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집에서 열심히 아이를 붙잡고 가르치다,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소O 학원에 등록하였다. (사실 다들 저 소O이 어딘지 아실 텐데 이렇게 글자 하나 가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학원에서 경시 특강반이라는 걸 운영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시반은 매주 토요일 오전에 수업이 있었고, 토요일에도 열심히 출근하던 나에게 2시간 학원은 보육 공백을 메꾸어 주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여 등록하였다. 등록 후 한 달 경시반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어머님 4월부터는 모의고사를 풀 거고요, 문제집은 언제부터 구입하시고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선생님께 아래와 같이 말씀드렸다.
나는 내가 경시를 해 보았다. (그리고 상은 받지 못했다... 소위 경시를 망한 자의 이야기이니 더 들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요즘 여기저기서 열심히 욕을 먹고 있는 과학고를 나와서 의대를 들어간 케이스가 나다. (사족 1. 의대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연구하는 기초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모라고 말을 하여도 변명밖에 되지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세상에 받은 걸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응급실 전화가 오면 최대한 열심히 나가서 최대한 열심히 수술을 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족 2. 과학고를 나와서 의대를 간 건 항상 조금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서 - 과학고는 정말 혜택을 많이 받는 집단이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되면 나중에... - 남들한테 고등학교 이야기는 잘 안 한다.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왔던 친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과학고를 다니면서 수많은 경시 하는 친구들을 보았고, 정말 유수의 상을 받은 친구들도 많이 보았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에서 경시반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에게 너무 어머님들이 휩쓸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쓴다.
경시 중에서 특히 수학 경시는, 정말 타고난 아이들이 하는 것이다. 어설프게 공부 좀 한다고 하는 친구들이 건드린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개별 대학들에서 하는 사설 경시 정도야 초등 저학년 때 돈과 시간을 들이면 좀 할 수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타고난 아이들이 머리를 깨치는 순간 이건 무슨 방법을 써도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노력을 체계적으로 한다고 우샤인 볼트를 이길 수 있을까? 같은 맥락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노력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학습적으로 아이에게 투자를 하시고 싶다면 차라리 수학을 선행 학습을 하던가, (선행학습의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시 글을 써보고자 한다.) 아니면 그 시간에 영어를 배우던 가 하는 게 장기적으로 아이에게 더 효율적이다. 공부는 엉덩이 힘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그건 고만 고만한 아이들끼리 경쟁을 할 때의 이야기이다. 고만 고만한 아이들의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어차피 사람의 하루는 24시간이 이기 때문에 엉덩이 힘이 아니라 정말 타고난 똑똑한 아이들을 이겨 낼 수 없다. 과학고에서 공부를 하면서 내 하루가 48시간이 되고, 저 친구의 하루는 12시간이 되어도 난 저 친구보다 시험을 절대 잘 볼 수 없겠구나 느꼈던 친구들이 있다. (고백컨데 그래서 나는 의대에 갔다. 저런 친구들이랑 연구 업적으로 평생을 경쟁하면서 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 마다 타고난 재능이 있고, 잘하는 것은 분명히 있다. 경시가 아닌 다른 데에서 본인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아이들도 많다. 경시를 안 하고/못한다고 좋은 대학에 못 가는 것도 절대 아니다. (이건 현직 의과대학 교수인 내가 장담한다.) 노력으로 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절대 노력으로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도, 부모도 불행해진다. 경시반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의 많은 수가 아이들이 의대에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경시를 하시기도 한다. 경시는 의대 진학과는 무관하다. 의대 진학은 엉덩이 힘으로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일 년에 의대는 3천 명이 간다. 경시는 훨씬 더 적은 수의 인원이 상을 받는다. 의대 진학이 목표라고 해서 초등학생인 아이들을 경시를 시킬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무궁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이, 해도 안 되는 걸 경험하는 건 너무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