 잡혀서 입원 수속을 밟으려면 여덟 시까지 병원에 도착해서 입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밤에 한숨도 자지 못하셨는지 그렇지 않아도 하얀 엄마의 얼굴이 더 핼쑥해져 있었다.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큰 수술이 아니고, 또 금방 끝난다고 하니까.” 계속 걱정하는 엄마의 등을 토닥이면서 연신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말하는 나를 보니 내가 더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택시를 타고 병원에 도착하자 입원실을 배정받고 엄마의 물건을 하나, 둘씩 꺼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환자복으로 환복을 하신 모습을 보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속으로 계속 기도를 중얼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이것저것 수술에 관한 설명을 이어 가신 뒤 나가시자 바로 간호사 분들이 링거를 끼우고 수술에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수술 중’이라는 빨간 글씨가 켜졌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뻐근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대기실에 앉아 낮고 짙은 슬픔과 불안 그 비슷한 무더기의 감정들로 에워쌈을 당했다. 무사히 수술이 끝나기를 별 탈 없이 예정대로 계획대로 수술이 마치기를 고개 숙여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말이다. Rrrrrr. 갑자기 울리는 엄마의 핸드폰 벨소리가 이 침묵과는 어울리지 않아 낯설게 느껴졌다. 여보세요-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를 안나 아줌마의 목소리가 덮어버렸다. “엄마는? 벌써 수술 들어가셨니?” 어떻게 아신 건지 수술 들어가시자마자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주신 것이다. “네~ 지금 방금 들어가셨어요” 밝은 안나 아줌마의 목소리를 듣자 뭔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다. 지금 이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한데, 평상시에 듣던 익숙한 목소리에 그제야 마음이 놓일 자리를 찾은 듯했다. “엄마가 걱정이 많으셨는데 괜찮으실 거야! 너도 너무 심란해하지 말고~ 수술 잘 끝날 거야! 수술 끝나면 바로 연락 주고. 아줌마도 계속 기도하고 있으니까 알겠지?”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별 일이 없을 것만 같은 위안이 들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끊자마자 또다시 벨소리가 울렸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차분한 앞 동 106호 할머니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엄마 수술 들어가셨지? 걱정 돼가지고 전화했어~ 수술은 언제 끝난 다냐?”엄마가 늘 엄마의 엄마라고 부르시는 할머니. 이사 온 뒤로 27년 간을 이웃으로 살아오다 보니 정말 나에게도 친할머니 같은 존재인 106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자 반가움과 감사함에 목이 메어왔다. 수술 끝나면 바로 전화드린다는 말을 끝내고 전화를 끊은 뒤에도 계속 아파트 아줌마들의 전화가 연이어 걸려왔다. 


예상 시간보다 삼십 분이 지났는데도 수술 중이라는 빨간 글씨는 초록색으로 바뀌지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몸을 일으키자 그제야 수술실에서 의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곧바로 선생님께 달려가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뭐가 문제가 생긴 걸까 조급한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예상시간보다 수술이 조금 늦게 끝났네요.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고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에 온 몸에 힘이 풀려 안도감이 밀려왔다. 엄마는 조금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수술실에서 나오셨다. 


깨어나신 뒤 한층 더 얼굴이 파래 해진 엄마를 보자 마음이 아려왔다. “고생하셨어요 엄마. 수술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엄마 수술 중에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전화 많이 주셨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엄마는 핸드폰을 달라고 손짓하셨다. 엄마는 그 뒤로 계속 오는 전화를 받으며 무사히 수술 잘 마쳤다고 통화를 연달아하셨다. 그 모습을 보자 새삼 정말 이웃의 정이라는 게 느껴졌다.  


퇴원한 뒤 집에 도착하자 그제야 안도감에 피곤이 몰려들었다. 좀 쉬어 보려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으로 보이는 모습은 낯익은 안나 아주머니였다. 문을 열어드리자 아줌마는 고생 많았다며 연신 등을 토닥여 주셨다.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웃으로부터 이렇게 위로를 받으니 머쓱함이 밀려왔다. “아이고 형님, 고생 많았어요. 다리는 좀 괜찮으셔? 압박 스타킹 했네 아휴 피도 안 통하겠구먼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는 거래요?” 안나 아줌마는 이것저것 엄마를 살피시며 안부를 물으셨다. “형님, 이거… 얼마 되지는 않아~ 아파트 아줌마들끼리 돈 좀 거뒀어.” 아줌마는 조끼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반으로 접힌 하얀 봉투를 엄마에게 건네며 손에 쥐어주셨다. 여기 아파트는 늘 크고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부조금을 모아 전해주곤 했는데 아마 그렇게 모인 돈인 듯했다. 요즘에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장례나 수술 등의 일로 당사자에게 전달해주는 일이 많은 듯했다. 오랜 시간 동안 엄마가 부녀회장 역할을 해서 그 일을 담당했는데 이번에는 엄마에게 그 온정이 닿은 것이다. 엄마는 미안하게 이런 것까지 준비했냐며 머리를 긁적이셨다. 


생각보다 하지정맥류는 꽤나 자주 병원을 방문하며 수술 경과를 지켜보고 진료를 받아야 했다. 수술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말 지속적으로 몇 달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병원을 들러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압박스타킹을 계속 신어야만 했다. 정말 몸도 마음도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내원할 때마다 늘 안나 아줌마가 같이 동행을 해 주신다. 혼자서 병원 가는 것은 서럽다며 서로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늘 함께 따라나서곤 하셨다. 직장을 다니는 처지라 늘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내원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보호자로서 함께 동행해 주시는 이웃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지 모른다. 


몇 주 뒤, 주말 점심 즘 나갈 채비를 하시는 엄마를 보며 어디 외출하시냐고 물었다. “아니… 아파트 아줌마들이 엄마 수술하는데 걱정도 많이 해주시고 돈도 모아서 전달해주고… 고마워서 엄마가 식사라도 대접하려고” 역시 정 많은 엄마는 오는 정에 가는 정으로 보답하시려는 듯했다. 순간 수술 당일 그렇게 많은 전화가 연이어 울렸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온전치 못한 다리로 압박스타킹까지 착용하며 절뚝거리시면서도 아줌마들과 식사하러 나가는 뒷모습을 보자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나는 아파트 사람들의 의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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